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주심 지목해 법원장에 요구…배당할 사건번호 미리 비워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옛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을 맡은 일선 법원의 판결선고뿐만 아니라 재판부 배당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옛 통진당 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의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는 2015년 11월 판결을 선고하기 전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법원행정처 내부 지침을 전달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어떻게 이런 판결이 있을 수 있냐. 법원행정처 입장이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된 것이 맞느냐"며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1심에서 자체적으로 세운 판단 기준에 어긋나는 판결이 나오자 심상철 당시 서울고등법원장을 통해 특정 재판부와 주심에게 항소심을 배당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요구는 사건 배당을 담당하는 직원에게도 전달됐다.

특히 서울고법이 사건 배당을 하기 전 특정 재판부에 통진당 소송이 돌아가도록 사건번호를 비워둔 채 다른 사건들을 배당한 정황도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실제로 사건은 법원행정처 뜻대로 배당됐다.

그러나 같은해 2월 인사이동에 따라 사건을 넘겨받은 이동원 현 대법관(당시 서울고법 행정6부 부장판사)이 판결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 같은 사건 배당에 개입한 단서가 나온 박 전 대법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전날 구속영장에 적시하는 한편 재판부 배당 당시의 구체적인 전산 조작 경위를 추가로 확인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