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4차 산업혁명 시대 경쟁력, 표준이 가른다
필자가 기억하는 부산의 모습은 다채롭다. 우리가 잘 아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부산은 ‘꽃피는 동백섬’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 최고의 마천루들이 자리 잡은 해운대 스카이라인이 먼저 떠오른다. 매년 광안대교의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부산의 모습에 또 하나의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지난 7월, 부산은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 도시로 지정됐다. 스마트시티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교통, 건강, 에너지 등 다양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똑똑한 도시를 말한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은 데이터로 수집돼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 기능을 확대하는 데 사용된다. 스마트시티에 거주하는 ‘미래의 나’는 출근길에 맞는 최적 교통 수단을 제공받아 교통지옥에서 해방된다. 신체 리듬에 맞춰 집 안 온도, 습도가 자동 조절된다.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에코델타시티 조성으로 전기 요금에 대한 걱정이 없다. 도시 스스로 필요한 자원을 순환시키는 기능은 환경 보호로도 이어진다. 이렇듯 2021년 만나게 될 스마트시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스마트그리드 등 핵심 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만 가능할 것이다. 첨단 기술을 이어주는 공통의 약속, ‘표준’이 중요한 이유다.

표준은 ‘KS’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1960년대 정부가 3000여 종의 산업표준을 도입하면서 우리 산업은 표준의 토대 위에 급격히 성장했다. KS마크가 찍힌 나사로 우리의 제품이 조립되고, 집 안에는 KS마크를 단 TV, 냉장고가 놓였다. 과거의 표준이 품질을 담보하는 수단이었다면 오늘날의 표준은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적 도구로 부상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서로 다른 분야의 융복합이 가속화하면서 개방과 공유의 핵심 요소이자 융복합 산업 플랫폼으로서 표준이 재조명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같이 표준의 개발 주기도 점차 짧아지고 있다. 기술이 완성된 후 해당 기술에 대한 표준이 만들어지던 과거와는 달리 표준의 제정 속도가 기술 개발 속도와 궤를 같이하기 시작했다. 이는 신기술 개발 후에 생겨나는 시장에서 표준이 진입을 위한 중요 도구로 자리 잡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우리 기업은 미래 먹거리로서의 표준을 인지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경쟁력 확보를 위해 표준전문인력 양성과 더불어 전문가 활동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융합 신제품의 빠른 시장 출시를 지원하기 위한 인증제도도 마련했다. 국가적 위상 제고를 위한 국제표준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전기전자 분야의 표준을 다루는 ‘제82차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총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스마트시티, 착용형 스마트기기, 전기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산업의 표준을 다루는 이 회의에는 약 2주간 92개국 3300여 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미래 기술에 대한 표준을 논의하고, 우리 시험인증기관들은 해외 기관과 협약을 맺었으며, 일반 참가자를 위한 기술 전시와 세미나도 열렸다. 단순한 표준전문가 회의가 아니라 관련 산업의 관심을 대변하는 교류의 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부산은 우리나라 표준의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된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선도 도시를 표방하며 스마트시티로 도약하고 있는 부산. IEC 총회를 계기로 부산에 만들어진 표준의 이정표가 한국의 표준화 활동에 길잡이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