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한진칼이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자사 지분구조를 공시했습니다. 공시 내 뜻밖의 내용이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의결권 총 발행주식 5917만458주 가운데 9%에 해당하는 532만2666주를 그레이스홀딩스라는 생경한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진칼 시작일 뿐…행동주의, 지배구조 '골골' 기업 겨눈다
그레이스홀딩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의 자회사입니다. 실질적으로 그레이스홀딩스의 모회사 KCGI가 한진칼의 회사 지분 9%를 획득했다는 뜻입니다.

공시를 발표하기 전 2만4650원이었던 한진칼의 주가는 이튿날 2만885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2018년 11월 22일 52주 신고가로 3만2100원을 갈아치웠습니다. 3년 래 최고치였습니다. 주식을 산 회사가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다는데 투자자 생각은 반대인 겁니다. KCGI가 회사 가치를 더 키워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배어있죠.

어찌 된 일일까요? KCGI는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의 영어 이름입니다. 말 그대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펀드 운용사죠. 사모펀드가 주주로서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신호'만으로 한진칼의 주가가 오른 셈입니다.

KCGI는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라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한진그룹을 소유한 조양호 회장 일가를 정조준한 셈입니다. 9% 지분을 가진 2대 주주 KCGI가 50%에 이르는 소액 주주들과 연대한다면 한진칼의 경영권 인수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게다가 대한항공은 '땅콩 회항', '물컵 투척', '밀수 밀반입' 등 조 회장의 두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사태로 지난 3년 내내 홍역을 앓았습니다. 재벌 2세의 안하무인 '갑질'과 국적 항공사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 탓에 국민적 공분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KCGI가 여타 주주와 연대해 조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한다고 해도 오히려 이를 반길 국민 여론이 많다는 뜻입니다. 대한항공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기업이 될 수 있다면요.

'사필귀정'과 닮은 이 같은 KCGI의 행보는 사회투자펀드로 불리는 '주주행동주의'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가 단순히 주식을 보유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투자 의식입니다. 기업의 구조조정, 배당 확대, 경영진 교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영참여를 요구하죠.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라고도 불립니다.

# 52주 신고가 갈아치운 한진칼 주식

한진칼은 외부 경영권 공격을 받을 거란 지적이 계속 있던 기업입니다. 한진칼은 최대 주주의 지분이 28.95%에 불과하지만 많은 알짜 기업을 거느리는 지주사입니다. 게다가 조 회장 일가의 승계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조 회장 후대를 이을 3남매의 지분율도 낮습니다. 행동주의 움직임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는 취약점을 가진 그룹 지배구조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룹 지배구조가 C등급으로 분류됐죠. 수많은 사전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진그룹과 조 회장은 지배구조개선에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은 셈이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2003년부터 기업 지배구조 평가를 실시해왔습니다. 2011년부터는 사회책임과 환경경영이 포함된 ESG 평가를 통해 매년 국내 상장회사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을 평가하고 있죠. 평가 대상은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 전체, 코스닥시장 상장회사 일부(대형주, 금융회사, 대기업집단 소속회사), 기관투자자가 평가를 요청한 상장회사, 기타 평가를 요청한 회사입니다.

평가 절차는 사전조사, 평가수행, 등급도출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사전조사를 통해 기업공시, 감독기구와 지자체 등의 공시자료, 뉴스 등 미디어 자료를 수집합니다. 수집한 기초데이터를 바탕으로 기본평가와 심화평가, 기업피드백을 통해 정량평가를 수행합니다. 정량평가에서 일정기준 이상의 등급을 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통한 정성평가를 실시해 최종 등급을 결정합니다.

한진칼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내내 지배구조 C등급을 받았습니다. A+부터 D등급까지의 평가등급 중 두 번째로 낮은 등급입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018년 8월에 발표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지배구조 저평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합니다. KCGI의 경영 참여 소식에 한진칼의 주가가 상승할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보고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의 지분 보유량과 기업의 지배구조 수준이 기업 가치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많이 보유한 회사일수록, 그리고 기업지배구조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일수록 '비정상 누적평균수익률'이 더 크고 유의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비정상 누적평균수익률은 일정기간 동안 기대 수익과 실제 수익의 차이를 합한 값입니다. 어떤 사건이 표본 기업의 주가에 미친 단기적 영향을 관찰할 때 사용됩니다.

쉽게 말해 국민연금의 영향력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의 주식 가격이 예상보다 높아졌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한진칼의 지배구조 수준은 C등급으로 매우 저조하기 때문에 그만큼 주식 가격이 오를 여지가 있는 셈입니다.

# 2017~18년 지배구조 C, D 등급 기업 명단



ESG평가는 환경경영(Environmental), 사회책임경영(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입니다. 기업의 경영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인지, 사회구성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지배구조가 건전한지 평가하고 종합적인 지속가능경영 등급을 나타내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속가능경영은 모든 기업이 추구해야할 필수적인 경영방침입니다. 지속가능경영 성과는 투자자가 투자대상회사와 규모를 결정할 때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한진칼은 지배구조와 더불어 사회, 환경에서도 'B이하' 등급을 받았습니다.

2018년 기업 지배구조 평가 결과 한진칼, 기아자동차, 남양유업, 농심, 신세계푸드, 웅진씽크빅, 한진중공업, 현대제철, 효성을 포함한 219개의 기업이 C등급을 받았습니다. 삼양식품, 오리온홀딩스를 포함한 26개의 기업은 최하 등급인 D를 받았습니다.

# 국내의 행동주의펀드 TIMELINE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2018년 9월까지 KCGI와 같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는 530개나 됩니다. 2010년 9월 말 130개에서 8년 사이 4배 이상 늘었죠. 출자 예정금액은 69조원에 달합니다. 사상 최대 규모로 성장 중이죠.

국내 기업을 겨냥한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입니다. 2018년 4월 3일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10억달러(약 1조500억원) 이상 매입하며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죠. 엘리엇은 "경영진은 그룹 내 계열사의 구조 개선과 자본 관리 최적화, 주주 환원을 어떻게 달성할지 세부적 계획을 공유해 줄 것을 요청한다"라고 직접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4월 28일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만들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엘리엇은 현대뿐만 아니라 삼성 그룹에도 총구를 겨눴습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죠. 당시 엘리엇은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반기를 들었습니다. 2016년엔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눌 것을 주장했습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것을 제안하고 30조원의 특별 현금배당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 1호는 바로 '장하성 펀드'입니다. 소액주주 운동을 이끌며 경제민주화를 주도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6년 라자드자산운용이 내놓은 한국지배구조펀드의 투자고문을 맡았습니다. 태광산업 대표이사 해임 소송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죠. 당시 '장하성펀드 편입 가능주'라는 소문이 돌면 무작정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장하성 교수의 이름만 빌린 헤지펀드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죠.

이외에도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으로 우후죽순 생겨났던 녹색성장 펀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청년희망펀드' 등 다양한 펀드가 생겨났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성장 동력을 차츰 잃었습니다.

# 해외의 행동주의펀드 TIMELINE
Mgmt.: Management
Cap.: Capital
Ptnrs.: Partners

2017년 해외의 주요 행동 투자자와 그들이 투자한 기업의 연평균 주가수익률입니다. 표에 나타난 주요 행동 투자자가 투자한 기업 수만 71개, 평균 시가총액이 191억원입니다. 특히 대형주를 겨냥한 투자가 2016년 19%에서 2017년 21%로 2%p 증가했습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450달러 규모를 넘는 행동주의 활동 비용이 사용됐습니다. 이는 2016년 대비 2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사인 맥킨지에 따르면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을 받은 기업의 평균 시가총액은 2010년 240억 달러에서 2016년 460억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 빈도수 또한 2016년에 280회 정도로 2010년보다 2.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2006년 칼 아이칸 연합이 KT&G의 주식을 대량 매입해 경영권을 위협한 사례가 유명합니다. 2005년 9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KT&G의 자회사인 인삼공사의 매각과 부동산 자산 처분 등을 요구하고 위임장경쟁을 통해 이사회에 진출하는 등 공격적으로 경영에 간섭했습니다. 당시 기업의 투명성과 주주가치를 제고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1년여 만에 1500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먹튀'했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반면 KCGI가 토종 펀드 운용사라는 점, 그리고 한진그룹 일가에 대한 여론이 '역대급'으로 부정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내년 주주총회에서 한진그룹 지배구조의 변화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밖에 '주주행동주의', '사회책임투자'를 언급한 인용문과 기사를 아래 표에서 통해 확인해보세요.

TIMELINE #행동주의펀드 기사모음
한진칼 시작일 뿐…행동주의, 지배구조 '골골' 기업 겨눈다

인용문과 기사 데이터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가져왔습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한경닷컴에서 배포한 기사 가운데 엘리엇, 현대, 주주행동주의, 사회책임투자, 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KCGI,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키워드가 포함된 인용문을 추출했습니다. 모두 60건의 기사가 검색됐습니다. 붉은색으로 강조된 키워드를 클릭하면 연결된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기사에 사진에 포함된 경우 사진을 함께 표시했습니다. 사진 저작권은 인용 기사에 표기된 원칙을 따릅니다.
한진칼 시작일 뿐…행동주의, 지배구조 '골골' 기업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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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박진우 한경닷컴 기자 dan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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