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핵 철수로 '한반도 화해무드' 뒷받침
역사적 몰타회담서 미·소 냉전종식 선언…재임 4년간 2차례 국회 연설


1일(현지시간) 별세한 미국 41대 조지 W.H.부시 전 대통령의 재임기(1989~1993년)는 한반도 정세의 급변기였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부시 전 대통령이 있었다.

1989년 12월 지중해 몰타에서 이뤄진 미·소 정상회담은 '동서 냉전 해체'의 신호탄이었다.

옛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부시 전 대통령은 '동서 협력시대'를 언급하면서 탈(脫)냉전을 선언했다.

이듬해 10월 동서독이 통일됐고, 부시 전 대통령은 "냉전 종식은 모든 인류의 승리"라며 "유럽은 완전히 자유로워졌고, 미국의 리더십은 이를 가능케 하는 데 중요한 노릇을 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화해 무드는 노태우 정권의 이른바 '북방외교'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됐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옛 소련(러시아)과, 1992년 중국과 잇따라 수교했다.

1991년 9월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뤄졌다.

주한미군의 전술핵 철수는 한반도 안보지형의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1991년 소련과의 '전략무기 감축 협정'(START)을 극적으로 타결했고, 그 연장 선상에서 주한미군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철수시켰다.

당시 북한에 핵무기가 없던 상황에서 주한미군 전술핵이 철수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진다는 논리가 나왔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1년 11월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다.

이는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의 내용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이어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4년 재임 기간, 두 차례 국회 연설을 진행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첫 방한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 이후 남북 대립이 상대적으로 누그러진 상황에서 이뤄졌다.

취임 직후인 1989년 2월 여의도 국회에서 "우리는 북한 쪽으로 다리를 놓으려는 노태우 대통령의 평화적인 제안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며 "노 대통령과 긴밀히 협조해 북한을 실질적·평화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로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기 후반기인 1992년 1월 국빈 방한 기간에는 북한이 핵시설 사찰을 수용하고 의무를 이행하면 한미 양국의 팀스피릿(Team Spirit) 군사훈련을 중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남북 공동 비핵화 선언을 상기하면서 굳건한 한·미 동맹의 발전과 한반도 안전을 역설했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으로 촉발된 '제1차 북핵 위기'로 한반도 기류가 급속히 얼어붙기 이전까지 직간접적으로 '한반도 데탕트'를 뒷받침한 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