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갑질’ 사태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횡령·배임 재판, 정부의 항공사 임원 자격 제한 법안 추진, 사모펀드(PEF)의 경영권 위협으로 이어지면서 조 회장을 비롯한 총수일가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총수 재판에 경영권 위협까지…한진그룹 '사면초가'
잇따른 ‘갑질논란’에다 경영 참여를 선언한 KCGI가 토종 사모펀드여서 엘리엇의 삼성·현대자동차 지분 매입 때와 달리 한진 측에 우호적인 여론이 없는 점도 부담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조 회장은 전날 KCGI가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프랑스 파리에서 보고받고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와 대한항공과 같은 스카이팀 소속 항공사인 에어프랑스 고위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출장길에 올랐다.

재계에선 KCGI가 내년 3월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교체하는 등 경영권 장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진칼 이사진은 상근임원 3인(조 회장·조원태 사장·석태수 사장)과 사외이사 3인(이석우 법무법인 두레 변호사·조현덕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김종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윤종호 상근감사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석 사장과 조 변호사, 김 고문, 윤 감사는 내년 3월17일 임기가 만료된다. 소액주주들은 사내이사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조 회장과 밀접한 관계라는 점을 지적해왔다. 조 변호사는 2013년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전환 자문을 맡은 김앤장 소속이다. 이 변호사와 김 고문은 조 회장의 경복고 동문이다.

이사회 장악 여부는 우호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지만 총수일가가 국민적 공분을 샀던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소액주주가 KCGI 측에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KCGI(지분율 9%)가 국민연금(8.35%) 크레디트스위스(5.03%) 한국투자신탁운용(3.81%) 등과 손잡으면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28.95%)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KCGI가 이사회를 장악하면 호텔과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하고, 대한항공 등 주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KCGI 측으로부터 지배구조 개선 등 공식적인 요구를 받으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 급한 불은 오는 26일부터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시작되는 조 회장의 재판이다. 조 회장은 270억원대 횡령·배임, 조세 관련법 위반,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 회장의 재판 결과도 변수다. 항공사 임원이 벌금형만 받아도 2년간 임원 자격을 제한하는 내용의 항공사업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현재는 항공안전법과 공항시설법 등 항공 관련법 위반자만 항공사 임원 자격을 제한받게 돼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형법과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 관세법 위반자도 임원 자격을 박탈하도록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상반기 이 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