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ㅣ 김성오 악당이라도 다 같진 않다 … 이번엔 유쾌

악당인데, 소름 돋게 무서운데, 웃긴다. 영화 '성난황소' 속 김성오의 모습이다. 김성오가 '성난황소'에서 연기하는 기태는 마약과 인신매매, 납치와 감금, 고리대금까지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는 악당이다. 접촉사고가 났던 강동철(마동석 분)에 대한 분풀이로 그의 아내 지수(송지효 분)를 납치하면서 극 중에선 '기태'란 이름보다 '납치점'으로 더 많이 불린다.

그럼에도 묘하게 귀엽고 웃긴 부분이 있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악당 로켓단이 겹쳐보일 만큼 만화적인 부분도 엿보인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악당을 완성해낸 김성오를 만났다. 장난기 가득한 말투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던 김성오는 자신을 향한 이미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진솔한 매력을 드러냈다.

▲ 김성오 효과인가. 악당이지만 밉지만은 않다.

틀린 말은 안 하는 놈이라 그런 게 아닐까. 저에게도 똑같이 아내가 납치당한 뒤 그렇게 거액의 돈을 준다면, 이성적으론 '돈보다 사랑이지'라고 하면서도 멈칫하며 고민은 할 거 같다. 연기를 하면서 '알파고에게 똑같은 상황을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해봤다. 아마 기태처럼 대답하지 않았을까.

▲ 그래서 이 작품을 택한 건가.

캐릭터보단 감독님이 더 큰 요인이었다. 대본을 받고 감독님과 제작사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시나리오에 활자로 표현된 것들이 아닌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았고, 궁합이 잘 맞더라. 재밌겠다 싶었다.

▲ 김민호 감독이 '성난황소' 미디어데이에서 "기태를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덜어내 아쉽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연기자로서 섭섭하거나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전 잘하신 거 같다. 관객입장에서 영화는 '재밌냐', '재미없냐' 이게 전부다. 슬픔의 재미든, 기쁨의 재미든, 영화는 재밌으면 되지 않나. 기태라는 역할이 영화상에서 악당이고, 악당 그 자체로 재미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거 같다.

▲ 악랄하진 않지만 분명 센 캐릭터다. 이런 역할을 맡으면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도 캐릭터에 몰입했다가 탈출하는 그런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웃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공연을 할 땐 무대에서 연기가 잘 된 날은 가만히 땀 흘리고 앉아 있으면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를 할 땐 모르겠더라. 그런 적이 없어서 이해도 안되고, 한 땐 '난 몰입이 안되는데, 자질이 없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웃음) 제가 언제까지 연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잘 느낄 수 있길 바라본다.

▲ 악역이지만 유쾌함이 있다. 배역을 준비하면서 고민하거나 참고한 것들이 있을까.

감독님의 조언이 컸다. 재밌고, 유쾌한 15세 관람과 액션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하셨고, 그런 작품에서 기태를 어떻게 세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사실 영화에서 기태는 동철을 단 한 대도 때리지 못한다. 기태는 센 척하지만 더 센 사람한테는 무서움을 느끼는 그런 인물이라고 보고 캐릭터를 완성해 갔다. 학창시절 일진같은 느낌이랄까.

▲ 마동석 씨한테 맞을 땐 연기지만 무섭진 않았나.

무서운 건 없었다. 영화 '반창꼬'를 같이 했고, 워낙 잘 알고 지냈던 형이다. 그런데 '실타'를 해서 눈치를 본 적은 있다. 마동석 형은 연기라고 해도 실제로 뺨을 직접 때리거나 타격을 가하는 실타를 싫어한다. '다친다'고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극 초반 충돌 장면에서 기태의 감정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실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상대역이었던 이성우 배우와 합의를 해서 실타로 한 번에 가자고 했는데, 설정상 입안에 금니를 해 놓은 것 때문에 입술이 터졌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었지만, 입에서 피가 흐르는 걸 보면서 '사고 쳤다' 싶어서 무서웠다. 자꾸 눈치를 보게 됐다.

▲ 그래서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다행히 혼을 내진 않았다. 그런데 그 후로 때리는 장면이 등장하면 다들 저를 찾아와서 '진짜로 때리면 안 돼요' 하더라. 전 실타 생각도 없었는데 자꾸 그러시더라.(웃음)

▲ 이번 작품도 그렇지만 워낙 악역 연기를 잘해서 '악역 전문'이라는 평도 있다.

요새 전문직이 각광받지 않나. 병원도 성형외과, 피부과는 종합병원이 아닌 전문병원을 찾고. 식당도 여러 음식을 팔면 맛이 없다. 그런 의미로 잘 포장해 주시면 좋겠다.(웃음) 사실 예전엔 싫었다. 내가 악당이 되려고 연기자가 됐나 싶더라. 그런데 생각해보니, 전 영화라는 장르에 배우로 참석하고 싶었던 건데, 이미 그 꿈을 이룬 거였다.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거니까. 악역이든 뭐든 저를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행복하다.

▲ 따지고 보면 악역을 많이 한 것도 아니다. '아저씨', '널 기다리며' 정도. '불한당'도 형사 아닌가.

맞다. 그리고 악행이라는 행위는 비슷해도 사람은 다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에 집중하면 다른 연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 아이가 생기고 나서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 선택을 가리게 된다는 배우들도 있다.

아직은 전혀. 색시가 제 작품 선택에 관여하는 건 없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이걸 해야 하나'라는 생각할 땐 있지만, 캐릭터 자체를 고민하진 않는다. 이건 아빠의 일이다. 다만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영화를 하고 싶긴 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믿음인데, 우리 아이는 아빠가 짜증 나고 이상한 역을 해도 '우리 아빠는 배우고, 이렇게 멋있게 살았구나' 말해주지 않을까.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 나쁜 역할만 하는 거야?'라곤 안 할 거라 믿고 싶다.

▲ 입담이 좋다. 예능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는 건 어떤가.

친구들이 저보고 무인도에 갖다 놓아도 일주일은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 진짜로 각본이나 연출 없이 그렇게 생존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도전해보고 싶다. 물론 씻거나 양치도 안하고.사냥을 못해 배가 고파 하루종일 누워있기도 하고.(웃음) 운동하는 프로그램도 좋겠다. 제가 잘하진 못하지만 복싱을 배우고 있는데, 아마추어 대회 출전을 목표로 복싱에 문외한인 사람을 모아놓고 함께 훈련하면 재밌지 않을까.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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