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일본 간사이 여행…우아한 백조 성, 늠름한 까마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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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일본 오카야마·효고현 여행
고즈넉한 전통가옥 사이로 100년前 쇼와시대를 거닐다
일본 오카야마·효고현 여행
고즈넉한 전통가옥 사이로 100년前 쇼와시대를 거닐다
일본 여행지 중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교토와 나라, 오사카 인근일 것이다. 역사적인 유적지가 즐비하고 매력적인 볼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여러 번 다녀온 일본 여행 애호가들이라면 즐겨 찾는 곳은 따로 있다. 교토 인근에 있는 효고현과 에도시대 분위기가 남아 있는 오카야마현이 그곳이다. 뻔한 일본 여행에 식상했다면 일본의 다양한 시간을 보여주는 오카야마와 효고현으로 떠나보자.
작은 세계 옮겨놓은 고라쿠엔
오카야마는 강수량이 적고 햇살이 넉넉해서 ‘햇살의 땅’이라고 불린다. 그래서일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인데도 오카야마는 낮에는 더운 느낌이 들 정도로 햇살이 풍부했다. 에도시대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묻어 있는 오카야마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라쿠엔(後樂園)이다. 고라쿠엔은 미토의 가이라쿠엔, 가나자와의 겐로쿠엔과 함께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다. 고라쿠엔은 도쿄에도 있었는데, 한때는 야구장이었다가 이제는 유원지가 됐다고 한다.
1702년 완공된 고라쿠엔은 회유식 정원으로 일본 초기 정원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유식 정원이란 돌아다니며 즐기는 정원이다. 정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를 옮겨 놓은 것 같다. 정원의 크기가 무려 13만3000㎡에 달한다. 정원은 인공적인 미의 극치를 이룬다. 정원 안에 정자도 있고 세 개의 인공섬과 6m 높이의 작은 산 같은 형태의 동산, 연못과 습지까지 갖추고 있다.
고라쿠엔과 오카야마 성 사이에는 아사히가와라는 강이 휘어져 흐르고 쓰기미바시라는 폭이 좁은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일본인 해설사는 에도 막부 시절 오카야마를 하사받은 이케다 가문이 오카야마 성 옆에 정원을 조성하면서 중국 명나라의 유학자가 남긴 ‘천하의 근심을 앞장서서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나중에 누린다’는 문장에서 착안해 고라쿠엔이라 이름 붙였다고 했다.
까마귀의 성 오카야마
고라쿠엔을 다 봤다면 이제 오카야마 성을 둘러볼 차례다. 오카야마 성은 백색의 성인 히메지 성과 대비되는 검은색 성이다. 성의 외관이 모두 검은색이어서 까마귀 성으로 불린다. 오카야마 성은 단지 검은색만 칠해진 것은 아니다. 외벽은 검은색이지만 처마 아래 들보는 금색이다. 히메지 성이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오카야마 성은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오카야마 성은 2차 세계대전 끝 무렵인 1945년 대공습으로 불타버렸다. 이후 1966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했다. 오카야마 성은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도 등장한다. 오카야마 성 안에 있는 찻집이 실물 그대로 등장하는데 만화 영화 속 주인공인 코난이 먹었던 파르페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맛보는 명물이다. 일본의 오타쿠 기질 그대로 실제 찻집의 모습이 애니메이션 속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쇼와시대 정취 구라시키 미관지구
오카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고라쿠엔이나 오카야마 성이 아니다. 오카야마 성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봐야 제대로 오카야마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구라시키라는 말은 창고가 널려 있다는 뜻이다. 창고에 들어 있는 것은 쌀이었다. 오카야마의 평야에서 재배된 쌀이 모여드는 집산지가 바로 구라시키였다. 구라시키를 가로질러 강을 파 운하를 만들고 양쪽으로 창고를 지었다. 운하를 통해 에도로 쌀을 운반했다. 지금은 쌀 창고가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구라시키는 17세기 에도시대부터 쇼와시대 초기까지의 경관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 전통가옥과 창고, 유럽풍 근대건물이 늘어선 운하의 수양 버드나무 아래로 거룻배가 관광객을 태우고 오가는 풍경이 사뭇 목가적이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인력거를 타거나 걸어 다녀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쇼와시대의 은행부터 식당, 작은 박물관까지 볼 것투성이다. 그중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관지구 중심에 있는 오하라 미술관이다.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에서 가장 번성했던 가문인 오하라가에서 재정 지원을 받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의 제안으로 1930년 개관한 미술관이다. 오하라는 고지마에게 서양의 미술품을 수집해달라고 요청해 미술관을 세웠다. 불모의 땅에 지어진 미술관은 위대한 작가들의 향연장이었다. 모딜리아니, 귀스타브 쿠르베, 폴 세잔,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파블로 피카소 등 세계적인 대가들의 작품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구라시키에서 또 한 곳의 명소는 카페 유린안이다. 100년이 넘는 전통가옥을 활용해 꾸민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다.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가 자전거 여행을 하며 들른 곳이기도 한데 계란에 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 간장계란밥과 복숭아주스 등이 유명하다.
눈부신 흰색의 관능미, 백조성 히메지
교토에 이웃한 효고현은 수많은 유적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골라서 봐야 한다면 단연 히메지 성을 꼽고 싶다. 특히 벚꽃 피는 계절의 히메지는 인간의 수사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감동적이다. 흰색의 백조가 날아가는 듯한 날렵한 처마 밑으로 분홍빛 눈이 떨어졌던 봄의 히메지는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가 됐다. 일본 전국에 180여 개가 넘는 성 중에서 유일하게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히메지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히메지 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1333년이다. 이후 무려 3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1610년이 돼서야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성은 일본에서는 흔치 않은 백색 성이다. 외벽은 회반죽으로 마감했다. 성의 중심을 이루는 6층짜리 목조건물은 기와까지 흰색이다. 나무로 지어진 성은 불에 의한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화력(火力)을 이용한 무기가 발달할 때마다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히메지 성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흰색의 회벽칠은 불에 강한 회반죽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덧칠한 회반죽이 무려 3㎝에 이를 정도로 두껍다. 히메지 성은 이후에도 줄기차게 보수해 2015년 백로성이라는 별명에 걸맞을 정도로 눈부신 흰색으로 거듭났다.
건축학적으로도 히메지는 매력적인 성이다. 무엇보다 세 겹의 나선형 형태로 된 처마는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성의 상징인 대천수 건물은 무려 5700t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서쪽 기둥은 650년과 775년 된 노송을 위아래로 붙인 것이다. 히메지 성은 용케도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는 성이다. 그래서 ‘부전(不戰)의 성’으로도 불린다. 1945년 7월 미국의 히메지 대공습 때 성으로 떨어진 폭탄이 천우신조로 불발하면서 용케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1300년 전통의 고적한 아리마 온천
일본의 많은 성처럼 히메지 성도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관련이 있다.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어린 시절 결혼한 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인 센 히메였다.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히데요시가 죽자 이에야스는 노골적으로 일본 전국을 제패할 야심을 드러냈다. 족보상으로는 히데요리가 손녀 사위지만 권력은 나눠 가질 수 없는 법이었다. 비정한 전투에서 히데요리는 패하고 오사카 성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센 히메는 이에야스의 손녀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이후 히메지 성의 성주인 혼다 가문의 다다토키와 재혼했다. 원래 히메지는 이케다 가문 소유였지만 한 집안이 한 곳에 오래 터를 잡고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영지 교환정책으로 혼다 가문이 히메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센 히메의 남편 다다토키도 10년 만에 죽었고 센 히메는 쓸쓸히 성을 떠나야 했다.
효고현 고베시에 있는 아리마 온천은 구사쓰, 게로와 함께 일본의 3대 온천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아리마 온천은 무려 1300년이나 된 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온천마을이다. 온천물에 철과 염분이 많이 섞여 있어 황갈색을 띤다. 금탕이라 불리는 온천물은 염분이 해수물의 2배에 달해 피부질환과 관절통에 좋다고 한다.
온천마을은 나라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붓을 팔거나 향을 파는 가게가 있고 특산품과 먹거리 상점도 들어섰다. 상점 사이로 온천사라는 이름의 절이 있어 이채롭다. 아리마산 온천 사이다와 전병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카야마·효고=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취재 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여행 메모
오카야마를 가려면 간사이 공항이나 오사카에서 신칸센 열차는 타는 것이 좋다. JR 간사이 와이드 패스 9000엔짜리를 구입하면 5일간 간사이 지역은 물론 오카야마 성과 구라시키, 히메지까지 가는 교통편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오카야마는 최근 대한항공과 일본항공이 직항을 운항하고 있다. 한때 태풍과 집중호우로 폐쇄됐던 간사이 공항이 완전 복구됐다.
오카야마와 효고의 맛집은 여러 군데 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매력적인 사케와 일본 전통음식집인 ‘구라푸라 푸’다. 구라시키는 곡창지대답게 좋은 사케가 많다. 구라시키의 지자케(地酒)를 파는 이즈쓰야(井筒屋)에선 만네이, 유키, 산젠 등을 살 수 있다.
구라푸라 푸는 뒤집어 먹는 초밥을 판다. 이 음식이 별미다. 나무도시락에 나오는 초밥을 풀어보면 달걀지단이 얼기설기 올려진 초밥같지 않은 초밥처럼 보인다. 이 초밥은 뒷면이 진짜다. 바닥에 붕장어와 갯가재, 연어, 문어, 새우 등을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구라시키를 지배하던 영주가 사치스러운 식사를 금지했는데 생선회를 먹고 싶었던 백성들이 밥 아래 숨겨놓고 먹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작은 세계 옮겨놓은 고라쿠엔
오카야마는 강수량이 적고 햇살이 넉넉해서 ‘햇살의 땅’이라고 불린다. 그래서일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인데도 오카야마는 낮에는 더운 느낌이 들 정도로 햇살이 풍부했다. 에도시대의 고풍스러운 느낌이 묻어 있는 오카야마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라쿠엔(後樂園)이다. 고라쿠엔은 미토의 가이라쿠엔, 가나자와의 겐로쿠엔과 함께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다. 고라쿠엔은 도쿄에도 있었는데, 한때는 야구장이었다가 이제는 유원지가 됐다고 한다.
1702년 완공된 고라쿠엔은 회유식 정원으로 일본 초기 정원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유식 정원이란 돌아다니며 즐기는 정원이다. 정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하나의 작은 세계를 옮겨 놓은 것 같다. 정원의 크기가 무려 13만3000㎡에 달한다. 정원은 인공적인 미의 극치를 이룬다. 정원 안에 정자도 있고 세 개의 인공섬과 6m 높이의 작은 산 같은 형태의 동산, 연못과 습지까지 갖추고 있다.
고라쿠엔과 오카야마 성 사이에는 아사히가와라는 강이 휘어져 흐르고 쓰기미바시라는 폭이 좁은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일본인 해설사는 에도 막부 시절 오카야마를 하사받은 이케다 가문이 오카야마 성 옆에 정원을 조성하면서 중국 명나라의 유학자가 남긴 ‘천하의 근심을 앞장서서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나중에 누린다’는 문장에서 착안해 고라쿠엔이라 이름 붙였다고 했다.
까마귀의 성 오카야마
고라쿠엔을 다 봤다면 이제 오카야마 성을 둘러볼 차례다. 오카야마 성은 백색의 성인 히메지 성과 대비되는 검은색 성이다. 성의 외관이 모두 검은색이어서 까마귀 성으로 불린다. 오카야마 성은 단지 검은색만 칠해진 것은 아니다. 외벽은 검은색이지만 처마 아래 들보는 금색이다. 히메지 성이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오카야마 성은 남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오카야마 성은 2차 세계대전 끝 무렵인 1945년 대공습으로 불타버렸다. 이후 1966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했다. 오카야마 성은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도 등장한다. 오카야마 성 안에 있는 찻집이 실물 그대로 등장하는데 만화 영화 속 주인공인 코난이 먹었던 파르페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맛보는 명물이다. 일본의 오타쿠 기질 그대로 실제 찻집의 모습이 애니메이션 속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쇼와시대 정취 구라시키 미관지구
오카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고라쿠엔이나 오카야마 성이 아니다. 오카야마 성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봐야 제대로 오카야마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구라시키라는 말은 창고가 널려 있다는 뜻이다. 창고에 들어 있는 것은 쌀이었다. 오카야마의 평야에서 재배된 쌀이 모여드는 집산지가 바로 구라시키였다. 구라시키를 가로질러 강을 파 운하를 만들고 양쪽으로 창고를 지었다. 운하를 통해 에도로 쌀을 운반했다. 지금은 쌀 창고가 아니라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구라시키는 17세기 에도시대부터 쇼와시대 초기까지의 경관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 전통가옥과 창고, 유럽풍 근대건물이 늘어선 운하의 수양 버드나무 아래로 거룻배가 관광객을 태우고 오가는 풍경이 사뭇 목가적이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인력거를 타거나 걸어 다녀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쇼와시대의 은행부터 식당, 작은 박물관까지 볼 것투성이다. 그중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관지구 중심에 있는 오하라 미술관이다.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에서 가장 번성했던 가문인 오하라가에서 재정 지원을 받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의 제안으로 1930년 개관한 미술관이다. 오하라는 고지마에게 서양의 미술품을 수집해달라고 요청해 미술관을 세웠다. 불모의 땅에 지어진 미술관은 위대한 작가들의 향연장이었다. 모딜리아니, 귀스타브 쿠르베, 폴 세잔,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파블로 피카소 등 세계적인 대가들의 작품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구라시키에서 또 한 곳의 명소는 카페 유린안이다. 100년이 넘는 전통가옥을 활용해 꾸민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다.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가 자전거 여행을 하며 들른 곳이기도 한데 계란에 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 간장계란밥과 복숭아주스 등이 유명하다.
눈부신 흰색의 관능미, 백조성 히메지
교토에 이웃한 효고현은 수많은 유적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골라서 봐야 한다면 단연 히메지 성을 꼽고 싶다. 특히 벚꽃 피는 계절의 히메지는 인간의 수사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감동적이다. 흰색의 백조가 날아가는 듯한 날렵한 처마 밑으로 분홍빛 눈이 떨어졌던 봄의 히메지는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가 됐다. 일본 전국에 180여 개가 넘는 성 중에서 유일하게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히메지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히메지 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1333년이다. 이후 무려 30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1610년이 돼서야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성은 일본에서는 흔치 않은 백색 성이다. 외벽은 회반죽으로 마감했다. 성의 중심을 이루는 6층짜리 목조건물은 기와까지 흰색이다. 나무로 지어진 성은 불에 의한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화력(火力)을 이용한 무기가 발달할 때마다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히메지 성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흰색의 회벽칠은 불에 강한 회반죽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덧칠한 회반죽이 무려 3㎝에 이를 정도로 두껍다. 히메지 성은 이후에도 줄기차게 보수해 2015년 백로성이라는 별명에 걸맞을 정도로 눈부신 흰색으로 거듭났다.
건축학적으로도 히메지는 매력적인 성이다. 무엇보다 세 겹의 나선형 형태로 된 처마는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성의 상징인 대천수 건물은 무려 5700t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서쪽 기둥은 650년과 775년 된 노송을 위아래로 붙인 것이다. 히메지 성은 용케도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는 성이다. 그래서 ‘부전(不戰)의 성’으로도 불린다. 1945년 7월 미국의 히메지 대공습 때 성으로 떨어진 폭탄이 천우신조로 불발하면서 용케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1300년 전통의 고적한 아리마 온천
일본의 많은 성처럼 히메지 성도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관련이 있다.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어린 시절 결혼한 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인 센 히메였다.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히데요시가 죽자 이에야스는 노골적으로 일본 전국을 제패할 야심을 드러냈다. 족보상으로는 히데요리가 손녀 사위지만 권력은 나눠 가질 수 없는 법이었다. 비정한 전투에서 히데요리는 패하고 오사카 성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센 히메는 이에야스의 손녀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이후 히메지 성의 성주인 혼다 가문의 다다토키와 재혼했다. 원래 히메지는 이케다 가문 소유였지만 한 집안이 한 곳에 오래 터를 잡고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영지 교환정책으로 혼다 가문이 히메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센 히메의 남편 다다토키도 10년 만에 죽었고 센 히메는 쓸쓸히 성을 떠나야 했다.
효고현 고베시에 있는 아리마 온천은 구사쓰, 게로와 함께 일본의 3대 온천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아리마 온천은 무려 1300년이나 된 일본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온천마을이다. 온천물에 철과 염분이 많이 섞여 있어 황갈색을 띤다. 금탕이라 불리는 온천물은 염분이 해수물의 2배에 달해 피부질환과 관절통에 좋다고 한다.
온천마을은 나라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붓을 팔거나 향을 파는 가게가 있고 특산품과 먹거리 상점도 들어섰다. 상점 사이로 온천사라는 이름의 절이 있어 이채롭다. 아리마산 온천 사이다와 전병을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카야마·효고=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취재 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여행 메모
오카야마를 가려면 간사이 공항이나 오사카에서 신칸센 열차는 타는 것이 좋다. JR 간사이 와이드 패스 9000엔짜리를 구입하면 5일간 간사이 지역은 물론 오카야마 성과 구라시키, 히메지까지 가는 교통편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오카야마는 최근 대한항공과 일본항공이 직항을 운항하고 있다. 한때 태풍과 집중호우로 폐쇄됐던 간사이 공항이 완전 복구됐다.
오카야마와 효고의 맛집은 여러 군데 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매력적인 사케와 일본 전통음식집인 ‘구라푸라 푸’다. 구라시키는 곡창지대답게 좋은 사케가 많다. 구라시키의 지자케(地酒)를 파는 이즈쓰야(井筒屋)에선 만네이, 유키, 산젠 등을 살 수 있다.
구라푸라 푸는 뒤집어 먹는 초밥을 판다. 이 음식이 별미다. 나무도시락에 나오는 초밥을 풀어보면 달걀지단이 얼기설기 올려진 초밥같지 않은 초밥처럼 보인다. 이 초밥은 뒷면이 진짜다. 바닥에 붕장어와 갯가재, 연어, 문어, 새우 등을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구라시키를 지배하던 영주가 사치스러운 식사를 금지했는데 생선회를 먹고 싶었던 백성들이 밥 아래 숨겨놓고 먹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