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서울 강남에만 교통망이 잘 깔리는 이유
서울 강남은 전국 최고의 사통팔달 지역이다. 강남 3구를 관통하는 지하철 노선만 7개다. 교통망이 잘 갖춰진 강북의 종로 일대도 강남에는 못 미친다. 신설 노선도 꾸준히 깔리고 있다. 2016년엔 금천에서 사당, 양재, 수서를 가로지르는 강남순환도로가 뚫렸다. 앞서 강남과 경기 성남 분당을 잇는 신분당선 1단계 구간이 2011년에, 분당에서 경기 수원 광교로 이어지는 2단계 구간이 2016년에 각각 완공됐다.

같은 신분당선이지만 ‘광교~수원 호매실’ 연장 구간의 처지는 그렇지 못하다. 국토교통부가 이미 2006년에 확정·고시했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난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출퇴근 지옥에 시달리는 호매실지구 아파트 입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 약속(2019년 개통)만 믿고 10여 년 전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이들이다. 입주민들은 당시 지하철 건설을 위한 ‘광역교통 분담금’ 1500억원까지 냈다. “정부에 사기를 당했다”는 항변이 무리는 아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 26일 호매실지구를 찾아 “지역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달랜 배경이다.

교통 인프라에 이 같은 지역 불균형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자리가 풍부한 강남을 지나는 노선만 1차 관문인 경제성 조사를 통과할 수 있어서다. 기획재정부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해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예타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을 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다. 지역균형발전, 경제성(B/C), 정책의지 등 3개 항목을 따져 평가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경제성이다. 분석 결과 비용(cost) 대비 수익(benefit)이 조금이라도 많은 상태, 즉 1.0을 넘어야 합격 판정을 받는다. B/C가 1.0을 넘기려면 기본적으로 노선 주변에 아파트뿐만 아니라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현재 기준대로 경제성을 평가하면 서울 강북에도 신규 전철 노선이 깔리기 어렵다고 서울시 관계자는 말한다.

위례, 김포, 파주, 양주 등 2기 신도시에 계획된 도로·철도망이 10여 년간 표류하는 것도 B/C 통과가 번번이 막혀서다. 올해 초 경기도가 발표한 ‘2차 도시철도망 계획’도 성남 1·2호선 트램, 지하철 8호선 판교 연장 등 강남-경부 축에 집중돼 있다. 남양주 등 경기 북부지역에 대한 계획은 전무했다. 경제적 잣대에 밀려 서울과 수도권 외곽지역이 교통오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강남의 집값을 올린 건 정부다.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춘 강남으로 실수요와 투자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는 공약 사업에 치중하느라 SOC 투자를 등한시하는 추세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4대강 사업, 문재인 정부에선 복지예산에 밀려 신규 SOC 건설이 외면받고 있다. 2기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약속한 교통망 중 당초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 전무하다시피하다.

마침 정부는 연내에 수도권의 광역 교통 인프라 보완대책을 발표할 방침이다. 교통 사각지대에 놓인 2기 신도시, 택지지구 주민들의 원성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지역 균형 발전과 강남 수요 분산을 위해 경제성이 조금 부족한 사업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교통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