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과 첨단기술은 공존할 수 있을까? 이전의 단조로움이나 저생산성을 극복할 무언가에 대한 끝없는 탐색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두 개념은 같은 본능에서 출발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소위 융합과 초월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콘텐츠 산업 생태계에 분명 새로운 기회는 있다.

방송과 테이프

콘텐츠 산업 내에서 방송기술 분야는 보수적인 문화가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적용하는 데 있어 보수적 관점은 상당히 심한 편이다. 단적인 예로 테이프(Tape)가 그렇다. 카메라부터 편집, 저장 등 방송 업계에서 콘텐츠가 생산되고 처리되는 모든 공정에서 테이프는 이제 기술적으로 필요 없는 시대이다. 촬영부터 편집, 전송까지 전 과정에 디지털화가 이루어졌고, ‘Tapelss 제작 환경’이 검증되고 적용된 지도 한참 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양의 테이프가 생산되고 소비된다. 파일(File) 기반의 작업이 (최소한 기술적으로는) 검증되었고, 실제로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현상은 진행 중이다. 방송 콘텐츠 생태계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라면 이 같은 현상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기술은 진보하고, 진보된 기술에 대한 유혹은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들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파일과 네트워크, 클라우드로 이루어진 방송 콘텐츠 프로세스가 확산되면서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다.

약 1년 전,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방송 송출기술 분야 네트워크 이론에 대한 사내 학습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보수적인 기술인력들의 심리적 저항을 우려하면서 시도한 일이다. 결과는 예측 밖이었다. 어느 날에는 너무 많은 신청자들이 몰려 교육 일정이 장기화 될 것 같고, 심지어 일부 직원들은 일과 후 개인적으로 회사 밖에서 교육을 받고 있을 정도라는 보고를 받기도 했다. 선입견은 깨지기 위해 있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었다. 현장 근로자들이 느끼는 변화와 그 변화로 인한 동기부여는 예상보다 큰 것이다.

산업발전과 정보기술의 영향력, 그리고 아날로그

정보기술이 모든 산업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왔다는 점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다. 20세기 이후 산업화의 흐름은 정보기술이 주도해왔다. 그렇게 오로지 발전과 진보만이 최선으로 여겨졌던 정보기술에 최근 사뭇 다른 시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미래의 인간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고,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키워왔던 기술이 오히려 노동자의 소득을 경감시키고 삶의 질을 낙후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이다.

우선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는 최신 용어일까? 최근에야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기술일까? 아니다. 이미 이 분야는 수십 년 전부터 괄목할 만한 연구와 실적을 꾸준히 창출해왔고, 이제 우리는 그 산업화된 결과물을 손에 쥐며 비로소 실감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이미 가정의 전기밥솥에도, 무인주차 시스템에도 존재하는 일상이 된지 오래다. 이른바 지식공학과 맥을 같이 하는 인공지능은 다양한 표현과 형태로 현대사회에 자리잡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주는 혜택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대두되는 것은 이렇게 일상에 파고든 기술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에는 디지털에 대한 반기, 또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논하는 이야기들이 다시금 주목 받기도 한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얼마 전 출간된 <아날로그의 반격 (The Revenge of Analog)>에서 전통적이면서 깨지기 어려운 아날로그적 가치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한다. 종이, 레코드판, 필름 등 여러 주제들 중 ‘로봇을 대체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전통적으로 창의성보다 생산성이 우선시되는 제조업에서 어떻게 수공업적 접근으로 10년도 안된 브랜드가 성공적인 성과를 창출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미국의 시계 브랜드 시놀라(Shinola) 이야기다.

창의성이 대두되는 영역에서는 아날로그의 가치에 대한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연필과 지우개가 없으면 한 자도 쓸 수 없다고 했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고 저녁마다 책상 위에 지우개 가루가 수북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날로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최근의 분위기는 단순한 복고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이후의 시대에 새롭게 형성되는 가치를 말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면 급격화된 디지털화, 정보기술의 적용에 대한 반격이나 Revenge가 아닌,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지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런 창의와 기술의 공존 문제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 내부의 직업 가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창의성과 정보기술이 공존하는 방법들

인간의 판단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의 등장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의미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인공지능(정확히는 전문가 시스템) ‘마이신(MYCIN)’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혈액 감염 진단과 치료에 주력한 의료분야 자동화 진단 시스템이었다. ‘마이신’은 일반 임상의보다 더 일관되고 정확한 충고를 제시한다는 증거가 충분히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때로 의사보다 정확했다는 마이신은 실제 의료산업에 적용되지 않았다.

“그동안 나온 연구 논문들을 모면 그런 시스템이 임상의보다 더 일관되고 정확한 충고를 제시한다는 증거가 종종 눈에 띄지만, 구현 단계에 들어서려면 아직 멀었다. 아마도 내과의들의 저항, 의료사고 소송에 대한 불안, 인식 부족이 주요 원인인 듯하다. 앞으로 인지 기술은 이런 장벽을 극복할 만큼 강력해지고 가시화될 것이다. 의료가 너무 까다로운 분야라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 토머스 대븐포트, 줄리아 커비, 강미경 옮김, 김영사

정보기술이 의료 분야의 획기적 발전을 이끌어 온 것은 분명하지만, 인공지능이나 전문가시스템이 적용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마이신’은 어쩌면 기계나 시스템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저항감 표출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이신의 사례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개발된 시기가 이미 1970년대였다는 점 때문이다. 산업의 모든 영역을 넘어 전문가적 판단과 작업에 기계적 시스템이 개입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시도되고 개발되어 온 것이다.

그럼 이제 창의의 분야로 시야를 좁혀보자. 창의성은 정보기술 또는 디지털의 개념과 언제나 대치해왔을까? 오래전부터 예술 분야에서도 디지털 매체나 정보기술들은 적극적인 수단으로, 때로는 작업의 대상으로도 차용되어 왔다. 1960년대에 시작되었고 한국의 백남준 선생도 포함되어 잘 알려진 미술운동 그룹 ‘플럭서스(Fluxus)’에 대한 다음의 언급을 들여다보자.

“화가나 조각가나 사진가의 구별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더 이상 매체에 구애받거나, 그것의 고유성을 고집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필요하면 드로잉을 하거나 페인팅을 할 수도 있지만, 필요하면 펜이나 붓 대신에 언제라도 카메라나 비디오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혹은 일상의 오브제로 설치 작업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신체로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을 게다. 매체의 고유성과 순수성에 집착하던 모더니즘의 붕괴를 이보다 더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있을까?

공교롭게도 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아날로그 매체들 사이에 존재하던 질적 차이를 지워버리는 오늘날의 기술적 조건과도 맞아 떨어진다. 플럭서스의 작가들은 텍스트와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를 자유로이 오갔다. 그 세 가지 모드로 상호 변환될 수 있는 것이 또한 디지털 매체의 특성이 아닌가. ‘플럭서스’는 그 이름이 함축하는 것처럼 문학적, 음악적, 연극적, 조형적으로 덧없는(ephemeral) 예술이었다. 디지털의 이미지 또한 그러하다.”

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 (10) 플럭서스, 경향신문, 2012. 11. 9

플럭서스가 전위적 예술운동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최고경영진 그룹이나 의사결정 단계에 디자인을 담당하는 자리가 위치해 있다. 제품의 핵심기술과 성능이 결정된 후 소비자의 활용성과 미적 가치를 더하기 위해 디자인이 참여하는 방식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디자인은 제품의 핵심가치 중 일부가 되었고, 디자이너는 단순한 드로잉이나 듣기 좋은 용어가 아닌 제품 설계 툴이나 데이터를 활용하여 의사결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시대이다.

콘텐츠 생태계 현장의 하이브리드 역량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한다. 현장은 어떨까. 최소한 방송기술을 포함한 콘텐츠 생태계를 전제로 하면 분위기는 다르다. 불안감과 저항 대신 새로운 활기가 느껴진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배울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방송을 포함해 OTT 등 콘텐츠 플랫폼 생태계 내의 기술자들은 감당하기 벅찬 노동시간에도 별도의 시간을 내서 네트워크 이론과 클라우드 개념, 기술이론과 신형 장비 운용 학습에 열을 올린다. 오랫동안 표준화된 생태계 기반에 익숙해있던 그들에게 새로운 경쟁력 포인트가 생긴 것이다. 엔지니어는 콘텐츠의 새로운 흐름과 경향에 관심을 갖고, 작가는 표현력을 극대화할 기술적 이론과 장치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창의성과 첨단기술은 공존할 수 있을까? 이전의 단조로움이나 저생산성을 극복할 무언가에 대한 끝없는 탐색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두 개념은 같은 본능에서 출발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은 로봇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국가에 해당한다. 기술이 생산성과 효율성에 도움이 된다면 주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콘텐츠 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창의성이 생태계 하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정보기술의 혜택을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보기술 덕에 신규 매체가 대거 등장했고, 데이터 분석 기술은 콘텐츠 상품의 흥행 예측부터 창작 기반까지 전방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소위 융합과 초월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고유의 영역을 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다. 정보기술, 지식공학, 인공지능 등은 오래된 기존의 직업을 사라지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없던 직업들이 생겨나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콘텐츠 산업 생태계는 그 대표적인 영역 중 하나이다. 프로그래밍하는 디자이너, 빅데이터를 이해하는 콘텐츠 작가, 어플리케이션을 응용할 줄 아는 웹툰 작가, 일러스트를 할 줄 아는 프로그래머 등 우리가 조만간 흔히 보게 될 사람들이다.

글=CJ 파워캐스트 미디어사업본부장 현상필 본부장

정리=경규민 한경닷컴 기자 gyu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