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경교조주의' 극복 못하면 국책사업 올스톱 된다

인구 2600만 명 수도권의 미래 교통수단으로 기대를 모아온 광역급행철도(GTX)-A노선 건설이 ‘환경영향평가’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부가 연내 착공을 거듭 장담해온 대형 국책사업이 뒤늦게 복병을 만난 꼴이다.

운정과 동탄 신도시를 잇는 83.1㎞ 노선 중 북한산국립공원 지하를 지나는 464m 구간이 문제가 됐다. 이 짧은 구간이, 그것도 토지소유권은 미치지도 않는 지하 127m의 대심도 철도가 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제부터가 상식적이지는 않다. 11년간 논의만 반복됐던 이 사업을 조기 착공하기 위해 노력해온 국토교통부도 이런 ‘상식’ 때문에 환경평가는 가볍게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환경교조주의’에 에워싸인 우리 현실이 이렇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며 급등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유력한 대안의 하나인 GTX 사업도 ‘환경 프레임’에 한번 걸리면 해법이 쉽지 않은 것이다.

현상만 보면 국토부와 환경부의 정교하지 못한 행정역량 문제처럼 비친다. 근본 문제는 환경부 안팎의 ‘환경족(族)’으로 불리는 집단이다. 종교적 원리주의를 방불케 하는 과잉 환경보호론에 발목 잡힌 국책사업이 한둘이 아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도 그렇게 무산됐다. 춘천~속초 동서고속철도도 비슷한 사유로 수년째 제자리다. 완성에 23년 걸린 제주 민관복합항을 비롯해 밀양송전탑,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 등의 공사 지체비용은 계산하기도 힘들다. ‘4대강 물관리 논쟁’에서도 핵심 변수다.

교조적인 환경보호론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떤 국책사업도 어려워진다. 환경부는 각종 환경단체들과 건전한 긴장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 특정 단체를 대변하는 부처가 아니라 전체 국민의 이익을 봐야 한다. 도로 철도의 국립공원 통과 금지 법규가 있지만 공원관리청 승인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규정도 있다. GTX 건설에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도 책임행정, 적극행정이 될 것이다. <11월4일자 한국경제신문>

사설 읽기 포인트

국가 정책사업이나 기업 개발사업이
과도한 환경보호에 발목잡히면 안돼
환경보호도 '균형과 절제' 원리 중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잘 보호하고 가꾸어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산업화 도시화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연, 나아가 환경 보호가 ‘본래의 자연 그대로 유지’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인간의 문명 발달과 경제적, 과학적, 기술적 발전은 자연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령 대한민국 사회의 과거를 돌아보며 비교해 봐도 과학 기술이 뒤처졌고 경제가 낙후됐던 1970년대 이전과 오늘날은 의미 있는 차이점이 있다. 과거에는 이 땅의 산에는 나무가 없었다. 땔감으로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는 바람에 온통 민둥산이었다. 비라도 조금 오면 곳곳이 홍수였다. 깊은 산중에도 원시적 생존 방식의 화전민들이 많아 삼림이 파괴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도시 인근도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푸른 숲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체계적으로 쓰면서 생활 양식이 확 바뀐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산하는 아직도 50년 전 우리의 모습 그대로다.

강물도 전반적으로 수량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고 수질 또한 많이 개선됐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강에는 악취가 꽤 심했다. 지금은 한강변일수록 인기가 높아 집값도 훨씬 비싸지만 당시에는 악취 때문에 한강과 접한 아파트는 기피 대상이었다. 생활 폐수를 분리해 정화할 재정 여유가 서울시에도, 중앙 정부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발달로 이 정도 예산은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덕분에 한강은 인기가 좋은 쾌적한 도심 공원이 됐다. 곳곳의 둔치는 조경도 잘 돼 있고, 시민 편의시설도 많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이 인구 2500만 명의 메갈로폴리스가 되면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경제번영 지대가 된 데에도 시사점이 있다. 소양·충주댐에서부터 팔당댐까지 여러 다목적 댐으로 생활용수가 사계절 부족 없이 공급되는 데다 품질 좋은 전력까지 언제든지 공급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강의 댐을 지금 건설한다고 가정해보자. 온갖 환경 보호론 때문에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례는 너무도 많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맞추는 것에도 발전소 못지않게 송전탑 건설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안보, 균형발전, 외국관광객 유치 등을 위해 어렵게 결정된 국책사업도 과도한 환경보호론에 의해 수시로 가로막힌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이 이번에 환경부의 문제제기로 발목이 잡힌 것도 그런 맥락이다.

‘환경원리주의’ ‘환경교조주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해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연과 환경에 대한 보호 자체에 매달리다 보면 인간의 문명과 진보를 부인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물을 물 쓰듯 하며, 전기도 국제적으로 싼 ‘정책적 요금’의 현상만 보며 펑펑 써대며 댐과 발전소 건설을 원천 부정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자연의 활용에 있어 과학적 접근, 합리적 이용, 기술적 보완이 중요하다. ‘균형과 절제’는 개발론에도, 환경보호론에도 두루 필요한 것이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