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성장정책을 이끄는 민관 합동 조직인 혁신성장본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났으나 핵심 규제 해소에 손도 못 대고 있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규제를 풀겠다는 방침이었지만 관련 실적이 전무하다. 내년 상반기까지만 운영되는 한시 조직이다 보니 “이러다 용두사미 꼴로 문 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50억 예산 받고도…혁신성장본부 규제개혁 '0'
공론화 실적 ‘제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혁신성장본부는 지난 6월 출범 당시 편성된 예산(예비비) 45억4600만원 중 9월까지 집행액이 3억500만원에 그쳤다. 집행률은 6.7%다. 특히 규제혁신 공론화 추진 등 혁신성장정책 발굴을 위한 용역비로 33억5800만원을 배정받았으나 집행 실적이 전무했다. 지금도 일부 연구용역 작업만 이뤄지고 있을 뿐 규제혁신 공론화 추진 계획은 수립되지 못하고 있다.

혁신성장본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5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혁신성장정책을 활성화하라”고 주문한 데 따라 기재부 산하에 설립됐다. 공공 본부장인 고형권 1차관 등 기재부 공무원 28명과 민간 본부장인 이재웅 쏘카 대표 등 29명으로 구성돼 있다.

혁신성장본부는 출범 당시 올 7월 말까지 10~20개 규제혁신 리스트를 추리는 한편 국민과 이해관계자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공론화를 통해 규제 해소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앞서 김 부총리는 1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에서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의사·간호사 수 확대, 원격의료 허용, 비상 상비약의 슈퍼마켓 판매 허용, 카풀 앱(응용프로그램)의 출퇴근시간 외 허용 등을 대표적인 규제 관련 현안으로 꼽으면서 “연내 공론화 절차를 밟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규제혁신 리스트 발표마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공론화 절차 역시 한 번도 추진되지 못했다.

내년 예산 대폭 감축

혁신성장본부의 내년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그동안의 활동 내역이 미미한 데 따른 조치다. 내년 1~6월 운영을 전제로 올해 예산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14억8100만원이 편성됐다. 국회는 이마저 삭감하려는 움직임이다. 기재위는 예산안 예비심사 결과보고서에서 혁신성장본부 예산에 대해 “여비와 사업추진비가 과다 편성됐다”고 지적했다.

혁신성장본부를 만든 김 부총리도 부진한 성과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혁신성장과 관련, “2기 경제팀은 더 실질적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가 다음달께 퇴임하면 혁신성장본부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가 “신산업 및 4차 산업과 관련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규제개혁을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어 오히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홍 후보자는 부총리로 지명된 이달 9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당면한 가장 큰 규제개혁 이슈로 ‘공유경제’를 꼽았다. 상당수 국가에서 허용된 카풀 앱 등 승차공유 모델은 국내에선 불법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설사 공유경제를 공론화로 풀어나간다 해도 그 과정에서 이해집단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