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하면 순간 떠올리는 소설은 《노인과 바다》다. 하드 보일드한 표현법으로 새롭게 20세기 소설의 미학을 탄생시킨 헤밍웨이는 이 소설에서 어부 산티아고 노인이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을 등장시킨다. 절체절명의 순간 용기를 얻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힘이 넘쳤던 순간을 기억해 낸다. 흑인 장사와 24시간 동안 팔씨름을 하던 때다. 등유램프 불빛 아래에서 돈을 거는 구경꾼들, 네 시간마다 교체되는 심판진, 무승부를 권유하는 사람들. 그러나 산티아고는 오랜 기다림 끝에 월요일 새벽 노동자들이 출근하기 전에 승부를 내고야 만다. 혼신을 다한 그 순간의 기억을 통해 바다의 역경을 이겨내려고 했다. 그 흑인 장사는 시엔푸에고스 출신이었다.

스페인 장군 이름 딴 도시

아바나의 혁명광장에는 혁명의 핵심 인물 3인의 초상이 정부 건물 벽에 그려져 있다.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그리고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다. 2009년에 지어진 통신부 건물에 ‘잘하고 있지 피델’이라고 써진 글자 위에 걸린 인물 이름도 시엔푸에고스다. 혁명 성공 후 아바나에 입성하고 9개월 뒤 시엔푸에고스는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를 당한다. 그의 얼굴은 쿠바의 20페소 지폐 도안으로 등장한다.
시엔푸에고스의 노점상거리
시엔푸에고스의 노점상거리
시엔푸에고스는 시엔푸에고스주 수도로 쿠바섬의 남쪽 항구다. 아바나로부터 250여㎞ 떨어져 있다. 아바나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린다. 길은 거의 직선 도로다. 지나다니는 차량이 드물어서 차량 소통은 원활하다. 인구는 16만여 명이다. 쿠바에서 가장 프랑스풍의 항구 도시다. 초기에는 프랑스에서 이주민들이 밀려 들어왔다. 1819년 프랑스 이주민들이 이 지역에 도착했다. 시엔푸에고스는 ‘페르난디나 데 하구아’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1825년 허리케인으로 도시가 파괴된다. 나중에 성을 재건한 스페인 장군 시엔푸에고스의 이름을 따서 현재 지명이 된다. 스페인어로 시엔푸에고스의 문자적 의미는 ‘100개의 불꽃’이다. 이름과는 달리 한적하고 세련된 도시다.

루이지애나 모방한 네오클래식 건축물

도시는 19세기에 유행했던 네오클래식이란 건축 양식으로 조성했다. 미국의 루이지애나를 모방했다. 예술은 모방이다. 프랑스 이주민들은 유럽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신고전주의 양식의 도시를 카리브해 위에 재현해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시엔푸에고스를 ‘네오클래식의 진주’라고 부른다. 이 도시에는 19세기 호화로운 건축물이 즐비하다. 해변 도시답게 주위가 온통 바다의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느낌을 준다.
토마스 테리 극장이 있는 호세마르티공원
토마스 테리 극장이 있는 호세마르티공원
여행의 시작은 호세마르티 공원부터 시작된다. 토마스 테리 극장을 둘러보는 일은 필수 코스다. 극장 앞에는 있는 신성이 깃든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세이바 나무를 감상하다 보면 우람한 생명력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일직선의 기다란 말레콘을 걸어가면 시엔푸에고스라고 쓰인 거대한 간판을 만난다. 작지만 아름다운 궁전 팔라시오 데 바예의 옥상에 올라 천연의 요새처럼 둥그렇게 육지로 둘러싸인 시엔푸에고스만을 조망하며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남국의 정취 속에서 산들바람에 취할 수 있다.

쿠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역이 총 9곳이다. 그중 시엔푸에고스의 역사 중심 도시는 2005년에 여덟 번째로 지정됐다. 이곳의 볼거리는 블레바드 거리와 호세 마르티 광장 주변의 건축물, 바다로 이어지는 노점상 거리다. 무에에 레알이라는 바다에 나가면 말레콘을 느리게 거니는 사람이나 낚시꾼을 만날 수 있다. 시엔푸에고스에 다니는 마차는 올드카보다 많다. 아름다운 네오클래식 건축물과 아름다운 카리브해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도시다.

카루소가 공연했던 토마스 테리 극장

토마스 테리 극장
토마스 테리 극장
호세 마르티 공원에는 토마스 테리 극장이 있다. 극장 정면에는 쭉 뻗은 세이바나무가 인상적이다. 호세 마르티 공원 북쪽에 있다. 1889년 건물이 완공됐으며 1895년에 개관했다. 보존이 잘돼 있어 국립기념비로 지정됐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토마스 테리는 1820년에 설탕산업과 노예산업으로 부를 축적했는데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 이름으로 이 극장을 세웠다.

외관은 고운 흙에 석회를 섞은 스투코로 장식한 벽기둥과 모자이크 장식이 있다. 실내 장식은 건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관중석은 총 900석이며 무대는 승강장치가 있다. 객석 뒤편은 객석보다 높게 벽면 전체를 발코니로 만들어 무대를 바라볼 수 있다. 극장의 천장 벽화는 아름다운 누드의 여인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시엔푸에고스 방파제
시엔푸에고스 방파제
극장 개관 초연으로 베르디의 오페라를 공연했다. 세계적 테너 가수인 이탈리아의 엔리코 카루소와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그리고 러시아의 발레리나 아나 파블로바 등도 이 극장에서 열린 공연에 참여했다. 1890년에는 이곳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됐다. 화려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영락한 시골의 오랜 건축물일 뿐이다.

도시의 끝부분에 팔라시오 바예라는 오래된 건축물이 있다. 푼타 고르다란 고급주택가에 있는 개인저택으로 20세기 초에 지어졌다. 1913년과 1917년 사이에 설탕사업으로 거부가 된 상인 아시스틀로 델 바예 블랑코는 이 궁전을 건설하기 위해 프랑스, 아랍, 이탈리아, 쿠바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에서 수입된 재료를 사용했다. 당시 엄청난 거금이었던 150만페소를 투자했다. 세월이 흐르자 그 가족은 이 땅을 떠났다. 혁명이 일어나고 관광부는 이 건물의 복원에 자금을 댔으며, 2000년에는 국립 기념물로 지정됐다. 다양한 건축 요소가 혼재된 이채로운 건물이다. 스페인 남부의 전통적인 양식과 모로코 양식을 혼합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일반에 개방돼 있다. 옥상에 올라가면 푸르고 잔잔해 좋았던 시절의 시엔푸에고스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만 같다. 시엔푸에고스 최고의 전망이 나오는 곳이다.

시엔푸에고스=글 최치현 여행작가 maodeng@naver.com

사진 정윤주 여행작가 traveler_i@naver.com

여행메모

쿠바섬 남쪽은 ‘쿠바의 파리’라고 부를 만하다. 도시 전체가 바다에 둘러싸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이 온통 네이비 블루 계열이다. 여행 성수기는 1월부터 4월이다. 허리케인이 불어오는 8월에서 9월에는 도시의 카니발이 열린다. 팔라시오 바예, 카사데라 쿨투라 벤하민 두아트레, 토마스 테리 극장, 클럽 시엔푸에고스 등의 네오 클래식 형식의 건축물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