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리는 '편집된' 진실만을 보고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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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진실
헥터 맥도널드 지음 / 이지연 옮김
흐름출판 / 461쪽│1만6000원
헥터 맥도널드 지음 / 이지연 옮김
흐름출판 / 461쪽│1만6000원
개인 소유 자율주행자동차 운행과 관련해 입법을 하려면 어떤 점을 살펴봐야 할까. 경제학자는 기술 발전과 새로운 수요 창출에 따른 산업 성장을, 노동조합은 운전자 수백만 명의 일자리 증발을, 환경주의자는 에너지와 자원 소비의 감소를 주목할 것이다. 인간의 실수에 따른 자동차 사고가 줄면 보험회사는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보안전문가는 테러리스트에 의한 자율주행차 해킹 가능성에 주목할 것이고, 윤리학자는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이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어린이와 탑승자의 생명 중 누구를 선택할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정보와 사실(fact·팩트)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왜곡되거나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전략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헥터 맥도널드는 《만들어진 진실》에서 팩트를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에릭슨 에킨스 등 다국적 통신 및 기술, 헬스케어 기업과 영국 프랑스 정부기관 및 비영리단체 등의 혁신 프로그램을 기획·설계한 스토리텔링 전략가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정치, 역사, 통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팩트’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진실이 편집되고 왜곡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미 안데스 원산 씨앗 식품인 퀴노아는 서양 사람들에게 건강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2013년 유엔이 선정한 슈퍼푸드가 됐다. 2006년부터 2013년 사이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퀴노아 가격은 세 배로 급등했다. 인디펜던트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의 매체는 북미와 유럽의 퀴노아 소비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치솟아 정작 원산지 주민의 퀴노아 소비가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퀴노아, 당신에게는 좋고 볼리비아에는 나쁘다”는 인디펜던트의 기사 제목이 널리 팩트로 받아들여졌다.
이 기간 퀴노아 가격이 세 배 오른 것은 팩트다. 이들 국가에서 퀴노아 소비가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팩트로부터 끌어낸 결론은 사실이 아니다. 이 지역의 퀴노아 소비는 가격이 오르기 전 이미 장기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다. 국제적인 수요 급증과 가격 급등으로 퀴노아 재배 농가의 소득은 오히려 늘었고 식생활도 다양해졌다. 서양의 건강식 열풍이 페루나 볼리비아 주민의 전통식품 소비 기회를 빼앗고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결론은 진실의 반대편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편집된 진실을 ‘만들어진 진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을 구성하는 다양한 진실들을 저자는 ‘경합하는 진실’이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우리가 지각하는 진실은 극히 일부분이다. 경합하는 진실이 어떻게 편집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생각하고 행동한다. 저자는 정보전달자를 진실의 옹호자, 오보자, 오도자로 구분한다. 어느 정도 정확한 현실인식을 만들어내는 진실을 택하면 옹호자, 악의는 없지만 의도치 않게 현실을 왜곡하는 진실을 퍼뜨리면 오보자, 잘못된 현실인식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면 오도자가 된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건 오도자들의 왜곡된 편집이다. 그는 진실을 부분적 진실, 주관적 진실, 인위적 진실, 밝혀지지 않은 진실로 크게 나누고 이를 편집하는 31가지 방법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불리한 현안에서 대중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어지럽히기’, 미국 남부의 주들이 학교에서 노예제와 인종차별 내용을 생략하고 축소해서 가르치는 것과 같은 ‘과거 역사 편집’ ‘유리한 기준으로 설명하기’ ‘단어 비틀기’ ‘의도적 네이밍(naming)과 프레이밍(framing)’ ‘부정적인 별명 붙이기’ ‘뇌를 속이기’ ‘악마 만들기’ 등 방법도 가지가지다. 맥락, 스토리, 이미지를 활용한 편집법도 다양하다.
자산관리사가 다양한 펀드 상품 중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상품의 성장률만 발표하는 것,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잘 나온 사진만 올리는 것은 생략 기법이다. 백악관 인턴과의 성 추문에 휩싸였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성관계에 대한 법원의 정의에서 구강성교를 빼도록 유도함으로써 화를 모면한 것은 단어 비틀기였다. 숫자를 크게 혹은 작게 보이도록 하는 것, 특정 통계수치만 인용하거나 생략하는 것도 전형적인 진실 편집의 술수다. ‘낙태 반대’를 ‘생명옹호’로 바꿔 부르는 것,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양심적 거부’로 포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일본 정부가 국가 간 합의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과거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은 맥락 무시하기다.
이런 진실의 오도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저자는 “오도자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심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라며 이렇게 강조한다. “의심하라. 명확한 설명과 확언을 요구하라. 여지를 주지 마라. 뭔가 빠져 있다 싶으면 물어보라.”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정보와 사실(fact·팩트)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왜곡되거나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전략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헥터 맥도널드는 《만들어진 진실》에서 팩트를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에릭슨 에킨스 등 다국적 통신 및 기술, 헬스케어 기업과 영국 프랑스 정부기관 및 비영리단체 등의 혁신 프로그램을 기획·설계한 스토리텔링 전략가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정치, 역사, 통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팩트’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진실이 편집되고 왜곡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미 안데스 원산 씨앗 식품인 퀴노아는 서양 사람들에게 건강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2013년 유엔이 선정한 슈퍼푸드가 됐다. 2006년부터 2013년 사이 볼리비아와 페루에서 퀴노아 가격은 세 배로 급등했다. 인디펜던트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의 매체는 북미와 유럽의 퀴노아 소비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치솟아 정작 원산지 주민의 퀴노아 소비가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퀴노아, 당신에게는 좋고 볼리비아에는 나쁘다”는 인디펜던트의 기사 제목이 널리 팩트로 받아들여졌다.
이 기간 퀴노아 가격이 세 배 오른 것은 팩트다. 이들 국가에서 퀴노아 소비가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팩트로부터 끌어낸 결론은 사실이 아니다. 이 지역의 퀴노아 소비는 가격이 오르기 전 이미 장기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다. 국제적인 수요 급증과 가격 급등으로 퀴노아 재배 농가의 소득은 오히려 늘었고 식생활도 다양해졌다. 서양의 건강식 열풍이 페루나 볼리비아 주민의 전통식품 소비 기회를 빼앗고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결론은 진실의 반대편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편집된 진실을 ‘만들어진 진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을 구성하는 다양한 진실들을 저자는 ‘경합하는 진실’이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우리가 지각하는 진실은 극히 일부분이다. 경합하는 진실이 어떻게 편집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생각하고 행동한다. 저자는 정보전달자를 진실의 옹호자, 오보자, 오도자로 구분한다. 어느 정도 정확한 현실인식을 만들어내는 진실을 택하면 옹호자, 악의는 없지만 의도치 않게 현실을 왜곡하는 진실을 퍼뜨리면 오보자, 잘못된 현실인식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면 오도자가 된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건 오도자들의 왜곡된 편집이다. 그는 진실을 부분적 진실, 주관적 진실, 인위적 진실, 밝혀지지 않은 진실로 크게 나누고 이를 편집하는 31가지 방법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불리한 현안에서 대중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어지럽히기’, 미국 남부의 주들이 학교에서 노예제와 인종차별 내용을 생략하고 축소해서 가르치는 것과 같은 ‘과거 역사 편집’ ‘유리한 기준으로 설명하기’ ‘단어 비틀기’ ‘의도적 네이밍(naming)과 프레이밍(framing)’ ‘부정적인 별명 붙이기’ ‘뇌를 속이기’ ‘악마 만들기’ 등 방법도 가지가지다. 맥락, 스토리, 이미지를 활용한 편집법도 다양하다.
자산관리사가 다양한 펀드 상품 중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상품의 성장률만 발표하는 것,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잘 나온 사진만 올리는 것은 생략 기법이다. 백악관 인턴과의 성 추문에 휩싸였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성관계에 대한 법원의 정의에서 구강성교를 빼도록 유도함으로써 화를 모면한 것은 단어 비틀기였다. 숫자를 크게 혹은 작게 보이도록 하는 것, 특정 통계수치만 인용하거나 생략하는 것도 전형적인 진실 편집의 술수다. ‘낙태 반대’를 ‘생명옹호’로 바꿔 부르는 것,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양심적 거부’로 포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일본 정부가 국가 간 합의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과거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은 맥락 무시하기다.
이런 진실의 오도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저자는 “오도자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심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라며 이렇게 강조한다. “의심하라. 명확한 설명과 확언을 요구하라. 여지를 주지 마라. 뭔가 빠져 있다 싶으면 물어보라.”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