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낮은 임금에도 주택 임차료만 올라 고통 가중
열악한 주거환경에 '쥐 E형 간염' 발병도 잇따라
"집값 급등이 무슨 소용"…홍콩 빈곤층 9년래 최대
홍콩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빈곤층 인구는 9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커져 홍콩 경제의 명암을 여실히 드러냈다.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명보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의 빈곤층은 전년보다 2만5천 명 늘어 137만7천 명에 달했다.

이는 2009년 이후 9년 만에 최대치이다.

전체 인구 중 빈곤층의 비율을 뜻하는 빈곤율은 20.1%에 달한다.

5명 중 1명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빈곤층 어린이도 전체 어린이의 17.5%에 달했다.

빈곤층은 월평균 소득이 세전 가구 소득 중간값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해당한다.

홍콩의 경우 1인 가구는 4천 홍콩달러(약 58만원), 2인 가구는 9천800 홍콩달러(약 141만원), 3인 가구는 1만5천 홍콩달러(약 216만원) 미만이면 해당한다.

홍콩 정부는 "고령화로 인해 소득이 낮은 노인 가구가 늘어나고, 전반적인 임금 상승으로 빈곤층 소득 기준이 높아져 예전에는 빈곤층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가구가 빈곤층에 속하게 된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빈곤층 증가는 부동산 호황과 중국 관광객 유입 등에만 의존하는 홍콩 경제의 기형적 구조와 극심한 빈부 격차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6천 달러를 넘지만, 시간당 최저임금은 34.5홍콩달러(약 5천원)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올해 1인당 GDP 3만 달러 진입이 유력한 우리나라의 내년 최저임금이 8천350원이라는 것에 비춰보면 홍콩 서민들의 임금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
"집값 급등이 무슨 소용"…홍콩 빈곤층 9년래 최대
더구나 홍콩 집값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으로 폭락한 이후 14년 동안 6배 가까이 폭등해 아파트 가격이 평(3.3㎡)당 1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집을 여러 채 소유한 부유층 등은 부동산 가격 급등을 만끽하지만, 대다수 서민은 급격하게 오른 주택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허리가 휠 지경이다.

정부에서 공급하는 공공 임대주택의 임차료는 저렴하지만,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5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인 박 모 씨는 "홍콩의 서민 아파트에 가 보면 아파트 한 채를 여러 가구가 나눠쓰는 것은 물론, 방 하나를 두 사람이 나눠서 쓰는 경우마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홍콩에서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쥐 E형 간염'의 발병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월 홍콩 가오룽 지역에 사는 56세 남성이 세계 최초로 쥐 E형 간염에 걸린 데 이어 최근에는 웡다이신 지역에 사는 70세 여성이 두 번째로 쥐 E형 간염에 걸린 사실이 확인됐다.

복통, 피로감, 식욕 부진 등을 호소하던 이들은 다행히 완치됐다.

발병 원인은 쥐의 대변이 이들의 음식물과 접촉했기 때문으로 추정되지만, 두 발병자의 거주지가 3㎞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점에 비춰볼 때 사람에 의한 전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홍콩 위생 당국이 잡은 쥐는 1만4천여 마리, 쥐약 등으로 죽인 쥐는 2만6천여 마리에 달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