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봉 前 한섬 사장, "골프의류로 '타임·시스템 신화' 다시 쓰겠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섬·사우스케이프 골프장 이어 골프의류 도전
"골프의류 브랜드 많은데 패션감은 떨어져 천편일률
젊은 여성 주요 타깃으로 내년 봄부터 사업 시작
기획·디자인 콘셉트가 성패 갈라…나는 비즈니스 로맨티스트"
"골프의류 브랜드 많은데 패션감은 떨어져 천편일률
젊은 여성 주요 타깃으로 내년 봄부터 사업 시작
기획·디자인 콘셉트가 성패 갈라…나는 비즈니스 로맨티스트"
정재봉 전 한섬 사장(77)은 국내 패션업계를 이끌던 거장이다. ‘커리어 우먼의 자존심’으로 불린 타임 마인 시스템 등의 브랜드를 직접 만들고 키웠다. 2012년 그는 갑작스레 현대백화점그룹을 상대로 4300억원에 회사를 매각하고 떠났다. 얼마 후 골프장 회장으로 변신했다. 경남 남해에 골프리조트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을 지었다. 최근 그가 다시 의류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남해로 내려오라고 했다.
이달 초 사우스케이프에서 만난 그는 “작은 도전을 해볼까 한다. 골프장을 짓고 나니 한국 사람에게 개성있는 골프의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희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무언가 일을 해야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며 “높은 산(한섬)에 올랐다가 지금은 적당히 낮은 산(골프의류)을 오르려 한다”고 답했다.
‘개념 정립’이 사업 성공 비결
정 사장은 사업을 산에 비유했다. 30대에 패션회사 한섬을 이끌고 정상을 정복했던 그는 “앞으로도 한섬 같은 회사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여성복 시장에서 수십 년간 1위를 하는, 그런 회사를 지칭했다.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디자이너 중심 회사라는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한섬 이후 그는 ‘궁극의 휴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프리미엄 골프리조트 사우스케이프로 새로운 고지에도 올라봤다. 이 산에서 보니 골프의류라는 작은 산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게 힘들지만 그렇다고 등산가가 아무것도 안 하면 그것도 심심하지 않겠느냐”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한 산에 오르는 게 좋다”고 했다.
과거 한섬의 성공비결을 묻자 그는 “콘셉트(개념)가 있었다”고 했다. ‘경험을 체계적으로 지식화하는 작업’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섬이 대기업 계열 패션회사를 제치고 독보적인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이마누엘 칸트가 한 말이 인사이트를 줬다고 했다.
‘감각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감각은 맹목적이다.’
정 사장은 “디자인의 개념 정의가 안 되고 감각만 앞세우면 회사가 잘나가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며 “기획 영업 디자인 등 다양한 업무에 체계를 잡고 방향성을 정해 직원들이 일관성을 갖추도록 하는 게 개념 정립”이라고 했다.
골프의류 비즈니스에 도전
정 사장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에 머문다. 2013년 11월 개장 이후 일상이 됐다. 그는 “골프를 치다 보니 저절로 방문객의 패션에 눈길이 갔다. 한 달에 하나 정도 새로운 골프의류 브랜드가 생기는데도 패션감각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패션·디자인업계 종사자들도 마땅히 입을 골프의류가 별로 없다는 말을 해 사업 욕구를 자극했다. 정 회장은 “패션감각이 떨어지고 천편일률적인 골프의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골프의류 브랜드는 골프장 이름과 같은 ‘사우스케이프’로 정했다. 이곳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만들겠다고 했다. 정 사장은 “평화로운 남해를 끼고 있는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 골프장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의류를 내놔야 하니 자연스레 브랜드 이름도 같아졌다”고 했다. 그는 또 “여기 와본 이에게는 느낌이 확 다가올 것”이라며 “골프장의 개념을 구체화해 제품에 녹여내겠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 골프의류 사업부를 꾸리고 디자이너 10명가량을 뽑았다. 정 회장은 “젊은 여성층이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생산은 국내 전문업체에 맡길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봄 시범적으로 제품을 내놓고 가을께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정 사장은 골프의류를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할 방침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청담동 프래그숍과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에만 둘 예정이다. 정 사장은 e커머스를 동영상 콘텐츠와 접목할 생각이다. 혁신적인 옷을 코디해서 올리면 젊은 수요층이 들어와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동영상을 정지 화면으로 보고 재질이나 색상, 가격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비즈니스 로맨티스트
인터뷰 내내 정 사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지 궁금했다. 기업가라기보다 패션 기획자 또는 아티스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비즈니스 로맨티스트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패션업으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지만 단순히 기업 마인드로 접근했으면 한섬 매각대금(4000억원) 대부분을 쏟아부어 사우스케이프라는 골프장을 짓지 않았을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정 사장은 “나이가 들다 보니 이익은 둘째 치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며 “그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손익을 따지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제품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은 숨기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한섬이 세일을 하지 않은 건 유명한 일화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 사장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전진하지 않으면 후발업체에 추월당할 것이라며 자기 생애에는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 사장도 생전에는 어떤 영역에서건 경쟁자들에게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로 들렸다.
남해=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이달 초 사우스케이프에서 만난 그는 “작은 도전을 해볼까 한다. 골프장을 짓고 나니 한국 사람에게 개성있는 골프의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희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무언가 일을 해야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며 “높은 산(한섬)에 올랐다가 지금은 적당히 낮은 산(골프의류)을 오르려 한다”고 답했다.
‘개념 정립’이 사업 성공 비결
정 사장은 사업을 산에 비유했다. 30대에 패션회사 한섬을 이끌고 정상을 정복했던 그는 “앞으로도 한섬 같은 회사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여성복 시장에서 수십 년간 1위를 하는, 그런 회사를 지칭했다.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디자이너 중심 회사라는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한섬 이후 그는 ‘궁극의 휴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프리미엄 골프리조트 사우스케이프로 새로운 고지에도 올라봤다. 이 산에서 보니 골프의류라는 작은 산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게 힘들지만 그렇다고 등산가가 아무것도 안 하면 그것도 심심하지 않겠느냐”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한 산에 오르는 게 좋다”고 했다.
과거 한섬의 성공비결을 묻자 그는 “콘셉트(개념)가 있었다”고 했다. ‘경험을 체계적으로 지식화하는 작업’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섬이 대기업 계열 패션회사를 제치고 독보적인 1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이마누엘 칸트가 한 말이 인사이트를 줬다고 했다.
‘감각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감각은 맹목적이다.’
정 사장은 “디자인의 개념 정의가 안 되고 감각만 앞세우면 회사가 잘나가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며 “기획 영업 디자인 등 다양한 업무에 체계를 잡고 방향성을 정해 직원들이 일관성을 갖추도록 하는 게 개념 정립”이라고 했다.
골프의류 비즈니스에 도전
정 사장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에 머문다. 2013년 11월 개장 이후 일상이 됐다. 그는 “골프를 치다 보니 저절로 방문객의 패션에 눈길이 갔다. 한 달에 하나 정도 새로운 골프의류 브랜드가 생기는데도 패션감각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패션·디자인업계 종사자들도 마땅히 입을 골프의류가 별로 없다는 말을 해 사업 욕구를 자극했다. 정 회장은 “패션감각이 떨어지고 천편일률적인 골프의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골프의류 브랜드는 골프장 이름과 같은 ‘사우스케이프’로 정했다. 이곳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만들겠다고 했다. 정 사장은 “평화로운 남해를 끼고 있는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 골프장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의류를 내놔야 하니 자연스레 브랜드 이름도 같아졌다”고 했다. 그는 또 “여기 와본 이에게는 느낌이 확 다가올 것”이라며 “골프장의 개념을 구체화해 제품에 녹여내겠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 골프의류 사업부를 꾸리고 디자이너 10명가량을 뽑았다. 정 회장은 “젊은 여성층이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생산은 국내 전문업체에 맡길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봄 시범적으로 제품을 내놓고 가을께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정 사장은 골프의류를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할 방침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청담동 프래그숍과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에만 둘 예정이다. 정 사장은 e커머스를 동영상 콘텐츠와 접목할 생각이다. 혁신적인 옷을 코디해서 올리면 젊은 수요층이 들어와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동영상을 정지 화면으로 보고 재질이나 색상, 가격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비즈니스 로맨티스트
인터뷰 내내 정 사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지 궁금했다. 기업가라기보다 패션 기획자 또는 아티스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비즈니스 로맨티스트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패션업으로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지만 단순히 기업 마인드로 접근했으면 한섬 매각대금(4000억원) 대부분을 쏟아부어 사우스케이프라는 골프장을 짓지 않았을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정 사장은 “나이가 들다 보니 이익은 둘째 치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며 “그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손익을 따지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제품을 선보이고 싶은 욕심은 숨기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한섬이 세일을 하지 않은 건 유명한 일화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정 사장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전진하지 않으면 후발업체에 추월당할 것이라며 자기 생애에는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말했다. 정 사장도 생전에는 어떤 영역에서건 경쟁자들에게 추월당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로 들렸다.
남해=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