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정부 투쟁' 선언한 민주노총…불법에도 '손 놓은' 정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14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정부 투쟁을 공식 선언했다. 전날 사상 처음으로 대검찰청에서 점거 농성을 벌인 민주노총은 이날 하루에만 청와대, 국회, 명동, 목동, 노원 등 서울 전역에서 41건에 달하는 게릴라식 동시다발 집회를 열었다. 오는 21일 총파업을 앞두고 정부를 향한 총공세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경찰은 민주노총의 불법 점거나 시위에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불법 점거 농성자에 대한 법적 처벌도 하지 않아 정부가 사실상 불법시위를 묵인·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현 정부와 결별

이날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는 ‘재벌과 손잡고 노동자와 담쌓는 정부’란 표현이 등장하는 등 현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최준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은 “‘이게 나라냐’며 촛불항쟁하고 정권이 바뀌었는데 바뀐 정부에서 ‘가짜 정책’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포용적 성장정책을 성범죄에 비유하는 발언도 나왔다. 김호규 민주노총 금속노조위원장은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을 뛰어넘어 포용적 성장을 하겠다고 하는데 포용을 일방적으로 했을 때는 억압이 된다”며 “일방적으로 껴안는 건 성폭행”이라고 했다. 2016년 탄핵정국 때 촛불집회를 이끌며 현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었던 민주노총은 옛 동지인 문재인 대통령과 결별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은 이날 대정부 투쟁선언을 시작으로 청와대 앞에서 총파업 전날인 20일까지 철야 농성을 벌인다. 21일에는 조합원 18만 명이 전국에서 총파업에 들어간다. 민주노총의 전국 단위 총파업은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퇴진 요구 총파업 이후 처음이다. 이들은 탄력근로제 확대 중단, 재벌개혁, 사회 대개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4일 서울 시내 41곳에서 동시다발 시위를 했다. 청와대 앞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시국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있다.(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자 이를 제지하는 국회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아래)  /김영우·허문찬 기자 youngwoo@hankyung.com
민주노총은 14일 서울 시내 41곳에서 동시다발 시위를 했다. 청와대 앞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시국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있다.(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자 이를 제지하는 국회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아래) /김영우·허문찬 기자 youngwoo@hankyung.com
서울 곳곳에서 동시다발 시위

이날 청와대뿐 아니라 국회, 서초동 대검 청사, 목동, 명동, 노원 등 서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민주노총 집회가 열렸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열린 민주노총 관련 집회는 41개로 참석 인원은 10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전날 대검 청사를 불법 점거했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날 국회에서도 의사당 내부로 진입해 현수막을 펼치는 등 불법 시위를 벌였다. 사전에 신고된 국회 정문 앞 기자회견이 끝나고 민주노총 지도부 5명이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면담하기 위해 의사당 내부에 들어갈 때 조합원 4명이 따라붙은 뒤 플래카드를 펼쳤다. 국회사무처 직원은 곧바로 이를 제지한 뒤 플래카드를 압수했다. 면담하러 간 지도부를 기다리는 동안 나머지 조합원들은 국회 정문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회의사당 100m 이내 장소에서는 옥외 시위나 집회를 할 수 없다. 또 국회청사관리규정에 따르면 허가 없이 행진 또는 시위하거나 벽보, 깃발, 현수막, 피켓 등을 부착해 사용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단속은커녕 눈치만 보는 정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두고 민주노총의 불법 집회를 정부가 사실상 방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노총이 지난 3개월간 일곱 차례나 불법 점거 농성을 벌였지만 관련법에 따라 처벌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전날 대검찰청을 점거해 서초경찰서로 연행된 민주노총 간부들도 간단한 조사만 받은 뒤 곧바로 귀가 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민주노총의 잇단 돌출 행보와 불법 집회에도 “일방적이고 말이 안 통한다”(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는 식의 엄포만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

정부 여당이 사실상 방관하는 이유는 민주노총을 잘 설득해 노사정 대화 창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끌고 와야 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후 1년 넘게 노동계와의 관계 회복에 공들여 왔는데 불법시위한다고 하루아침에 무산시킬 수는 없지 않냐’는 심리도 정부 내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의 법치와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라며 “정부는 불법을 일삼는 간부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법의 근엄함을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이수빈/조아란/임락근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