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한미국대사관을 앞세워 정부와 국회의 구글세 도입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구글·페이스북 등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 내 수익에 과세를 강화하는 법안 발의가 잇따르자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측면 지원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현재 국회에는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안 등 여러 건의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단독] 與의원 '구글 서버 국내 설치법' 발의에…美 "FTA 12조 위반" 견제구
[단독] 與의원 '구글 서버 국내 설치법' 발의에…美 "FTA 12조 위반" 견제구
美 “한·미 FTA 위반 가능성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28일 고려대 미국법센터, 국내 시민단체인 ‘오픈넷’과 공동으로 ‘국경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 주권 지키기’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 고려대 서울캠퍼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리는 이날 행사에선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직접 개회사를 한다. 주한미국대사관이 공동주최를 통해 자국 기업들의 입장을 한국 정부와 국회에 전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27일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토론회는 변재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주로 국내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글로벌 기업들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코자 국내에 서버를 두도록 의무화한 이 법안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이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조슈아 멜처 선임연구원이 발제자로 나서 사생활침해 가능성, 검열, 보호무역주의 등 서버 현지화의 문제점을 지적할 예정이다.

멜처 연구원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통해 “(한국에 서버를 두게 되면) 대규모 데이터를 통합할 수 있는 기업 능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자적으로 배포되는 디지털 제품에 관세 혹은 이에 준하는 차별적 조치를 적용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금지돼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약 및 한·미 간, 미국·일본 간, 미국·유럽 간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들었다.

행사 주최 측이 사전에 작성한 보도자료 및 의견서에도 미국 측의 우려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한 토론자는 “변 의원 법안은 글로벌 기업이 데이터 현지화를 위해 국내에 서버를 두도록 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한·미 FTA 12조에 따른 ‘현지주재 의무 부과 금지’ 및 ‘내국민 대우’ 조항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는 서비스 공급 기업이 속한 국가에 대한 내국민 대우 보장, 최혜국 대우, 시장접근 제한조치 도입 금지, 현지주재의무 부과 금지 등 네 가지 의무를 지도록 하고 있다.

美 기업들, 대사관 앞세워 우회 압박?

주최 측은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국내 서버 설치 의무화’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시대적 역행’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오픈넷은 “데이터 현지화는 극소수의 사회주의 국가와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나 도입한 제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러시아 등이 국가안보 등의 목적으로 ‘서버 현지화’를 주장한 것과 달리, 변 의원 법안은 모든 서비스 제공을 위한 서버를 국내에 두도록 함으로써 결국 국가에 의한 감시와 검열이 훨씬 더 쉬워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오픈넷 소속 김가연 변호사는 “프라이버시 침해 등 정보 인권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버를 꼭 한국에 둔다고 해서 과세 근거로 삼기는 법적 논리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국제법 분쟁의 영역으로 갈 경우 더 복잡해진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의 독점적 수익에 대한 과세 강화 등 최소한의 제어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비슷한 법안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구글은 지난해 국내에서 네이버와 비슷한 5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세금은 네이버의 20분의 1 수준에 그쳤다”며 “국내 인터넷망에 사실상 무임승차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간 이견이 없어 관련 법의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대사관을 통해 통상 마찰 가능성을 꺼내들며 사실상 ‘압박’에 나선 것도 이 같은 국내 분위기를 고려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