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급 '화성-15형' 발사 뒤 '핵무력 완성' 선언하고 '협상 모드'
정상외교 통해 남북·북미관계 진전…비핵화 협상 난항 속 북미 고위급회담 주목
"김정은 동지는 새 형의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5'형의 성공적 발사를 지켜보시면서 오늘 비로소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되었다고 긍지 높이 선포했다.

"
북한은 지난해 11월 29일 새벽 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정부 성명'을 통해 핵무력 완성을 주장했다.

사거리가 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인 1만㎞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 '화성-15형'은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 지수를 순식간에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력 완성'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면 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동시에 제기됐고, 이 관측은 들어맞았다.

북한은 이때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더 이상의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았고 대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북한이 거듭 도발하는 와중에도 끈기 있게 대화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도 주효했다.
올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북한이 선수단과 응원단, 예술단을 남측에 파견하자 보수 정권 9년여를 거치는 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는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았다.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맞춰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대남 특사로 파견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남북 정상의 의지가 실리자 한달음에 정상회담까지 성사됐다.

4월 27일.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고, 이어 문 대통령과 함께 북측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손을 잡고 건너오는 모습에 전 세계가 박수를 보냈다.

특히 '판문점 선언'에는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돼 북한 핵 문제 해결의 기초를 닦았다.

한반도에서 불어온 훈풍은 70년간 대립해 온 북미 관계도 녹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3월에 방북한 문 대통령 특사단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화답하면서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한 차례 회담을 취소하는 우여곡절 끝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손을 맞잡았고, '완전한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 담긴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숨 가쁘게 전개되던 한반도 정세는 이후 다소 숨을 고르는 분위기다.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와 이에 상응해 미국이 취할 조치를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기에 이어 영변 핵시설 폐기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미국에 종전선언과 제재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선(先) 비핵화-후(後) 제재완화'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남북 교류협력 사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철도·도로 연결을 비롯한 경협사업들은 대북제재로 인해 첫발조차 떼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23일(현지시간) 북한 철도 현대화를 위한 남북 공동조사에 대해 제재 면제를 인정하면서 남북경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위기에도 다소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 철도 현대화 공사나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 본격적인 경협사업은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이뤄져 대북제재가 대폭 완화되기 전에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남북은 대신 대북제재와 관계없는 군사적 신뢰구축에 힘을 쏟았다.

9월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체결된 군사합의서를 통해 지상과 해상, 공중에 적대 행위 중단구역을 설정하고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11개를 각각 시범적으로 철수하는 등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내년으로 이어 본격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르면 이달 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고위급회담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둘러싼 로드맵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는다면 연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내년 초로 추진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미 고위급회담 개최가 계속 지연되거나 만나더라도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한다면 지금의 더딘 흐름이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비핵화 초기조치에 미국이 어떤 상응 조치를 제시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북한이 받아들일 만한 안이라야 고위급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