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가격경쟁에 매장 운영 불가"…가맹점-본사 갈등 증폭
화장품 로드숍 점주들 거리로…집단움직임 조짐
한때 길거리에 우후죽순 생겨나던 화장품 로드숍의 점주들이 매장 밖으로 나왔다.

온라인 저가 판매와 출혈경쟁 속에 구조조정에 직면한 탓이다.

이들 가맹점주는 본사와 갈등을 겪으면서 집단행동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 "온라인 할인판매에 멍든다" 가격 정상화 호소

20명 안팎의 가맹점주들은 22일 광화문 LG 사옥 앞에서 "올해 기하급수적으로 혼탁해진 온라인 가격 경쟁 탓에 더는 매장을 운영할 수 없다"며 "세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 25일에도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상생 협력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시종필 더페이스샵 및 NC가맹점 협의회장은 호소문에서 "본사들이 세일을 통해 매출 증가와 가맹점 이익 창출을 유도했으나, 결국 회사 간 과당 경쟁으로 이어져 역효과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온라인 판매 가격이 가맹점주에 공급되는 가격보다 싸다"며 "이에 가맹점주들은 수익률이 나아지지 않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사들도 경쟁 속에 최대 70% 세일 등 온라인 공급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시장을 흐리고 있다"며 "대기업의 과도한 매출 목표와 경쟁심리로 가맹점주들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됐다"고 강조했다.

시 협회장은 "가맹점들은 가맹본부의 관리하에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한 이익금으로 매장을 운영하는데, 세일 판매 금액을 분담률로 나눠 포인트(사이버머니)로 받고 있다"며 "경기 침체로 인한 매출 축소와 잦은 세일로 인한 수익 감소, 무분별한 온라인 시장, 내년 시급 인상 등으로 삼중 사중고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빨리 가맹점주의 수익률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유독 화장품 시장만 이토록 과도한 경쟁을 한다"며 "세일을 이용해 고객을 혼란에 빠트릴 것이 아니라 정직한 가격과 좋은 품질로 승부를 겨뤄야 하며 가격의 질서가 잡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맹점주들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마진 감소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추진도 검토하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LG생활건강 측은 그동안 전체 가맹점주 476명 중 107명의 가맹점주로 구성된 가맹점협의체(회장 김학영)와 5월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소통을 해왔다.

그러나 이 중 36명의 가맹점주는 7월 별도 모임을 구성하고 이 중 18명이 8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할인행사 강요행위' 등을 사유로 각 5천만원을 배상해달라는 조정을 신청한 바 있다.

더페이스샵 측은 "합리적, 객관적인 근거에 기초한 가맹점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상생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브랜드와 대다수 가맹점 이익을 해치거나 법인과 개인의 명예훼손 등 위법 행위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필요한 법적 조치도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화장품 로드숍 점주들 거리로…집단움직임 조짐
◇ "고래싸움에 새우등"…우후죽순 가맹점들 연대 조짐

화장품 로드숍의 경영난은 지난달 비상장사 스킨푸드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스킨푸드는 일시적인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채무 조정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 회생절차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일부 스킨푸드 가맹점주는 "경영 악화를 책임지지 않고 회피하려는 것"이라며 스킨푸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한 가맹점주는 "판매대행을 계약할 때 낸 수백, 수천만 원의 보증금도 안전하다고 여러 차례 얘기를 들었으나 돌려받을 길이 요원하다"고 토로했다.

시 협의회장은 내년에 이니스프리, 에뛰드와 연대해 상생 협력을 촉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아모레퍼시픽 계열사 이니스프리 가맹점과 가맹본부는 최근 상생협약을 맺은 바 있다.

이처럼 이들 로드숍의 갈등과 경영난은 수년 전부터 조짐을 보여왔다.

경쟁이 심화하면서 화장품 관련 매장만 전국에 7천 개가 넘을 정도로 포화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원 브랜드 숍만 해도 이니스프리,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에이블씨엔씨(미샤), 에뛰드, 잇츠스킨, 클리오, 토니모리, 더샘, 스킨푸드 등 브랜드가 전국에 5천860개 수준이다.

이들 업체는 주로 2000년대 급성장한 1세대 로드숍 브랜드로 꼽힌다.

여기에 롯데 롭스, GS리테일 랄라블라, CJ 올리브영, 신세계 부츠 등 H&B도 1천476개에 달한다.

수년간 자사 브랜드만 판매하는 로드숍이 거리마다 들어섰지만, 중국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 배치 보복에 직격탄을 맞고 출혈경쟁에 온라인, 면세점 판매 가세로 타격을 입었다.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헬스 앤 뷰티(H&B)숍이 대기업 중심으로 확산하자 기존 원 브랜드 로드숍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로드숍의 시초격인 '미샤'의 에이블씨엔씨와 토니모리는 올해 3분기에 적자를 냈다.

잇츠스킨을 운영하는 잇츠한불도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2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3.8%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H&B가 늘어나는 데다 온라인과 면세점 채널 비중이 높아져 기존 화장품 브랜드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로드숍은 매장 축소 등 구조조정과 채널 다각화와 같은 경영난 해소를 위한 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