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애국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해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데요. 이번에는 마라톤 경주에서 그런 일일 생겨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쑤저우(蘇州)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던 중국 선수가 국기를 억지로 넘겨주려고 한 자원봉사자 때문에 진로를 방해받아 우승을 하지 못했는데요.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 대표로 출전했던 허인리(何引麗·30) 선수는 결승선을 코 앞에 두고 에티오피아의 아얀뚜 아베라 데미세 선수와 접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승선을 500m 앞둔 지점에서 갑자기 한 자원봉사자가 뛰어들더니 그녀에게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건네주려고 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선수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하던 허인리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자원봉사자가 그녀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이 자원봉사자는 도로 한가운데로 나와 허인리에게 중국 국기를 내밀었습니다.

허인리는 어쩔 수 없이 오성홍기를 받아들었지만, 상당히 큰 국기를 들고 뛰는 게 쉽지 않았던지 몇 초 지나지 않아 국기를 떨어뜨리고 말았지요. 그 사이 추격해오던 에티오피아 선수는 허인리와의 격차를 좁혔고 결국 허인리는 5초 차이로 우승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경기를 생중계한 관영 CCTV는 “선수는 이를 악물고 뛰고 있는데 경기장으로 들어와 방해를 하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경기에 개입한 자원봉사자의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이를 본 많은 대중들도 “경기 관계자들은 최소한 선수가 경기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고 일침을 가했지요.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허인리가 국기를 존중하지 않았다며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한 누리꾼은 “국기를 제멋대로 땅바닥에 던진 것은 국기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며 “대회 성적이 국기보다 중요하냐”고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허인리는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국기를 던지지 않았다. 국기가 비에 흠뻑 젖어 있었던 데다 팔이 경직돼 있어 팔을 흔드는 과정에서 떨어진 것”이라며 “이 일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사과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중국에서 국기를 던지는 행위를 하면 3년 형의 징역형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과를 한 것이란 얘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자원봉사자가 국기를 건넨 것은 돌출 행동이 아니라 대회 주최 측이 애초에 계획한 것이라는 것도 드러났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회 관계자는 “1위부터 3위를 기록한 중국인 주자는 반드시 중국 국기를 걸치고 결승선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방침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로 지난 9월 베이징 마라톤 대회에서 4위로 들어와 중국인으로서는 최고 성적을 올린 리쯔청도 결승선에 들어오기 전 자원봉사자에게서 오성홍기를 건네받았습니다.

중국의 거세지는 애국주의 성향은 1989년 텐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강화된 애국주의 교육 영향이 크다는 지적입니다. 텐안먼 사태 이후 국가주석에 오른 장쩌민(江澤民)은 민주화 운동을 매국주의라고 폄하하고 전국 학교에 애국주의 강화 교육을 지시했습니다. 1994년 8월에 중국 공산당이 발표한 ‘애국주의 교육 실시 강요’는 현대 중국에서 애국주의와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일치하고 공산당의 지침에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못 박았습니다. 줄고는 있지만 아직도 중국 TV에선 항일 드마라가 자주 방영됩니다.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면서 생긴 자신감은 애국주의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1996년엔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타오로는 애국주의가 중국 외교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중국 정부가 여전히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보복을 거두지 않는 이유도 중국 여론을 의식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