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홍대 인근을 구경하던 릴리에게 한 한국인 여성이 “서울여행을 같이 하자”고 접근했다. 이 여성이 릴리를 데려간 곳은 경기 광명시의 한 사무실. 이곳에서 릴리는 “조상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으려면 절을 하고 돈을 내야 한다”고 강요받았다. 그는 “벗어나고 싶어 1만원을 주고 나왔는데 다시는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사기 행각이 활개를 치고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도를 아십니까’라며 포교활동을 벌이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모습이다. 21일 낮 명동 일대에선 이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말을 거는 모습이 수차례 목격됐다. 근처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는 김희성 씨(29)는 “영어를 잘 못하는지 회화수첩을 들고 다니며 외국인에게 말을 거는 사람까지 봤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체로 혼자 온 외국인에게 길을 묻거나 영어연습을 하고 싶다며 접근하는 수법을 쓴다.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다도 행사(tea ceremony)’에 가자고도 한다. 이후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가 제사를 지내게 한 뒤 나이만큼 만원 지폐를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온라인상에선 이미 ‘한국 사이비사기단’에 당할 뻔했다는 외국인의 경험담이 넘쳐난다. 미국인 레이철이 “한복을 입고 제사를 지낸 뒤 조상에 대해 4시간 설교를 들었다”는 내용으로 유튜브에 올린 ‘한국 사이비에게 사기를 당하다(Scammed by Korea cult)’ 동영상은 21일 현재 조회수가 15만 건에 달한다. 동영상엔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댓글이 600개 넘게 달려 있다.
이들의 수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홍대 인근에서 노점상을 하는 김모씨(52)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짝을 지어 접근해 사기치려는 외국인을 안심시키는 신종수법도 쓴다”고 귀띔했다. 아지트에 따라가지 않으려는 외국인에겐 요양원이나 고아원 사진을 보여주며 그 자리에서 돈을 달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인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말을 받아주다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피해를 입어도 구제받을 방법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기부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게 대부분이어서 법적으로 손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릴리 역시 지난 18일 종로경찰서를 찾았지만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 접수조차 할 수 없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정 종교집단의 사기 등에 대해서 공사 차원의 대책을 세우진 않았다”며 “계도 차원에서 관광경찰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아란/구민기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