해체된 옛 STX그룹의 사업형 지주회사였던 (주)STX가 새로운 대주주와 함께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러시아와 홍콩에서 에너지 및 원자재 사업을 잇달아 추진하면서 글로벌 무역상사로의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선박과 발전소 등 육상 플랜트 유지·보수 사업에 강점을 갖고 있는 STX마린서비스, 리조트와 식·음료 사업을 하는 STX리조트 등 자회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STX는 지난 8월 중국과 홍콩 자본이 참여한 AFC머큐리유한회사에 인수됐다. STX조선해양과 팬오션을 앞세워 2000년대 후반 매출 30조원대, 재계 13위(자산 규모)에 올랐던 STX그룹은 조선·해운업 침체 여파로 2013년 해체됐다. STX조선해양과 팬오션 등 주요 계열사는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와 매각 절차를 밟았다. 지주사였던 STX도 조선·해운 계열사와 지분 관계가 끊긴 채 2014년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STX그룹 시절 축적된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종합상사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매출 1조8000억원, 영업이익 440억원을 달성하는 등 경영 정상화에도 성공했다.

AFC를 대주주로 맞은 뒤 1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 재무구조를 안정화한 STX는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일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러시아 연해주 하산에 액화석유가스(LPG) 탱크 터미널을 짓기로 하고 현지법인 지분투자 공시를 했다. 한반도와 러시아, 중국의 경계에 있는 하산은 물류 거점지역으로 꼽힌다. 같은 날 홍콩에 자본금 100만달러 규모의 ‘STX 아시아’도 설립했다. AFC의 주요 투자자인 홍콩 PT인터내셔널과 함께 신사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STX마린서비스도 지난달 26일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이라크 디젤발전소 사업과 관련해 1억2500만달러 규모의 금융 조달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앞서 지난 9월 이라크 전력부와 현지 4개 지역에 있는 900㎿ 디젤발전소를 복구해 운영·유지보수하는 사업을 수주했다. 총 사업비가 5억달러(약 5500억원)에 달한다. STX마린서비스가 사업 수주에 이어 금융 조달까지 성공하면서 향후 이라크 플랜트 재건사업을 선점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사업 확장과 맞물려 지난 12일부터는 해외영업과 경영관리 분야에서 신입 및 경력사원도 채용 중이다.

석유 개발과 수입 등 원자재 사업 경험이 풍부한 박상준 (주)STX·STX마린서비스 대표(사진)는 회사를 원자재와 에너지, 해운·물류 부문에 특화한 무역상사로 만든다는 목표다. STX마린서비스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항공정비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였던 쌍용에서 석유개발과 오일 트레이딩 업무를 맡았던 박 대표는 1998년 한국 최초의 석유 수입회사인 타이거오일을 설립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원자재 거래 사업의 수익률을 높이는 한편 물류 사업 등 신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