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경기도 일산 서구 메르세데스벤츠 일산전시장. ‘골든슬래머’박인비(30)의 원포인트 레슨이 시작되자 행사에 참석한 골프팬들이 특설무대쪽으로 쏠리며 술렁였다. 박인비의 클럽후원사인 던롭 스릭슨의 젝시오가 마련한 이번 행사는 추첨을 통해 초청된 20명의 고객과 기자 등 100여명이 참석해 북적거렸다. 현장 추첨으로 ‘천금’같은 1대1 개인 레슨 기회를 잡은 한 여성 고객이 아이언샷을 몇 번 해 보이자 박인비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갈수록 옛날보다 거리도 줄고 실력도 주는 것 같아 속상하다.문제가 뭔지 모르겠다.”는 고객의 고민에 박인비는 가장 현실적인 답을 제시했다.
“훅이 잘 날 수 있는 클로즈 스탠스를 서고 계세요. 일부러 드로 샷을 구사하기 위한 게 아니라면 왼발을 좀 더 오픈해주시고,오른쪽을 너무 많이 보는 얼라인먼트부터 바꾸셔야 합니다.”
이어 그는 “세게 친다고 거리가 나는 게 아니다. 클럽 헤드가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오른쪽 어깨를 잡아주면서 조금 기다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열린 공개 레슨에서 박인비가 제시한 3가지 팁과 일맥상통하는 조언. 박인비가 풀어놓은 첫 번째 팁은 셋업 때 중요하게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그는 “체중을 완전히 발바닥에 다 싣는다는 느낌을 확실히 가져야 안정된 스윙,일관된 스윙이 나온다”고 말했다. 특히 긴장이 많이 되는 티샷일수록 발끝에 집중해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두 번째가 척추각(스파인 앵글)이다. 셋업 때 굽혀진 허리와 등이 임팩트 때 끝까지 버티면서 유지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야 방향성과 일정한 거리가 확보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아마추어골퍼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항상 자신의 비거리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장 멀리 친 비거리를 자신의 비거리로 생각하면 힘이 들어가고 샷이 좋아질 수가 없습니다. 비거리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똑같이 문제고요. 잘못 맞아도 120야드는 나갈 테니, 140야드쯤 나가는 긴 채를 잡고 치는 분들이 많은데, 타깃을 훨씬 벗어나 낭패를 겪는 걸 많이 봤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평균 비거리를 확실히 깨닫고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박인비는 이날 고객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과 즉석 인터뷰를 했다. 박인비는 올 시즌 자신의 성과에 대해 “메이저 우승이 없어 아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삶에 대한 여유와 골프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았다는 점에서 너무 행복하다.내년에도 올해처럼 골프와 골프 이외의 것에 균형을 잘 맞춘 행복한 시즌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박인비는 골프 이외에 재미를 붙인 것으로 농구와 필라테스를 꼽았다. 박인비는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승(뱅크오브호프파운더스컵)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1승(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 등 통산 2승을 거뒀다. 2주 후에는 미국 라스베가스로 건너가 체력훈련을 중점으로 한 동계훈련에 전념할 예정이다. 다음은 박인비와의 일문일답.
▶올 시즌 매치플레이 대회에서 국내 첫 승을 올렸다. 시즌에 대한 평가는.
“메이저 우승이 없어 아쉽지만,세계랭킹 1등과 국내 대회 첫 승 등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긴 했다. 지난해 몸이 안좋아 대회 출전수가 적었지만 올해는 원하는 대회 수를 소화했다.그 속에서 원하는 바를 이뤘고,여유도 찾았다.”
▶2세 계획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은 없다. 당분간은 골프가 더 재밌고,또 그게(아이 갖기)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려해 볼 것이다.”
▶시즌 내내 퍼팅이 좀 안됐다.
“샷은 괜찮았지만 퍼팅이 좀 들쭉날쭉 한 것은 있었다. 대회 출전 수가 적어 시합감이 떨어져 있어서 살리는 게 필요했던 것 같다. 일관된 스트로크가 필요해서 앞으로 좀 더 잘 맞는 그립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부족한 부분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 지 좀 알았으면 좋겠다.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홀이 절 외면했던 것 같다(웃음).”
▶13개 대회 뛰었다.국내까지 총 17개다.소화하기 좋았나. “14개 안팎이 가장 좋은 대회 수인 것 같다. 작년 재작년에 이렇게 앞만보고 달리다간 일찍 골프를 접어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골프 이외의 부분을 둘러보고,조금 쉬어가는 타이밍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골프의 열정을 다시 찾은 게 수확이다.”
▶올림픽 또 출전할 계획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아직 1년 반 정도 시간이 있다. 내년 시즌 초반 경기력 봐가며 후년 계획 세우면 될 것 같다.올림픽에 대한 일정을 따로 짜기 보다는 당장 시즌부터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올림픽 감독 생각은.
“조금 멀리 간 생각이다. 훌륭한 후배들이 너무 많다.엔트리(대표팀)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내 역할이 어떤 건 지 모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함께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좋겠지만,이것도 차차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LPGA)장타 경쟁이 치열하다.대응방안이 있나.
“올 시즌 비거리가 좀 준 감이 있다. 클럽헤드가 열리면서 탄도가 조금 높아진 게 원인인 것도 같다. 10~15야드 정도 더 늘리면 좋을 것 같다.내년엔 파워풀한 경기에 주력할 것이다.”
▶부상은 완쾌됐나.
“완전히 나았다. 몸에서 자유로워졌다.”
▶골프외에 재미를 붙인 것이 있나.
“활동적인 것을 주로 하려 했다.필라테스,농구같은 것을 하며 밖에서 활동하려 했다. 개를 키우다보니 산도 많이 갔다. 비행기를 덜 타다보니 몸이 좋아진 게 사실이다. 집에 없고 계속 비행기 타는 생활에 지쳤는데,한 두달 계속 집에 있다보니 주변을 돌아보고,감사한 분들에게도 인사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국내 대회 출전 수는
“올해 수준이 될 것 같다.”
▶다음 일정은.
“2주 후에 미국으로 출국할 것이다.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훈련도 하고 휴식도 취할 것이다.”
▶내년에 LPGA 진출하는 이정은6에 대한 평가는.
“실력은 문제가 아니다.걱정할 게 없다.하지만 적응이 문제다.음식,이동거리 등에 대해 예민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면 충분히 적응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잘 할 것이다.”
▶한국 선수의 미국 무대 진출도 줄고, 승수도 줄고 있는데. “좋은 게 아니다. 좀 더 많은 후배들이 노크를 했으면 좋겠다. 삶과 골프에 균형을 맞춰 도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
“골프로 얻는 행복과 소소한 것으로 얻는 행복이 다르더라.올해처럼 프로 13년차에 처음으로 대회에 나가서 남의 눈을 조금 덜 신경쓰고 쳤다. 행복했다.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
▶쉬면서도 골프생각했던 예전과 달라보인다.
“골프이외의 것들을 하면서도 손가락 다치면 어떡하나,감각이 이상해지면 어떡하나,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하지만 지난해 부상을 당하면서 조금 내려놓는 법을 알게된 것 같다.다른 선수들 시합하는 것 보면 나도 빨리 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게 아닌가.했는데.이런 걸 조금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새 목표가 있는가.
“목표보다는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내 몸에 명령을 내렸을 때 그걸 실행할 수 있느냐,체력이나 열정이 떨어져 있을 때 그런 게 중요하다. 메이저 대회 우승이든, 멀티 우승이든 열정과 의욕이 있으면 큰 문제는 아니다.이걸 찾고 지키면 좀 더 행복하고 즐거운 시즌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도 유망한 선수를 꼽자면.
“포텐셜있는 선수 너무 많다.유소연 박성현,김아림 선수 등을 꼽고 싶다. 외국선수 중에는 에리야 쭈타누깐이다. 거리가 너무 많이 나가서 쉽게 골프한다.올해처럼 퍼팅까지 잘 된다면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년엔 (한국 선수들이)많이 뭉쳐야 할 것 같다(웃음).(올해 조금 부진한) 렉시 톰슨의 경우도 보면 뭔가 골프에 대한 깨우침을 갖는 그런 과정인 것 같다.누구나 사실 한 번쯤 겪어야 할 과정이다. 기본기가 좋은 선수다. 돌파구를 찾느냐가 문제다.각자 방식은 다르다.분명한 건 톰슨도 강력한 우승후보란 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해는 언제인가.
“2013년 메이저 3연승했던 때가 좋았다. 아무생각없이 칠 때가 가장 좋았다.”
▶동계훈련 중점은.
“올해 더운 날 힘이 많이 들었다.체력훈련에 집중할 것이다.퍼팅도 실전 테스트 등을 해가면서 보완할 부분 더 찾겠다.좀 더 성숙한 골프 하고 싶다.”
▶내년 첫 대회는
“3월에 시작하는 싱가포르 대회나 애리조나 대회를 생각 중이다.”
▶팬들에게 연말,새해 인사를 해달라.
“항상 고맙다. 마무리 잘 하셨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여자골프 많이 사랑해 달라.”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사진제공=젝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