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 내건 블록체인의 민낯 '독과점'…"가상화폐 침체기 내년까지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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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블록체인 업계 전문가 진단
실체가 없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암호화폐) 아이디어를 신드롬으로 키운 건 팔 할이 ‘탈중앙화’였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내건 가치에 공감했고 새로운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투기 열풍은 결이 조금 달랐지만 ‘비트코인 현상’의 근원이 이같은 철학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21일 전문가들이 이번 ‘패닉셀’의 핵심원인으로 몇몇 키플레이어간 치킨게임을 지목한 이유다. 비트코인캐시 하드포크(체인분리) 방향성 논란은 소수의 해시파워(채굴력) 대결이 됐다. 실상은 독과점 구조란 얘기다. 퍼블릭 블록체인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며 암호화폐 시장까지 폭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패닉셀은 크게 왔다. 비트코인 가격이 한 주새 200만원 가량 빠졌다. 하락세는 갈수록 가팔라졌다. 연중 최저점을 잇달아 경신했다. 15일 새벽 700만원이, 19일 밤늦게 600만원이 무너졌다. 21일 오전 한때 500만원마저 깨졌다가 곧 회복했으나 이미 30% 가까이 내려빠진 뒤였다.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투매하며 하드포크 논쟁으로 촉발된 하락장에 가속도를 붙였다.
비트코인캐시·이더리움·이오스 등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도 동반 하락했다. 암호화폐 통계사이트 코인마켓캡닷컴 기준 글로벌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하락세로 접어들기 전인 지난 14일 2100억달러(약 237조3000억원)에서 3분의 2 수준인 1400억달러(약 158조2000억원) 내외까지 쪼그라들었다. 약 700억달러(약 79조1000억원)가 증발한 것이다.
◆ 고래 자존심 싸움에 휘청…'허상' 전락한 탈중앙화
고래(거물)들 싸움에 탈중앙화 기치는 허상으로 전락했다. 임현민 오버노드랩스 대표는 “비트코인 채굴력이 지나치게 소수에 몰려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하드포크 진영간 싸움이 격해지며 독과점 구조가 확연하게 표출됐다”며 “투자자들이 실망감과 불신에 매도하면서 패닉셀이 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몇몇의 자존심 싸움이 본질이란 지적도 나왔다. 이신혜 GBIC 한국대표는 “크레이그 라이트(엔체인 수석연구원)가 얼마나 자신을 증명하고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하는지에 달린 문제로 보인다”면서 “암호화폐 시장 ‘부(富)의 집중화’ 리스크를 드러낸 사태”라고 짚었다.
라이트 수석연구원은 비트코인캐시 하드포크로 블록 크기를 늘리자고 주장한 비트코인SV 진영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채굴자들이 상대방(비트코인ABC 진영) 편을 들면 비트코인을 매도할 것이라 경고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1000달러(약 112만원)까지 떨어져도 상관없다”고도 했다. 보유 비트코인 규모만 최소 100만개(약 5조3000억원)로 추정되는 그가 실제로 매도에 나서면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암호화폐 시장 불안의 한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비트코인ABC 진영의 우지한 비트메인 대표가 채굴력을 과시하며 맞불을 놓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 몇몇 주요행위자가 전체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꼴이 됐다.
보스코인 프로젝트의 블록체인OS 전명산 최고거버넌스책임자(CGO)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려 “비트코인캐시 보유자의 이익이나 의사와 상관없이 소수 입장만 관철됐다. 우지한이 비트코인 마이닝 파워를 전쟁에 가져다쓰겠다고 발언한 건 비트코인에겐 철퇴와 같은 공격”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과 같은 채굴 위주 작업증명(PoW) 방식의 실패란 시각도 있다. 대규모 시설을 갖춘 채굴업체의 독식 구조로 귀결되는 속성 탓이다. 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는 SNS에 “현재 PoW의 민낯을 보여주는 계기”라며 “거대 독점세력간 야합과 전쟁을 극복하지 못하면 코인판(암호화폐 시장)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썼다.
◆ 분쟁 당분간 지속…"연내 시세회복 쉽지 않을 것"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침체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봤다. 이번 사태의 빌미가 된 하드포크 분쟁 마무리 외에는 별다른 반등 모멘텀이 안 보이는데, 여전히 양 진영이 ‘갈 데까지 가보자’ 구도로 맞서고 있어서다.
중국의 유명 암호화폐 투자자 천웨이싱은 “어떤 하드포크도 메인 체인이 되지 않는 한 실패”라며 “진영간 대립으로 탈중앙화가 훼손된 실패사례”라고 했다. 비트코인ABC 진영의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도 “전쟁에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이 다른 사람들보다 덜 잃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비정상적 과매도 현상에 대해 이신혜 대표는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진 건 맞다. 하드포크 진영 싸움이 끝나야 안정화 수순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민승 코박 대표 역시 “불확실성 증가로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매도 후 관망세로 전환했다”며 “내년 1분기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특별한 모멘텀이 없으면 내년 중 반등이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했다.
종전과 달리 손쉽게 가격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김태원 글로스퍼 대표는 “2015년에도 비트코인이 급락한 적 있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여서 금방 회복했다. 그러나 이젠 비트코인의 볼륨(규모)이 커져 그렇게 되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진영이 손해를 보며 채굴 중이라고 귀띔한 임현민 대표는 “분쟁이 어떻게 일단락될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단 브램 코헨 비트토렌트 개발자는 SNS를 통해 “비트코인캐시 해시레이트 전쟁이 무기한으로 계속될 수 없으며 곧 종식될 것”이란 의견을 냈다. 승패가 확연히 갈리거나 한쪽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점이 조만간 올 것이란 설명이다.
중장기 반등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블록체인의 실용가치 창출을 통한 불신 해소와 기관투자자 시장 진입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소위 ‘환멸기’를 거치며 지친 투자자들이 빠져나가 투기 거품이 가라앉으면 전화위복 가능성이 생긴다고 봤다. 톰 리 펀드스트래트 공동창업자는 이번 비트코인 폭락이 도리어 기관투자자 유입 계기가 돼 반등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김봉구/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21일 전문가들이 이번 ‘패닉셀’의 핵심원인으로 몇몇 키플레이어간 치킨게임을 지목한 이유다. 비트코인캐시 하드포크(체인분리) 방향성 논란은 소수의 해시파워(채굴력) 대결이 됐다. 실상은 독과점 구조란 얘기다. 퍼블릭 블록체인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며 암호화폐 시장까지 폭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패닉셀은 크게 왔다. 비트코인 가격이 한 주새 200만원 가량 빠졌다. 하락세는 갈수록 가팔라졌다. 연중 최저점을 잇달아 경신했다. 15일 새벽 700만원이, 19일 밤늦게 600만원이 무너졌다. 21일 오전 한때 500만원마저 깨졌다가 곧 회복했으나 이미 30% 가까이 내려빠진 뒤였다.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투매하며 하드포크 논쟁으로 촉발된 하락장에 가속도를 붙였다.
비트코인캐시·이더리움·이오스 등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도 동반 하락했다. 암호화폐 통계사이트 코인마켓캡닷컴 기준 글로벌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하락세로 접어들기 전인 지난 14일 2100억달러(약 237조3000억원)에서 3분의 2 수준인 1400억달러(약 158조2000억원) 내외까지 쪼그라들었다. 약 700억달러(약 79조1000억원)가 증발한 것이다.
◆ 고래 자존심 싸움에 휘청…'허상' 전락한 탈중앙화
고래(거물)들 싸움에 탈중앙화 기치는 허상으로 전락했다. 임현민 오버노드랩스 대표는 “비트코인 채굴력이 지나치게 소수에 몰려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하드포크 진영간 싸움이 격해지며 독과점 구조가 확연하게 표출됐다”며 “투자자들이 실망감과 불신에 매도하면서 패닉셀이 온 것”이라고 풀이했다.
몇몇의 자존심 싸움이 본질이란 지적도 나왔다. 이신혜 GBIC 한국대표는 “크레이그 라이트(엔체인 수석연구원)가 얼마나 자신을 증명하고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하는지에 달린 문제로 보인다”면서 “암호화폐 시장 ‘부(富)의 집중화’ 리스크를 드러낸 사태”라고 짚었다.
라이트 수석연구원은 비트코인캐시 하드포크로 블록 크기를 늘리자고 주장한 비트코인SV 진영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채굴자들이 상대방(비트코인ABC 진영) 편을 들면 비트코인을 매도할 것이라 경고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1000달러(약 112만원)까지 떨어져도 상관없다”고도 했다. 보유 비트코인 규모만 최소 100만개(약 5조3000억원)로 추정되는 그가 실제로 매도에 나서면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암호화폐 시장 불안의 한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비트코인ABC 진영의 우지한 비트메인 대표가 채굴력을 과시하며 맞불을 놓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 몇몇 주요행위자가 전체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꼴이 됐다.
보스코인 프로젝트의 블록체인OS 전명산 최고거버넌스책임자(CGO)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려 “비트코인캐시 보유자의 이익이나 의사와 상관없이 소수 입장만 관철됐다. 우지한이 비트코인 마이닝 파워를 전쟁에 가져다쓰겠다고 발언한 건 비트코인에겐 철퇴와 같은 공격”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과 같은 채굴 위주 작업증명(PoW) 방식의 실패란 시각도 있다. 대규모 시설을 갖춘 채굴업체의 독식 구조로 귀결되는 속성 탓이다. 정우현 아톰릭스컨설팅 대표는 SNS에 “현재 PoW의 민낯을 보여주는 계기”라며 “거대 독점세력간 야합과 전쟁을 극복하지 못하면 코인판(암호화폐 시장)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썼다.
◆ 분쟁 당분간 지속…"연내 시세회복 쉽지 않을 것"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침체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봤다. 이번 사태의 빌미가 된 하드포크 분쟁 마무리 외에는 별다른 반등 모멘텀이 안 보이는데, 여전히 양 진영이 ‘갈 데까지 가보자’ 구도로 맞서고 있어서다.
중국의 유명 암호화폐 투자자 천웨이싱은 “어떤 하드포크도 메인 체인이 되지 않는 한 실패”라며 “진영간 대립으로 탈중앙화가 훼손된 실패사례”라고 했다. 비트코인ABC 진영의 로저 버 비트코인닷컴 대표도 “전쟁에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몇몇이 다른 사람들보다 덜 잃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비정상적 과매도 현상에 대해 이신혜 대표는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진 건 맞다. 하드포크 진영 싸움이 끝나야 안정화 수순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민승 코박 대표 역시 “불확실성 증가로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매도 후 관망세로 전환했다”며 “내년 1분기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특별한 모멘텀이 없으면 내년 중 반등이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했다.
종전과 달리 손쉽게 가격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김태원 글로스퍼 대표는 “2015년에도 비트코인이 급락한 적 있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여서 금방 회복했다. 그러나 이젠 비트코인의 볼륨(규모)이 커져 그렇게 되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진영이 손해를 보며 채굴 중이라고 귀띔한 임현민 대표는 “분쟁이 어떻게 일단락될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단 브램 코헨 비트토렌트 개발자는 SNS를 통해 “비트코인캐시 해시레이트 전쟁이 무기한으로 계속될 수 없으며 곧 종식될 것”이란 의견을 냈다. 승패가 확연히 갈리거나 한쪽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점이 조만간 올 것이란 설명이다.
중장기 반등요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블록체인의 실용가치 창출을 통한 불신 해소와 기관투자자 시장 진입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소위 ‘환멸기’를 거치며 지친 투자자들이 빠져나가 투기 거품이 가라앉으면 전화위복 가능성이 생긴다고 봤다. 톰 리 펀드스트래트 공동창업자는 이번 비트코인 폭락이 도리어 기관투자자 유입 계기가 돼 반등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김봉구/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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