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진스키 전 NSC 보좌관 작성 백악관 기밀 외교문서 입수
"유엔사 문제 등 다룰 남북미 3자 논의 준비…주한미군 철수 계획 활용"
카터, 남북미 고위급 장소 제공해 준 수하르토 대통령에게 '사의'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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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79년 한반도 긴장 완화를 목적으로 남북미 3자 회담을 극비리에 추진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특히 3자 고위급 회담 장소로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를 정하고 남북한의 의사를 타진하는 등 미국이 남북미 대화를 위해 상당히 구체적 수준의 실행 계획을 세워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연합뉴스가 25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제임스 퍼슨 연구원으로부터 입수한 미국 외교 기밀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퍼슨 연구원은 현재 주미특파원 출신 언론인 협회인 한미클럽의 의뢰를 받아 미국 외교문서 발굴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는 한반도 전문가다.
40년전에도 남북미 3자대화 추진했다…자카르타 극비회담 '타진'
기밀문서에 따르면 카터 대통령은 1979년 6월 말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던 시기를 전후해 자카르타에서 남북미 3자 고위급 회담을 갖는 방안을 극비리에 추진했다.

특히 1979년 6월 카터 대통령은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인도네시아가 남북미 고위급 회담 장소를 제공하기로 결정해 준 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으로 보낸 비밀 외교전문에 따르면 카터 대통령은 서한에서 "당신의 정치력 있는 태도 덕분에 아시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과정(프로세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며 "나는 남북미 간의 만남과, 인도네시아가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대단히 큰 중요성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40년전에도 남북미 3자대화 추진했다…자카르타 극비회담 '타진'
1979년 7월 작성된 또 다른 비밀 외교전문에서 미국 정부는 남북미 3자 고위급 회담을 자카르타에서 개최하자는 제안을 인도네시아를 통해 북한에 전달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문서에서 미 정부는 자카르타를 회담 장소로 택한 이유와 관련, "자카르타는 3자의 공식 외교 대표부를 모두 두고 있어 3자 대화에 참석하는 대표단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40년전에도 남북미 3자대화 추진했다…자카르타 극비회담 '타진'
카터 대통령은 이 같은 남북미 3자대화를 1977년 취임 첫해부터 비밀리에 추진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기밀문서에 따르면 카터 대통령의 외교 책사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메모에서 카터 대통령이 남북미 3자 대화를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1977년 8월5일 '남북 간의 대화'라는 주제로 작성된 이 메모에서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대통령은 북한, 남한, 미국 간 3자 대화 가능성에 관한 당신의 보고서를 읽었으며, 단계대로 실행해 나가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그러면서 "우리는 유엔 사령부 문제, 기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미 3자 논의를 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40년 전 미국 주도로 정전체제 문제까지 의제로 삼는 남북미 3자 논의 틀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메모에서 "정부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 간 협의를 고려해 미국의 외교 노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해야 한다"며 남북미 3자 대화 추진을 위한 실행 계획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향후 수개월 내 미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추진해야 할 외교 노력과 관련, 한국 정부와 조기 협의를 진행하고 한반도 정전 유지에 직접 관련이 있는 미·중·남·북한 등 4자를 포함하는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회의)참여 형태에 관해 미국은 유연한 입장이라는 점을 중국에 알릴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그러한 회의에 정회원으로 참여할 준비가 돼 있으며, 만약 한국이 원한다면 미국과 중국은 논의 초기 단계에서는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중국이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엔 사령부 문제, 기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다른 조치들을 포함한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미 3자 논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미 정부는 카터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남북미 3자 대화 추진을 연계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미국은 남북대화 재개를 희망하고 있고, 4자 또는 3자 대화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북한에 재차 확인시켜야 한다"며 "군 철수 계획이 남북대화 촉진에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이러한 연구가 "가을 유엔총회 전까지" 이뤄져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또 한국 정부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제3자를 통해 북한에 전달하는 어떠한 메시지라도 한국에 분명히 알려야 하며, 제3자에게도 미국은 북미 간 양자 접촉을 촉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에서의 한반도 논의와 관련,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만약 한국이 유엔 가입 문제를 제기하고자 할 경우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남북한 이중 가입 제안을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의 이 같은 비밀 남북미 3자 대화 추진은 북한 측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