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터뷰] "블록체인, 포지티브 규제로는 해법 도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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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의 대한변협 블록체인TF 특별위원 인터뷰
복합적 블록체인 문제, 기존 규제방식과 안 맞아
당국·전문가 모여 단계적 보완해야
복합적 블록체인 문제, 기존 규제방식과 안 맞아
당국·전문가 모여 단계적 보완해야
“블록체인 기술 발전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당국이 손 놓고 있다는 식으로만 몰아가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만 나오고 있으니 오히려 부담을 느끼게 될 겁니다. 입체적인 해법을 제시해야죠.”
지난 22일 한경닷컴과 만난 이정의 대한변호사협회 블록체인 태스크포스(TF) 특별위원(사진)은 이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 특별위원은 변호사이자 미국회계사 자격증이 있는 회계전문가이기도 하다. 법률적·회계적 관점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한변협 블록체인 TF에서 특별위원을 맡게 됐다.
그녀는 블록체인 관련 정책 수립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이 산재했다고 짚었다. 가령 가상화폐(암호화폐)라는 자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부터 양도차익 과세 방법, 자금세탁방지(AML) 규정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이 풀려야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암호화폐 선진국으로 알려진 싱가포르도 제대로 된 입법안이 나온 건 아닙니다. 미국, 유럽 등 대다수 나라도 상황은 같아요. 단 규제 접근방식은 달라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규제를 하고 있다. 법률이나 정책에서 허가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전부 금지 또는 불법이 되는 방식이다. 반면 싱가포르, 미국은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따른다. 몇몇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전부 허용한다.
“네거티브 규제방식은 이점도 많지만 그만큼 사기나 투자자보호 측면에선 소홀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우리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규제가 이미 완성됐다’ 식으로 호도하는 건 더 큰 문제를 낳을 수도 있어요. 법률적인 부분만 보자면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 규제당국도 우리와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도 마냥 늦은 건 아니란 거죠.” 단 이러한 상황을 장시간 방치하면 건전한 투자 행위나 산업 육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급속도로 환경과 기술이 변화해 나가는 시장인 만큼 우리나라가 선도해 나가려면 ‘타이밍’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 ‘맞춤형 규제’ 수립이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투기 문제와 범죄 등으로 인해 이미 블록체인 산업 자체가 ‘유사수신 산업’과 같은 이미지로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죠.”
그녀는 블록체인이 분명 장점 있는 산업이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대기업들 같은 우량 기관투자자들 진입까지 금기시되는 분위기는 걱정이라고 짚었다. 산업 발전의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산업 육성은 대형 투자자들의 지원으로부터 나옵니다. 기관투자자는 개인이나 소규모 펀드들의 투자 사이클에 비해 훨씬 장기적이고 긴 호흡으로 진행됩니다. 규모도 훨씬 더 크고요. 실제 산업 육성을 주도하는 것은 이들의 지원이죠.”
이 특별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기관들 입장에서 신산업 투자는 사실 ‘마이너스 장사’에 가깝다. 리스크가 큰 데다 투자를 한 초기 수년간은 수익이 나지 않아도 계속 투자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신산업 투자를 하는 이유는 20~30년 뒤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입니다.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당장의 이익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는 것이죠. 블록체인 분야를 한다고 하면 유사수신 행위로 몰리는 분위기에서는 이러한 기관들 지원도 바라기 어려워요.”
신산업 자체가 갖는 높은 리스크에 각종 정치적·사회적 리스크까지 감당하라고 요구한다면 대형 기관들마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이 상황이 길어지면 결국 기다리다 지친 기관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될 겁니다. 결국 신산업 육성의 주체 역할을 해줄 이들이 없어지는 거죠. 따라서 무엇보다 건전한 산업 육성을 위한 단계적 입법은 필요합니다.” 그녀는 당국에서 가장 우려하는 투자자보호 문제와 관련, 투자자 등급을 나눠 관리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투자자마다 제각기 투자 금액이나 지식의 정도, 투자기간 및 산업 육성 의지 등이 다른데 모든 투자자를 일괄 규제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투자자를 동일집단으로만 바라보고 규제를 하게 되면 지나치게 사업활동을 옭아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규제를 풀어줘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기죠. 그래서 자본시장법에서처럼 일반투자자와 전문투자자를 나눠서 전문투자자에게는 조금 더 자율성을 주고 일반투자자들은 보다 철저히 보호하는 방안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같은 투트랙 방식도 문제라면 충분한 리스크 감당이 가능한 기관들만이라도 먼저 투자활동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자고 주문했다. 그마저 어렵다면 공청회를 열어 블록체인 전문가, 회계 전문가, 조세법 학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소한의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덧붙엿다.
“블록체인 산업의 범위를 한정적으로 정의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현행 합법적 규제의 틀 안에서라도 최소한의 움직임이 필요해요. 규제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건 불가능합니다. 당국도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에서 규제를 풀겠다는 논조는 지양해야죠. 전문가들 역시 당국이 충분히 검토하고 마이크를 쥘 수 있도록 건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방안을 만들어 적용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방식으로 관점을 전환하자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와 전문가들이 모여 아주 기초적 단계의 입법부터 시작해 단계적(step-by-step)으로 보완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난이도 높은 규제안을 어느 누가 한 번에 완벽에 가깝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다른 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할 수 있게끔, ‘김치 프리미엄’이란 단어가 그렇게 쓰이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지난 22일 한경닷컴과 만난 이정의 대한변호사협회 블록체인 태스크포스(TF) 특별위원(사진)은 이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 특별위원은 변호사이자 미국회계사 자격증이 있는 회계전문가이기도 하다. 법률적·회계적 관점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한변협 블록체인 TF에서 특별위원을 맡게 됐다.
그녀는 블록체인 관련 정책 수립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이 산재했다고 짚었다. 가령 가상화폐(암호화폐)라는 자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부터 양도차익 과세 방법, 자금세탁방지(AML) 규정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이 풀려야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암호화폐 선진국으로 알려진 싱가포르도 제대로 된 입법안이 나온 건 아닙니다. 미국, 유럽 등 대다수 나라도 상황은 같아요. 단 규제 접근방식은 달라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규제를 하고 있다. 법률이나 정책에서 허가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전부 금지 또는 불법이 되는 방식이다. 반면 싱가포르, 미국은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따른다. 몇몇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전부 허용한다.
“네거티브 규제방식은 이점도 많지만 그만큼 사기나 투자자보호 측면에선 소홀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우리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규제가 이미 완성됐다’ 식으로 호도하는 건 더 큰 문제를 낳을 수도 있어요. 법률적인 부분만 보자면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 규제당국도 우리와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도 마냥 늦은 건 아니란 거죠.” 단 이러한 상황을 장시간 방치하면 건전한 투자 행위나 산업 육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급속도로 환경과 기술이 변화해 나가는 시장인 만큼 우리나라가 선도해 나가려면 ‘타이밍’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 ‘맞춤형 규제’ 수립이 필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투기 문제와 범죄 등으로 인해 이미 블록체인 산업 자체가 ‘유사수신 산업’과 같은 이미지로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죠.”
그녀는 블록체인이 분명 장점 있는 산업이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대기업들 같은 우량 기관투자자들 진입까지 금기시되는 분위기는 걱정이라고 짚었다. 산업 발전의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산업 육성은 대형 투자자들의 지원으로부터 나옵니다. 기관투자자는 개인이나 소규모 펀드들의 투자 사이클에 비해 훨씬 장기적이고 긴 호흡으로 진행됩니다. 규모도 훨씬 더 크고요. 실제 산업 육성을 주도하는 것은 이들의 지원이죠.”
이 특별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기관들 입장에서 신산업 투자는 사실 ‘마이너스 장사’에 가깝다. 리스크가 큰 데다 투자를 한 초기 수년간은 수익이 나지 않아도 계속 투자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신산업 투자를 하는 이유는 20~30년 뒤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입니다.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당장의 이익에 일희일비 하기보다는 멀리 내다보는 것이죠. 블록체인 분야를 한다고 하면 유사수신 행위로 몰리는 분위기에서는 이러한 기관들 지원도 바라기 어려워요.”
신산업 자체가 갖는 높은 리스크에 각종 정치적·사회적 리스크까지 감당하라고 요구한다면 대형 기관들마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이 상황이 길어지면 결국 기다리다 지친 기관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될 겁니다. 결국 신산업 육성의 주체 역할을 해줄 이들이 없어지는 거죠. 따라서 무엇보다 건전한 산업 육성을 위한 단계적 입법은 필요합니다.” 그녀는 당국에서 가장 우려하는 투자자보호 문제와 관련, 투자자 등급을 나눠 관리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투자자마다 제각기 투자 금액이나 지식의 정도, 투자기간 및 산업 육성 의지 등이 다른데 모든 투자자를 일괄 규제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투자자를 동일집단으로만 바라보고 규제를 하게 되면 지나치게 사업활동을 옭아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규제를 풀어줘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기죠. 그래서 자본시장법에서처럼 일반투자자와 전문투자자를 나눠서 전문투자자에게는 조금 더 자율성을 주고 일반투자자들은 보다 철저히 보호하는 방안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같은 투트랙 방식도 문제라면 충분한 리스크 감당이 가능한 기관들만이라도 먼저 투자활동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자고 주문했다. 그마저 어렵다면 공청회를 열어 블록체인 전문가, 회계 전문가, 조세법 학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최소한의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덧붙엿다.
“블록체인 산업의 범위를 한정적으로 정의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현행 합법적 규제의 틀 안에서라도 최소한의 움직임이 필요해요. 규제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건 불가능합니다. 당국도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에서 규제를 풀겠다는 논조는 지양해야죠. 전문가들 역시 당국이 충분히 검토하고 마이크를 쥘 수 있도록 건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방안을 만들어 적용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방식으로 관점을 전환하자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와 전문가들이 모여 아주 기초적 단계의 입법부터 시작해 단계적(step-by-step)으로 보완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난이도 높은 규제안을 어느 누가 한 번에 완벽에 가깝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다른 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할 수 있게끔, ‘김치 프리미엄’이란 단어가 그렇게 쓰이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