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자리 만든다는 건 착각…중도 개혁 위해 '독배' 마다않겠다"
대표소문난 막걸리 애주가…막걸리에 통합·화합의 정신 담겨
평생 마중물 역할만 해왔지만 이번엔 중도 불씨 살리는 데 최선
'저녁 있는 삶' 히트쳤지만…유럽식 복지모델 찾는 정책 여행
책 통해 사람 중심의 복지 주장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일자리 못늘려 '저녁이 있는 삶' 실종
정작 '혼자만의 저녁' 갖지 못해…축사 안 시켜도 어디든 달려가
밤 늦게까지 공식 일정 '빽빽'…당 지지율 위해 열심히 뛰어야죠
“중도 개혁 터 잡는 불쏘시개 될 것”
낙지볶음은 젓가락질을 부추기는 마력이 있었다. 양념이 너무 맵지도 달지도 않았고, 낙지는 부드럽고 통통했다. 이 식당 사장은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 산낙지를 공수해온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손 대표만큼 화려한 이력이 있는 이도 드물다. 서울대 정치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를 거쳐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1993년 민자당 국회의원으로 14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지사를 지낸 뒤 민주당으로 옮겨 당대표를 지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한 손 대표는 올 9월부터 바른미래당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분당도 해보고, 탈당도 했지만 대통령선거 본선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하고 불쏘시개, 마중물 노릇만 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정치적 빈털터리가 됐다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마음을 비운 듯했다. “민주당 나올 때 호남 지인들 떨어져 나가고, 바른미래당 오면서 또 약 300명 떨어져 나가고, 지방선거 선대위원장 맡은 뒤에는 남은 사람들마저 다 가고 지금은 한 다섯 명 정도 남았으려나.”
손 대표는 “바른미래당 대표를 맡는 게 무슨 영광이겠느냐. 하지만 가느다랗게 살아있는 중도의 불씨를 살려보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낙지를 집던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십(十)자로 배열한 뒤 접시를 이리저리 옮기며 현 정치 지형을 설명했다.
“촛불 혁명으로 더불어민주당 등 집권 세력은 왼쪽으로 기울고 정의당 힘도 예전보다 커졌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맨 오른쪽 구석에 치우쳐 있다. 지금 가운데 자리(중도)는 텅 비어 있다. 바로 여기가 우리가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려야 하는 곳이다. 현 집권 세력은 거만해졌고 한국당은 오른쪽에 치우쳐 우리 같은 개혁 보수에 공간이 있다.”
손 대표는 바른미래당이 다음 총선에서 제1 야당으로 올라설 수 있다면 또 한 번 불쏘시개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바른미래당이 중도 개혁 세력의 중심을 잡아 다음 총선에서 전체적으로 2당, 야당 가운데서는 1당으로 올라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경제는 시장, 일자리는 기업에 맡겨야”
손 대표는 최근 부쩍 청와대를 겨냥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경제 정책 라인과 관련한 불만이 컸다. 그는 “시장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청와대는 ‘우리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시장을 모르는 얘기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고 정부는 시장의 물길이 막힌 곳을 터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 청와대 인사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정책 라인에 시장 경험자가 없는 것 같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이) 시장을 경험해봤나, 사업을 해봤나”라며 “중요한 것은 시장에 대한 믿음”이라고 했다.
손 대표의 열변이 이어지는 와중에 단골손님의 방문을 반긴 식당 주인이 제주 사는 친구가 잡아서 보냈다며 부시리 회를 내왔다. “어머니는 건강하시고?” 실비집 사장님의 가정사 얘기를 듣느라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파, 고추 등을 같이 넣고 끓여낸 연포탕이 막걸리를 나르는 주방 아주머니의 발길을 재촉했다.
손 대표는 2012년 세간의 화제를 낳은 책 《저녁이 있는 삶》을 펴냈다. ‘사람 중심의 복지’를 주장하며 유럽식 복지 모델을 살펴보기 위해 ‘정책 여행’을 떠나 느꼈던 점들을 담았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문구는 한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며 대히트를 쳤다. ‘정치인 손학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나오는 문구가 됐다.
손 대표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게 단순히 노동 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늘리자는 방식이 아니다”며 “진정한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소득이 높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되레 저녁 있는 삶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루 공식 일정만 6~7개 달해”
바른미래당은 최근까지 지지율 정체와 의석수 부족 등 총체적인 난국을 겪었다. 지금도 5석에 불과한 정의당보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뒤진다. 취임 후 두 달간 손 대표는 구원투수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루평균 수면 시간은 세 시간에 불과하다. 손 대표 옆에 앉은 수행팀 관계자는 “따라다니기 버거울 정도”라고 했다.
“저는 아이디어맨도 아니고 전략가도 아닙니다.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무조건 많이 만나고 무조건 많이 다닌다’는 것이다. 초청장을 보내온 언론사, 직능단체, 각종 기념식, 경조사에 최대한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이다.
“공식 일정만 6~7개에 달합니다. 저녁이 비어 있는 때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일정이 빡빡합니다.” 수행팀이 기자에게 넌지시 전했다. 손 대표는 “축사 요청을 따로 하지 않아 마이크를 잡을 수 없는 행사도 최대한 갑니다. 얼굴만 비치고 인사만 하는 그런 일정에도 빠짐없이 갑니다.”
인터뷰 말미에 애창곡을 신청하자 “그럼 한번 불러볼까”라며 주저 없이 응했다. 오랜 세월 애창곡인 ‘청산별곡’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로 시작하는 그의 구성진 가락은 판소리 같기도, 추수를 하는 농부의 ‘노동요’ 같기도 했다. 국회 의석수 30석을 보유한 교섭단체 정당의 당수이자, 굵직한 선거 때마다 ‘중도’ ‘제3지대’ 세력의 대표자로서 러브콜을 받는 거물급 인사의 무게감에 비하면 소탈한 모습이었다.
이런 그에게 막걸리는 단순한 술 이상의 매개체다. 양극단 세력을 거부하고 ‘가운데’ 공간을 찾아 파고들며 통합을 추구했던 손 대표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술, 즉 ‘통합주’인 셈이다.
지난달에는 옛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사무처 워크숍에 참석해 직원들과 일일이 막걸리 잔을 나눴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2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이 통합한 정당이다. 양 세력의 물리적 통합은 이뤘지만 한 몸이 되는 ‘화학적 결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손 대표는 “우선 사무처 직원들이 진심으로 통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대표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사무처 직원들과의 오찬이었다”고 했다. 합당 전 국민의당에서 고문을 맡은 그에게 ‘바른정당과는 거리감이 있지 않으냐’고 묻자 고개를 뒤로 돌려 동행한 당직자들을 바라봤다. “지금 함께 온 저분, 우리 당 대표실 직원이 바른정당에 있던 직원입니다.” 시곗바늘이 오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날 이 집의 막걸리는 손 대표 덕분에 일찍 동났다.
■바른미래당은…
2016년 2월 창당한 국민의당과 2017년 1월 출범한 바른정당이 지난 2월 합당해 만들어진 정당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안철수 국민의당 당시 대표가 양당의 합당을 견인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 소속 의원 15명이 탈당해 민주평화당을 만들면서 정당 규모가 작아졌다. 지역구 17명, 비례대표 13명 등 30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바른미래당 소속이다. 더불어민주당(129석), 자유한국당(112석)에 이어 제3의 국회 교섭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약력
△1947년 경기 시흥 출생
△1965년 경기고 졸업
△1973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88년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1990~1993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3~2002년 제14·15·16대 국회의원(한나라당, 경기 광명을)
△1996~1997년 보건복지부 장관
△2002~2006년 경기지사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대표
△2011~2012년 제17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경기 성남 분당을)
△2015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2017년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선대위원장
△2018년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선대위원장, 바른미래당 대표 ■손학규 대표의 단골집 피마길실비집
매콤한 낙지볶음과 시원한 조개탕 일품
맛집골목으로 잘 알려진 서울 청진동 피맛골에 들어선 낙지 요리 전문점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대학 2학년 무렵 선배들을 따라 이 집을 처음 방문한 뒤 약 50년이 지난 요즘도 두세 달에 한 번 매콤한 음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 과거 ‘실비집’으로 불리다 2012년 광화문 뒤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지금의 ‘피마길실비집’이란 상호를 쓰게 됐다.
대표 메뉴는 매콤한 낙지볶음(2만3000원)이다. 같이 나오는 콩나물을 밥에 넣고 함께 비벼 비빔밥으로도 즐길 수 있다. 먹으면 땀이 후끈 나는 자극적인 맛이지만 캡사이신을 사용하지 않아 속이 편하다. 낙지볶음으로 얼얼해진 입안을 진정시켜주는 시원하고 맑은 조개탕(1만4000원)도 손 대표의 단골 메뉴다. 계절에 따라 모시조개와 백합조개를 사용해 국물을 낸다.
낙지를 잔뜩 올린 해물파전(1만3000원)도 퇴근길 직장인의 발걸음을 붙드는 메뉴다. 막걸리 한 잔과 쫄깃한 낙지의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해물파전의 궁합이 좋다. 낙지 양념을 활용해 만든 감자탕(2만원)은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색 메뉴다.
박종필/김소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