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兆 SOC사업, 검증은 '패싱'…혈세 먹는 하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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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방침에 지자체, 30여개 사업 신청
'예타' 면제 신청 봇물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 등 신청 사업 대부분 경제성 낮아
경남 남부내륙철도·KTX 세종역 등 '정치적 입김' 작용한 사업도
"선심성 사업 견제 위해 도입한 예비타당성 조사 유명무실 우려"
'예타' 면제 신청 봇물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 등 신청 사업 대부분 경제성 낮아
경남 남부내륙철도·KTX 세종역 등 '정치적 입김' 작용한 사업도
"선심성 사업 견제 위해 도입한 예비타당성 조사 유명무실 우려"
정부가 일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재정 지원 여부를 결정짓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키로 발표한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이 신청한 사업 규모가 총 60조여원에 달해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제대로 된 편익 분석 없이 사업을 추진하다 수조원의 혈세를 낭비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선심성 사업을 견제하려고 마련한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제도가 무력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7개 시·도 너도나도 ‘예타’ 면제 사업 추진
25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는 지난 12일까지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총 30여 개 사업을 예타 면제 대상 사업으로 신청했다. 적게는 수천억, 많게는 수조원 규모의 사업으로 총사업비가 약 60조원에 이른다.
경상남도는 10조원 규모 부산제2신항 건설 사업을 예타 면제 사업으로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 신설도 사업비가 5조3000억원에 달한다. 대전시는 8080억원 규모의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을 신청했다. 인천시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노선 사업(5조9038억원)과 영종~강화 평화고속도로 사업을 예타 면제 사업 후보로 제출했다. 경상북도는 동해안고속도로(7조원), 포항~동해 동해중부선 복선전철화(4조원), 서산~울진 중부권 동서횡단 철도(4조7824억원) 등 사업을 신청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사업이 대상이다. 기재부 산하 공공투자관리센터가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 등의 측면을 판단한다. 대다수 SOC 사업은 예타 과정에서 발목이 잡혀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이 중 비용 대비 편익을 나타내는 경제성 수치인 비용편익비율(B/C)이 핵심으로 평가 결과 1을 넘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지난달 정부는 일자리 등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큰 SOC 사업에 예타를 면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국 17개 시·도에 자체사업 2건과 광역사업 1건을 예타 면제 후보 사업으로 지난 12일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다음달 중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정한 뒤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2018~2022)에 반영할 예정”이라며 “국회와 협의해 사업비도 내년 예산에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지역 균형발전, 남북 교류협력 등에 필요한 사업은 기재부 장관 승인을 얻어 예타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이 특별법을 통해 예타를 면제받았다.
“혈세낭비·정치개입 우려”
전문가들은 마구잡이로 예타가 면제되면 재정 낭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청 사업 대부분이 경제성이 낮아 이미 수차례 탈락한 전력이 있어서다.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 사업은 2007년부터 조사를 받았으나 경제성이 나오지 않아 결국 지난해 사업재검토에 들어갔다. 남부내륙철도 사업은 경제성이 부족해 두 차례나 무산됐다. 비용편익비율이 각각 0.3, 0.72에 그쳤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예타 제도가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해 마련된 만큼 섣불리 면제하면 막대한 재정이 낭비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더라도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지 않는지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타 면제가 정치적 입김에 따라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KTX세종역 신설은 지자체를 넘어 지역 정치권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업이다. 세종시를 지역구로 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면 충남·북은 “세종역이 신설되면 인근 KTX오송역·공주역이 쇠퇴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제2신항은 명칭 문제로 부산시와 경상남도 간 법정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부내륙철도 신설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1호 공약으로 내세운 사업이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예타를 면제해달라는 지자체나 지역 의원 민원이 벌써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을 따져야 할 사업이 있고 아닌 사업이 있는데, 현행 예타 면제 방식은 합리적인 기준 없이 마련돼 신뢰성이 낮다는 것이 문제”라며 “임기응변식으로 예타를 면제할 것이 아니라 현행 평가 방식의 공공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25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는 지난 12일까지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 총 30여 개 사업을 예타 면제 대상 사업으로 신청했다. 적게는 수천억, 많게는 수조원 규모의 사업으로 총사업비가 약 60조원에 이른다.
경상남도는 10조원 규모 부산제2신항 건설 사업을 예타 면제 사업으로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 신설도 사업비가 5조3000억원에 달한다. 대전시는 8080억원 규모의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을 신청했다. 인천시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노선 사업(5조9038억원)과 영종~강화 평화고속도로 사업을 예타 면제 사업 후보로 제출했다. 경상북도는 동해안고속도로(7조원), 포항~동해 동해중부선 복선전철화(4조원), 서산~울진 중부권 동서횡단 철도(4조7824억원) 등 사업을 신청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사업이 대상이다. 기재부 산하 공공투자관리센터가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 등의 측면을 판단한다. 대다수 SOC 사업은 예타 과정에서 발목이 잡혀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이 중 비용 대비 편익을 나타내는 경제성 수치인 비용편익비율(B/C)이 핵심으로 평가 결과 1을 넘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지난달 정부는 일자리 등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큰 SOC 사업에 예타를 면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국 17개 시·도에 자체사업 2건과 광역사업 1건을 예타 면제 후보 사업으로 지난 12일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다음달 중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정한 뒤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2018~2022)에 반영할 예정”이라며 “국회와 협의해 사업비도 내년 예산에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지역 균형발전, 남북 교류협력 등에 필요한 사업은 기재부 장관 승인을 얻어 예타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이 특별법을 통해 예타를 면제받았다.
“혈세낭비·정치개입 우려”
전문가들은 마구잡이로 예타가 면제되면 재정 낭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청 사업 대부분이 경제성이 낮아 이미 수차례 탈락한 전력이 있어서다.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 사업은 2007년부터 조사를 받았으나 경제성이 나오지 않아 결국 지난해 사업재검토에 들어갔다. 남부내륙철도 사업은 경제성이 부족해 두 차례나 무산됐다. 비용편익비율이 각각 0.3, 0.72에 그쳤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예타 제도가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해 마련된 만큼 섣불리 면제하면 막대한 재정이 낭비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더라도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지 않는지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타 면제가 정치적 입김에 따라 이뤄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KTX세종역 신설은 지자체를 넘어 지역 정치권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업이다. 세종시를 지역구로 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면 충남·북은 “세종역이 신설되면 인근 KTX오송역·공주역이 쇠퇴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제2신항은 명칭 문제로 부산시와 경상남도 간 법정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부내륙철도 신설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1호 공약으로 내세운 사업이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예타를 면제해달라는 지자체나 지역 의원 민원이 벌써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을 따져야 할 사업이 있고 아닌 사업이 있는데, 현행 예타 면제 방식은 합리적인 기준 없이 마련돼 신뢰성이 낮다는 것이 문제”라며 “임기응변식으로 예타를 면제할 것이 아니라 현행 평가 방식의 공공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