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넷에듀테크연구소 홍정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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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알리바바의 마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냈다는 공통점과 더불어, 현시대의 기업경영의 아이콘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철학과 심리학 영문학 전공자와 IT

이들이 지닌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인문학 전공자라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철학을 전공했고, 마크 주커버그는 심리학, 마윈은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인문학을 전공한 것이 기업 경영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함께 점심 한 끼를 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그가 선불교에 심취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크라테스처럼 깊이 생각하는 방법과 사람과 사물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들이 스티브 잡스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주커버그는 2주에 책 한 권을 읽고 페이스북 팔로워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윈은 그의 리더십 롤 모델로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를 들고 있다. 이들 외에도 세계적인 기업의 창업주와 CEO들 중에는 인문학 전공 또는 인문학 공부에 푹 빠진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송합니다(문과 나와서 죄송합니다)”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왜 세계적인 기업들은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것일까?

세계적 기업이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

첫째, 창의성의 시대에서 인사이트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파괴적 혁신이 일반화 되고 있는 시대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지닌 스타트업들이 기존의 튼튼한 산과 같았던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은 휴대전화 산업을 무너뜨리고 스마트폰의 시대를 열었고, 우버나 애어비앤비의 등장은 기존 택시 산업과 숙박업을 새롭게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영 환경에서 창의성이 비즈니스의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바뀌고 있다.

1964년 쿠웨이트 항구에서 2,000톤의 배가 침몰했다. 어떻게 하면 침몰된 배를 인양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탁구공 만한 공기 주머니 2,200만개를 만들어 물속에 가지고 들어가 배 안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나서 모두들 결과를 기다렸다. 배는 얼마 후 떠올랐다. 이 사람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특허 출원하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그 이유는 1949년 출간된 디즈니 만화에 도널드 덕이 탁구공으로 배를 끌어올리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 환경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위의 사례와 같이 복잡한 계산으로 풀리는 경우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더 큰 성과를 낳은 경우로 흔히 볼 수 있다. 기업의 혁신이나 창업에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필수 요소이다. 창의적인 생각은 실무교육이나 기술교육 보다는 문학작품, 역사, 철학, 예술작품과 같은 인문학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둘째, 사람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경영 환경에서 사람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환경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 질수록 기계보다 사람이 더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직원들과의 협업, 고객과 전문가들이 R&D에 참여하게 만드는 C&D(Connect and Development), 고객과 개발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전략 등 사람을 연결시키고 사람과 협업해 집단지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환경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는 강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17년 동안 디즈니의 CEO를 역임한 아이스너는 문학공부가 CEO 역할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며 문학은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가장 도움이 되는 학문이라 말하고 있다. 어느 한 광고 카피의 “사람이 미래다”라는 문구처럼 기업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중요하다. 인문학의 역할은 이러한 관점에서 더욱 증대될 것이라 예측해 본다.

셋째, 인문학 교육은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 소양을 함양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내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부도덕한 직원으로 인해 휘청거리는 경우가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다. 모 총수 가족의 횡포라든지, 일부 기업 임원들의 성희롱, 유통회사 직원의 지나친 갑질 등 구성원 한 명의 기본 소양의 문제로 주가가 급속히 떨어지거나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등 한 기업의 구성원들의 기본 인문 소양이 더욱 더 중시되고 있다.

이튼 칼리지의 교훈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비굴하지 않은 사람이 되라.
약자를 깔보지 마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잘난 체 하지 마라.
다만, 공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
이는 세계적 명문사립학교인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의 교훈이다. 이튼 칼리지는 600년 전통에 영국 총리를 19명이나 배출하는 등 영국의 주요 인사를 배출한 대표적인 사립학교다. 귀족학교로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이들 교육의 중심은 ‘약자를 위해’, ‘시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라는 가치를 가슴에 우선적으로 심어주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출세하기 전 우선 인간이 되라’는 것을 교육철학의 근간에 깔고 있다. 실제로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에 자원 입대해 전사한 졸업생의 비율이 영국에서 가장 큰 학교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들의 기본 소양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탁월한 인재는 기본 소양을 갖춰야 한다. 똑똑하고 유능하지만 인간적 소양이 부족할 경우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이 그릇될 경우 기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무능한 경우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은 1929년까지 40여 년간 삼류 대학이었다. 그런데 1929년 시카고대학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허친스(Robert Maynard Hutchins) 총장이 오늘날 회자되는 ‘시카고 플랜’을 시행한다. ‘시카고 플랜’은 “철학 고전을 비롯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마스터하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는 취지의 인문학 교육 플랜이었다. 시카고대생들은 ‘시카고 플랜’이 발표되자 100권의 고전 철학을 읽어야만 졸업이 가능했고, 이러한 교육을 받는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 큰 성과를 이루어내는 인재들로 성장해 나갔다. ‘시카고 플랜’이 시작된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졸업생들이 받은 노벨상만 73개에 이른다. 또한 ‘시카고 플랜’으로 시카고 대학은 명문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져가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빠르고 구체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시대에 인문학 교육은 마치 뒤쳐지는 학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한 기업과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학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을 갖추고 새로운 전문성과 기술을 익혀야 기업과 사회를 선도하는 기업가와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변화의 물결이 거칠어지는 시대, 이런 시대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이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서 그 중요성은 점점 증대될 것이다.



글= 휴넷에듀테크연구소 홍정민 소장

정리= 경규민 한경닷컴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