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국 경제, 늪에 빠진 게 아니라 새장 속 갇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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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펀 前 Fed 의장의 진단
20년간 '세계경제 대통령' 경험
400년 미국 경제사 풀어놔
"미국 활력 잃은 건 복지 급증 탓
경제 살릴 의지 있으면 극복 가능"
그린스펀 前 Fed 의장의 진단
20년간 '세계경제 대통령' 경험
400년 미국 경제사 풀어놔
"미국 활력 잃은 건 복지 급증 탓
경제 살릴 의지 있으면 극복 가능"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경제평론가인 애드리안 울드리지와 공동으로 400년간의 미국 경제사를 정리한 《Capitalism in America》(미국 자본주의, 펭귄프레스 간·사진)를 펴냈다. 그가 갑작스럽게 미국 경제사에 집중한 이유에 대해 그린스펀은 이 책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6~2006년 20년 동안 세계 모든 국가의 데이터 추이를 지켜보면서 미 경제의 운용 방향을 결정했던 그였기에 미국 경제가 지니고 있는 독특함과 수수께끼를 정리해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의 이런 욕구는 이 책의 첫 장에서 나타난다.
그린스펀은 ‘400년 전인 1620년 다보스포럼이 열렸다면 어떻게 전개될까’라는 상상을 하며 책을 시작한다. 중국과 터키, 스페인, 영국인들은 미래의 세기에서 자신들이 지배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름 근거도 제시한다. 하지만 지구상의 한 곳은 전혀 언급이 없다. 당시엔 지도에서 비어 있는, 흔적 없는 공간 아메리카다. 그로부터 100년 뒤 이 공간에 사람이 모여들고 경제권이 형성된다. 미국 경제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린스펀이 천착하는 미국 자본주의는 물론 유럽 대륙의 자본주의와 성격이 다르다. 세계 경제성장 속에서 태어난 첫 국가요, 계몽주의 유산이 배어든 나라다. 모험자본을 기반으로 한 프런티어십을 내세운 국가이기도 하다. 영국이 신사를, 프랑스가 지성을, 독일이 학자들을 존중했다면 미국은 오로지 비즈니스맨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였다. 영국의 기업가들은 비즈니스에 성공하면 부동산을 사들이고 명예와 직함을 구하려 야단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기업가의 권위보다 높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린스펀은 분석한다.
그린스펀은 이런 ‘기업 국가’의 역사를 바라보는 데 세 가지의 설명 도구를 쓴다. 생산성과 창조적 파괴, 그리고 정치다. 그는 특히 창조적 파괴에 주목한다. 파괴는 창조를 위한 희생이란 사실을 미국은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세상에서 가장 규제가 적은 파산법을 제정했다. 유령마을과 셔터를 내린 공장들은 앞으로 일어날 진보와 성장의 희생물로 여겼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미국사를 연대기별로 풀어나간다. 미국 독립의 해인 1776년에서 1860년을 ‘상업 공화국’의 시작으로 바라봤다. 재산권을 헌법에 처음으로 명기해 국가의 DNA로 삼았다. 수많은 이주민이 대서양 해안에서 내륙으로 뻗어나갔다. 농촌에서 도시로 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유동성은 생산성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경제를 두 갈래로 나눴다. 알렉산더 해밀턴을 근간으로 하는 산업 근대화 세력과 토머스 제퍼슨의 농업 경제 세력의 갈등이 차츰 커졌다. 결국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이어졌지만 이를 잘 해결하고 ‘자본주의 승리의 해(1865~1914)’를 맞는다. 철강 원유 등 경제 자원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막대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 혁신의 시기였다. 이어 대공황을 겪고 다시 성장의 황금시기(1945~1970)와 스태그플레이션(1971~1980), 낙관주의 시기(1980~2000)를 지난다.
그린스펀은 2001년부터를 침체기라고 규정한다. 지리적 이동이 감소하면서 창조적 성장과 파괴적 본능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사라졌다. 흑인들의 82%가 평생 같은 주에 산다.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대도시로 진출하는 건 엄청난 리스크다. 계층 상승도 점점 힘들어진다. 젊은 기술기업들도 2000년을 정점으로 줄고 있다.
그린스펀은 미국의 자랑이던 활력이 시든 이유로 복지후생의 지나친 확대를 꼽는다. 1935년 사회보장법 도입 이후 30년간 복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65~2016년 사이 매년 평균 9% 사회보장비 지출이 늘었다. 복지 수혜계층이 확대되고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국민의 65%가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를 받고 있다. 인구가 고령화하고 가격이 올라가면서 헬스케어 비용도 늘어난다. 사회보장과 의료보험이 연방 예산의 50%를 차지한다. 복지는 저축률을 낮추고 투자를 어렵게 해 생산성을 끌어내린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경제가 회복했다지만 이처럼 활력이 시들어가는 것은 여전하다고 그린스펀은 본다. 임금 상승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도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빈곤’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미국 경제가 늪에 빠져 있다기 보다 새장 속에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좋은 열쇠만 있으면 살려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 역사는 새장을 여는 데 필요한 열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줄곧 보여왔다며 경제를 살릴 의지가 정치권에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끝을 맺는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그린스펀은 ‘400년 전인 1620년 다보스포럼이 열렸다면 어떻게 전개될까’라는 상상을 하며 책을 시작한다. 중국과 터키, 스페인, 영국인들은 미래의 세기에서 자신들이 지배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름 근거도 제시한다. 하지만 지구상의 한 곳은 전혀 언급이 없다. 당시엔 지도에서 비어 있는, 흔적 없는 공간 아메리카다. 그로부터 100년 뒤 이 공간에 사람이 모여들고 경제권이 형성된다. 미국 경제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린스펀이 천착하는 미국 자본주의는 물론 유럽 대륙의 자본주의와 성격이 다르다. 세계 경제성장 속에서 태어난 첫 국가요, 계몽주의 유산이 배어든 나라다. 모험자본을 기반으로 한 프런티어십을 내세운 국가이기도 하다. 영국이 신사를, 프랑스가 지성을, 독일이 학자들을 존중했다면 미국은 오로지 비즈니스맨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였다. 영국의 기업가들은 비즈니스에 성공하면 부동산을 사들이고 명예와 직함을 구하려 야단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기업가의 권위보다 높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린스펀은 분석한다.
그린스펀은 이런 ‘기업 국가’의 역사를 바라보는 데 세 가지의 설명 도구를 쓴다. 생산성과 창조적 파괴, 그리고 정치다. 그는 특히 창조적 파괴에 주목한다. 파괴는 창조를 위한 희생이란 사실을 미국은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세상에서 가장 규제가 적은 파산법을 제정했다. 유령마을과 셔터를 내린 공장들은 앞으로 일어날 진보와 성장의 희생물로 여겼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미국사를 연대기별로 풀어나간다. 미국 독립의 해인 1776년에서 1860년을 ‘상업 공화국’의 시작으로 바라봤다. 재산권을 헌법에 처음으로 명기해 국가의 DNA로 삼았다. 수많은 이주민이 대서양 해안에서 내륙으로 뻗어나갔다. 농촌에서 도시로 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유동성은 생산성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경제를 두 갈래로 나눴다. 알렉산더 해밀턴을 근간으로 하는 산업 근대화 세력과 토머스 제퍼슨의 농업 경제 세력의 갈등이 차츰 커졌다. 결국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이어졌지만 이를 잘 해결하고 ‘자본주의 승리의 해(1865~1914)’를 맞는다. 철강 원유 등 경제 자원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막대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 혁신의 시기였다. 이어 대공황을 겪고 다시 성장의 황금시기(1945~1970)와 스태그플레이션(1971~1980), 낙관주의 시기(1980~2000)를 지난다.
그린스펀은 2001년부터를 침체기라고 규정한다. 지리적 이동이 감소하면서 창조적 성장과 파괴적 본능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사라졌다. 흑인들의 82%가 평생 같은 주에 산다.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대도시로 진출하는 건 엄청난 리스크다. 계층 상승도 점점 힘들어진다. 젊은 기술기업들도 2000년을 정점으로 줄고 있다.
그린스펀은 미국의 자랑이던 활력이 시든 이유로 복지후생의 지나친 확대를 꼽는다. 1935년 사회보장법 도입 이후 30년간 복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965~2016년 사이 매년 평균 9% 사회보장비 지출이 늘었다. 복지 수혜계층이 확대되고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국민의 65%가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를 받고 있다. 인구가 고령화하고 가격이 올라가면서 헬스케어 비용도 늘어난다. 사회보장과 의료보험이 연방 예산의 50%를 차지한다. 복지는 저축률을 낮추고 투자를 어렵게 해 생산성을 끌어내린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경제가 회복했다지만 이처럼 활력이 시들어가는 것은 여전하다고 그린스펀은 본다. 임금 상승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도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빈곤’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미국 경제가 늪에 빠져 있다기 보다 새장 속에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좋은 열쇠만 있으면 살려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 역사는 새장을 여는 데 필요한 열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줄곧 보여왔다며 경제를 살릴 의지가 정치권에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끝을 맺는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