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중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지난 6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10점 만점에 4.16점에 그쳤다. 미국(5.97점)은 물론 북한(4.71점)보다도 낮았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3.55점으로 더 낮았다.

중국과는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를 놓고 줄곧 대립하고 있다. 최근에도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방탄소년단 멤버가 입었던 ‘원자폭탄 티셔츠’가 한·일 사이에 논란이 됐다.

그런 가운데 중국 환구시보와 한·중·일 협력사무국이 주최한 한·중·일 3국 기자 합동취재 행사에 참여해 중국 베이징과 칭다오, 일본 도쿄를 최근 다녀왔다. 3국 간 협력 필요성과 동시에 얽히고설킨 미묘한 이해관계의 차이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6·25를 ‘북침’으로 보도했던 中인민일보

행사 첫 날인 지난 6일 오후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인민일보 본사를 방문했다. 인민일보는 잘 알려져 있듯이 중국 공산당 기관지다. 통합뉴스룸으로 안내를 받았다. 종이신문과 온라인, 모바일 뉴스를 총괄하는 통합뉴스룸의 이름은 ‘중앙 주방(뉴스 키친)’이다. 중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를 마치 식재료를 요리하듯이 잘 가공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의미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인민일보는 1948년 6월15일 창간 이래 발행한 모든 신문 지면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보관하고 있다. 뉴스 키친 입구에 설치된 대형 디스플레이에서 발행일자별로 신문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기자들이 1950년 6월26일자 신문을 보자고 요청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다음날이다. 연도와 날짜를 입력하자 지면이 바로 화면에 나타났다. 1면 톱기사 위치에 6·25 관련 기사가 보였다. 제목이 “조선공화국경비대전개방어전(朝鮮共和國警備隊展開防禦戰)”이었다. 북한군이 방어를 위한 전투에 나섰다, 즉 6·25가 대한민국의 선제공격으로 일어난 ‘북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이다.

인민일보는 지난해 해외판 공식 위챗(SNS) 계정에서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하려고 안 했다면 한반도에 어떻게 전쟁이 일어났겠느냐”며 “중국은 거기 휘말려 수십만 명의 생명이 희생당했고 미국과 20여년에 이르는 대결을 치렀다”는 내용의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했다. 김일성이 6·25를 일으켰다는, 다시 말해 ‘남침’이라는 기사를 올렸다가 중국 공산당 공식 입장과 차이가 있다고 판단해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보호무역 파고 속 탄력받는 한·중·일 FTA

한·중·일 3국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3국 간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등 보호무역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중·일이 협력해 자유무역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3국의 국익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다. 한국이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중국 역시 무역의존도가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수출 없이는 고도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 일본도 한국과 중국에 비해선 무역의존도가 낮지만 자동차 등 수출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자오진핑(趙晉平)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지난 8일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은 일관되게 보호주의와 일방주의 무역정책을 펴고 있다”며 “한·중·일 FTA를 하루라도 빨리 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도쿄에서 만난 기무라 후쿠나리 게이오대 경제학부 교수도 “한·중·일 FTA가 당장 어렵다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도 속히 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무라 교수는 “한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참여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5일 간담회에서 “한·중·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숙명”이라고까지 했다.

한·중·일 FTA 협상에 다시 속도가 붙을 조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다음달 한·중·일 FTA 수석대표 협상이 열릴 것”이라며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향력 높이려는 中, 거리두는 韓·日

3국 간에는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적지 않다. 한·중·일 FTA에 대해서도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린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 제조업에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일본은 농산물 개방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한국은 중국에 대해선 농산물 개방, 일본에 대해선 제조업 개방을 놓고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중국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과거와 달리 세 나라가 경쟁하는 산업 분야가 많아져 FTA에 체결 시 예상되는 보완 효과가 줄어든 것이다.

전략적 이해관계도 엇갈린다.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은 한국과 일본을 우군으로 확보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 관계자는 “3국 간 경제협력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면 정치적인 신뢰 구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해 지역 평화와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중국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자오 연구위원은 “평화 발전을 추구하고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국의 일관된 기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외부에서 중국을 보는 시각은 이와는 차이가 있다. 또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동맹은 동맹이고 경제적 이익은 경제적 이익”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무라 교수는 “미국이 통상과 안보를 엮어 한국과 일본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국 중국에 앞서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2일 만난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미국이 TPP에 복귀하도록 하는 데 통상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중·일 국민 2751만명이 3국을 오갔다. 한국인 714만명이 일본을, 385만명이 중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온 중국인과 일본인도 각각 417만명, 231만명에 이른다. 올해 3국을 오가는 관광객은 30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왕래와 교류가 더 깊고 넓어지면 중국과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