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일 불과 열흘…역대 최악 '벼락치기 예산 심사'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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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림 심사' 내몰린 470조 예산안
국회 정상화 됐지만…시간에 쫓기는 예산소위
2014년 국회선진화법 이후 예산소위 가장 늦게 출범
與 '자동부의' 믿고 배짱…野 '벼랑끝 전술'로 대치
"감액심사만 1주일 걸리는데 증액심사는 언제 하나"
전문가 "제대로 된 심사 불가능"
국회 정상화 됐지만…시간에 쫓기는 예산소위
2014년 국회선진화법 이후 예산소위 가장 늦게 출범
與 '자동부의' 믿고 배짱…野 '벼랑끝 전술'로 대치
"감액심사만 1주일 걸리는데 증액심사는 언제 하나"
전문가 "제대로 된 심사 불가능"
“열흘 안에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증·감액 심사를 모두 끝내라고요?”
2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꾸려지자 국회 고위관계자는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예산소위가 상견례도 생략하고 이날 저녁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지만 예산소위 소속 의원실 보좌진은 “주말을 반납하고 감액심사만 바짝 해도 1주일 넘게 걸리는데 무리한 일정”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정쟁에 볼모 잡힌 470조원 슈퍼예산
11월은 예산안의 삭감과 증액을 논의해야 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할 시기다. 예년 같으면 이달 초부터 예산안 원안 가운데 국정 시책사업 예산을 최대한 삭감하려는 야당과 이를 방어하려는 정부·여당이 치열한 논리 대결을 벌여야 하지만 이미 한 달의 3분의 2를 허비해 버렸다. 게다가 내년도 예산 규모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가까이 늘어난 470조원에 달한다.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2014년부터 국회의 예산심사는 ‘예산안 자동부의제도’ 적용을 받는다. 말 그대로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어떤 항목을 깎고, 어떤 항목을 증액시킬지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그대로 다음달 1일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된다. 매년 쟁점법안과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벌이다가 연말까지 예산심사를 질질 끄는 구태를 막고, 여야가 최대한 이달 30일까지 심사를 끝내라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과 여권에 우호적인 의원 등을 합친 ‘범여권’ 의석은 최대 155석으로, 재적의원(299석)의 절반을 넘는다. 가까스로 예산소위를 출범시켰지만 여차하면 여권이 협상을 모두 무위로 돌리고 정부 원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부의하는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예산안 자동부의제도가 ‘힘의 논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제는 이뿐 아니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예산심사 기일을 단축하는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국회가 정부 예산안을 밀도있게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면서 예산심사 ‘품질’이 급격하게 하락했다는 점이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전부터 국회 예결위에 몸담았던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예전에는 여론의 지탄을 받더라도 12월 말까지 예산심사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무조건 12월1일까지 심사를 마쳐야 한다”며 “국회 고유 권한인 정부 예산안의 ‘삭감’을 위해 전 부처 예산을 다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야당이 대대적인 삭감을 벼르고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남북한 경제협력사업 등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심사를 못할 가능성이 크다.
‘소(小)위원회’라면서 16명까지 참여
예산소위는 전체 예산의 실질적인 증액과 감액을 결정하는 핵심 위원회로, 50명에 이르는 예결위 소속 의원이 밀도있게 증·감액 심사에 나설 수 없기 때문에 효율적인 심사 차원에서 인원을 압축해 편성한 회의체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의 자료에 따르면 역대 예산소위는 9명에서 11명, 13명으로 점차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15명으로 굳어진 것은 제19대 국회 첫해인 2012년부터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쟁점법안, 예산안 등 여야 대치가 불가피하지만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하는 회의체는 홀수로 규정해온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과반수 표결까지 갈 경우 찬성과 반대가 동수(同數)가 되지 않고 어떻게든 결론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예산소위가 16명으로 늘어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예산소위의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결위 핵심 관계자는 “현재 15명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압축 심사를 하라고 소(小)위원회를 꾸렸는데 정수를 16명까지 늘리면 회의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예산소위가 구성됐다고 해서 국회의 예산심사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지난해 예산심사 과정을 보면 예결위가 쟁점 예산안을 결론 내지 못해 대부분을 원내대표 협상에 넘겨버리는 무책임한 모습도 연출됐다. 예산부수법안인 세법개정안(법인세, 소득세 인상여부)도 담당인 기획재정위원회 산하 조세소위원회가 논의를 매듭 짓지 못하고 지도부에 협상을 떠넘겼다. 올해는 특히 작년보다 소위 심사 일수가 짧아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관계자는 “가뜩이나 늑장 출범한 예산소위가 부실 심사의 원흉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예산안 자동부의를 믿고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여당이나, 걸핏하면 원내 투쟁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야당 모두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2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꾸려지자 국회 고위관계자는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예산소위가 상견례도 생략하고 이날 저녁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지만 예산소위 소속 의원실 보좌진은 “주말을 반납하고 감액심사만 바짝 해도 1주일 넘게 걸리는데 무리한 일정”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정쟁에 볼모 잡힌 470조원 슈퍼예산
11월은 예산안의 삭감과 증액을 논의해야 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할 시기다. 예년 같으면 이달 초부터 예산안 원안 가운데 국정 시책사업 예산을 최대한 삭감하려는 야당과 이를 방어하려는 정부·여당이 치열한 논리 대결을 벌여야 하지만 이미 한 달의 3분의 2를 허비해 버렸다. 게다가 내년도 예산 규모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가까이 늘어난 470조원에 달한다.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2014년부터 국회의 예산심사는 ‘예산안 자동부의제도’ 적용을 받는다. 말 그대로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어떤 항목을 깎고, 어떤 항목을 증액시킬지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가 제출한 원안이 그대로 다음달 1일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된다. 매년 쟁점법안과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벌이다가 연말까지 예산심사를 질질 끄는 구태를 막고, 여야가 최대한 이달 30일까지 심사를 끝내라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과 여권에 우호적인 의원 등을 합친 ‘범여권’ 의석은 최대 155석으로, 재적의원(299석)의 절반을 넘는다. 가까스로 예산소위를 출범시켰지만 여차하면 여권이 협상을 모두 무위로 돌리고 정부 원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부의하는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예산안 자동부의제도가 ‘힘의 논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제는 이뿐 아니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예산심사 기일을 단축하는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국회가 정부 예산안을 밀도있게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면서 예산심사 ‘품질’이 급격하게 하락했다는 점이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전부터 국회 예결위에 몸담았던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예전에는 여론의 지탄을 받더라도 12월 말까지 예산심사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무조건 12월1일까지 심사를 마쳐야 한다”며 “국회 고유 권한인 정부 예산안의 ‘삭감’을 위해 전 부처 예산을 다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야당이 대대적인 삭감을 벼르고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남북한 경제협력사업 등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심사를 못할 가능성이 크다.
‘소(小)위원회’라면서 16명까지 참여
예산소위는 전체 예산의 실질적인 증액과 감액을 결정하는 핵심 위원회로, 50명에 이르는 예결위 소속 의원이 밀도있게 증·감액 심사에 나설 수 없기 때문에 효율적인 심사 차원에서 인원을 압축해 편성한 회의체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의 자료에 따르면 역대 예산소위는 9명에서 11명, 13명으로 점차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15명으로 굳어진 것은 제19대 국회 첫해인 2012년부터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쟁점법안, 예산안 등 여야 대치가 불가피하지만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하는 회의체는 홀수로 규정해온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과반수 표결까지 갈 경우 찬성과 반대가 동수(同數)가 되지 않고 어떻게든 결론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예산소위가 16명으로 늘어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예산소위의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결위 핵심 관계자는 “현재 15명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압축 심사를 하라고 소(小)위원회를 꾸렸는데 정수를 16명까지 늘리면 회의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예산소위가 구성됐다고 해서 국회의 예산심사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지난해 예산심사 과정을 보면 예결위가 쟁점 예산안을 결론 내지 못해 대부분을 원내대표 협상에 넘겨버리는 무책임한 모습도 연출됐다. 예산부수법안인 세법개정안(법인세, 소득세 인상여부)도 담당인 기획재정위원회 산하 조세소위원회가 논의를 매듭 짓지 못하고 지도부에 협상을 떠넘겼다. 올해는 특히 작년보다 소위 심사 일수가 짧아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관계자는 “가뜩이나 늑장 출범한 예산소위가 부실 심사의 원흉이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예산안 자동부의를 믿고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여당이나, 걸핏하면 원내 투쟁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야당 모두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