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끝) 식품업계 '新 유통권력' 부상
식품 소비 트렌드 주도
마트보다 편의점에서 먼저…한 달에 3~4회꼴로 신제품 출시
편의점 주고객 1020 취향 저격…대대적으로 'SNS 홍보' 집중
맥주·라면시장 대세 변화
편의점 '4캔 1만원' 마케팅 적중…수입맥주 점유율 올 60% 돌파
봉지라면 성장세 둔화하는데 편의점 컵라면 판매는 급증
편의점이 수십 년간 지속된 식품업계의 성공 방정식을 흔들고 있다. 통상 식품업계 신제품은 대형마트에 먼저 출시됐다. 대대적인 할인행사와 TV 광고로 30~40대 주부들을 먼저 공략했다. 지금은 아니다. 편의점이 우선이다. 10~20대의 입맛에 맞춘 제품을 내놓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홍보한다. 편의점은 하루 매출이 바로 잡히고, 소비자 반응이 빨라 제품의 성공 여부도 빠르게 알 수 있다. 골목상권까지 장악한 편의점이 식품업계를 뒤흔들 정도의 새로운 ‘유통권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력이 된 편의점…맥주 시장 물갈이
맥주 시장의 재편은 편의점이 유통권력을 장악한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 편의점에서 수입맥주의 점유율은 2014년만 해도 30% 이하였다. 2015년 편의점 4사는 ‘수입맥주 4캔 1만원’이라는 프로모션을 경쟁적으로 진행했다. 수입맥주가 국산맥주에 비해 적은 세금을 내기 때문에 가격 할인이 가능한 점을 역이용해 주머니가 얇은 20~30대 ‘혼술·홈술족’을 겨냥했다. 편의점 수입맥주 점유율은 지난해 50%를 돌파하고 올해는 60%를 넘어섰다. 한 수입맥주 업체 관계자는 “편의점이 주류업계의 슈퍼갑”이라고 말했다.
위스키와 보드카, 와인 등 콧대 높던 수입 주류도 편의점 전용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디아지오코리아는 조니워커 레드 200mL와 위스키에 바로 타 먹을 수 있는 레몬시럽을 패키지에 담아 편의점 전용 ‘조니레몬’을 8000원대에 내놨다. 디아지오 관계자는 “편의점 채널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유통 채널이 됐고, 신규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홍보 창구가 됐다”고 설명했다.
컵라면 웃고, 봉지라면 울고
라면 시장에서는 끓여 먹는 봉지라면 대신 컵라면이 주도권을 가져왔다. 전체 라면 시장에서 여전히 봉지라면의 비중이 높지만, 편의점에서는 컵라면 비중이 70~80%에 이른다. 전체 라면 시장에서 컵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29.2%에서 지난해 37.4%로 커졌다. 판매액도 2011년 5400억원에서 6년 만에 46% 증가한 79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봉지라면의 매출은 5.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컵라면은 봉지라면보다 맛이 떨어지고, 야외활동에 더 적합한 비상식량 정도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은 라면 업체 모두 컵라면에 기술력을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의 컵라면 판매가 급증하자 업체들은 편의점 전용 컵라면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농심은 전자레인지에 가열해서 먹는 컵라면을 내놨고, 삼양식품은 올해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선 편의점, 후 대형마트’ 전략을 썼다. 참참참 계란탕, 쯔유우동 등은 컵라면 형태로 편의점에 내놨다가 소비자 반응이 좋아 하반기에 봉지라면 형태로도 출시한 사례다.
짧아진 출시 주기…튀는 제품 봇물
신제품 출시 주기도 짧아졌다. 오뚜기는 월 1~2회 내놓던 신제품을 이제 월 3~4회꼴로 출시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편의점의 제품 진열 주기가 빠르고, 소비자들도 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제품과 패키지를 내놓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편의점 채널로 대박을 낸 사례도 적지 않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대표적이다. 10~20대 여성 소비자들이 SNS와 유튜브 등에 적극 알리면서 글로벌 히트 상품이 됐다. 2016년 660억원이던 불닭볶음면 수출액은 올해 2000억원을 돌파했다. 푸르밀은 ‘비피더스’ 한 제품으로만 알려진 유업체였다가 올해 편의점 전용 신제품 ‘속풀어유’ ‘이번엔 커피에녹차를넣어봄’ 등 약 30개에 달하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들 제품으로만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