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을의 갈등 부추기는 카드 정책
요즘 서울 시내에선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놓고 두 개의 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여의도, 다른 하나는 광화문에서다. 카드사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여의도에서,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소상공인총연합회·마트협회 등이 광화문에 진을 쳤다. 카드사 노조는 가맹점 수수료 추가 인하는 카드사 직원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소상공인 측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 부담이 큰 만큼 추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이 상황을 두고 금융계에선 전형적인 ‘을의 전쟁’이라고 보고 있다. 한 금융회사 대표는 “정치권과 정부가 카드 정책을 잘못 펴면서 약자들 간의 이해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했다.

정부는 11년간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아홉 차례 인하했다. 연 매출 3억원 이하 가맹점엔 현재 0.8%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11년 전 2~3.6%에서 4분의 1 토막 정도로 낮아졌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어려움이 여전하다고 얘기한다. 금융계에선 이제 소상공인 지원을 카드 정책으로 해결할 국면은 지났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또다시 카드 수수료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카드업계에선 연 매출 3억원 이하는 0.5%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그러자 카드 노조가 들고 일어섰다. 이 정도 수준으로 떨어지면 카드사별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 현대카드는 400명가량의 인력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카드사들도 상황이 악화되면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카드사 노조가 농성에 뛰어든 것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한 카드사 노조원은 “지금 카드사 분위기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흉흉하다”며 “을(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또 다른 을(카드사 직원)을 희생시키는 게 바람직하냐”고 되물었다.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중요하지만 카드사 직원 생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소상공인을 지원하려면 이제 정석대로 해야 한다. 세금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민간 금융회사 몫을 빼앗아서 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