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나라다운 나라' 는 국가를 억제할 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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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민경국 지음 / 북앤피플 / 576쪽│2만8000원
민경국 지음 / 북앤피플 / 576쪽│2만8000원
개인은 부득이 국가 속에서만 존재한다. 주민등록부에 없는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며, 사망 신고를 하지 않은 젊었던 고인에게는 여전히 예비군 훈련통지서가 날아온다. 유사 이래 국가에 시달려 온 개인은 무정부주의까지 고안했으나 그게 답은 아니다. ‘무정부’를 실현해 주겠다며 또 다른 국가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국가 아래 살아야 한다면 국가가 사라지기를 기대하기보다 도덕적 정당성을 갖춘 바른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른길이다.
좌파 이론가들은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다뤄왔다. 몇 년 전 유시민 작가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국가론을 출간했다. 이에 비해 자유주의 학자들은 국가에 맞서 추구해야 할 ‘개인’의 자유 탐구에 치중했다. 그러나 고전적 자유주의의 본질은 실은 개인에게 요구되는 도덕 철학이라기보다 그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 주체인 국가에 대한 규범적 요건들로 해석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란 결국 국가다운 국가 속에서만 타당하기 때문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을 새로 내놓은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자유주의에 남긴 족적은 대단하다. 특히 하이에크의 예지는 그에 의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프리드리히 민 하이경국’으로 뿌리내렸다고 평가받을 정도다. 이번 책은 그가 개인을 넘어 국가를 정면으로 다룬 자유주의 국가론을 담았다는 의미가 있다.
저자는 이 ‘국가다운 국가’를 세 가지 규범적 국면에서 파악한다. ‘무엇을 위해 지배해야 하는가’ ‘어떻게 지배해야 하는가’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다. 이 답을 고전적 자유주의의 지혜로부터 발굴한다. 왜냐하면 저자가 언급하듯 자유주의자들이 보여준 논구의 엄정함, 심오함, 원대함 그리고 적실성(relevance)은 그 어떤 패러다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담론의 지평을 확대해 ‘자연권론-합리론-진화론-헌정론’의 네 가지 패러다임으로 자유주의를 구분하고, 대표 이론들을 세 개씩 성찰해 국가다운 국가의 핵심 요건을 추출해냈다. 앞의 세 패러다임은 바람직한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자유, 정의, 올바른 법 및 그 법에 의한 지배 등)를 알려주는 것이며 마지막 헌정주의 패러다임은 이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는 제도와 방법을 알려준다.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학자 12명의 이론을 가장 정확히 요약해준 것만으로도 책은 큰 가치를 지닌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런 자유주의의 위대한 지적 산물을 성찰한 뒤 지금 한국이 국가다운 국가가 되기 위한 다음 요건들을 치밀하게 도출한 점이다. 첫째, 개인의 자유 존중이다. 그것은 평등, 정의 등 여타 모든 가치의 조건이다. 둘째, 법의 지배다. 그 법은 실증주의적 법을 배격하는 정의의 법이다. 셋째,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여야 한다. 이때 정의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특정한 정의의 가치를 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의에 어긋난 것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규정돼야 한다. 넷째, 우리에게 본능으로 남아 있는 ‘사회주의 도덕’ 대신 자유 시장, 개인, 계약, 자기 책임을 존중하는 ‘자유의 도덕’을 구현하는 국가여야 한다. 다섯째, 헌정주의다. 이때의 헌법은 특정 계파나 집단 이익의 보증서가 돼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국가를 통해(through), 혹은 국가에 의해(by) 어떤 이익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국가 자체를 억제하는 것이 돼야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국가다운 국가는 국가를 충분히 억제하는 헌법체제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촛불군중 지배체제’는 ‘이 나라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만 강변해 줄 뿐이다. 더 중요한 문제, 곧 ‘무엇을 위해, 또 어떻게 지배해야 하는가’는 답하지 못한다. 한국이 직면한 것은 ‘바른 정책이 무엇인가’의 문제를 넘어 ‘도대체 이것이 바른 국가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다. 나라다운 나라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학문, 사회 및 정치 논변에서 이제 핵심 주제가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으레 사이비 과학의 외관을 띠고 나타났던 좌파식 국가론들에 정면으로 맞서며 그 주제를 지극히 진지하고도 정교하게 논증한다. 개인의 자유 역시 바른 국가 속에서만 가능하다면 자유를 갈구하는 개인들은 왜곡된 시대 상황에 대한 개인적 자학을 그만두고 국가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자유주의 국가론’이 따름정리(수학용어·정리에서 직접 파생된 명제)로 요약해주는 또 다른 함의다.
김행범 < 부산대·행정학과 교수 >
좌파 이론가들은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다뤄왔다. 몇 년 전 유시민 작가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국가론을 출간했다. 이에 비해 자유주의 학자들은 국가에 맞서 추구해야 할 ‘개인’의 자유 탐구에 치중했다. 그러나 고전적 자유주의의 본질은 실은 개인에게 요구되는 도덕 철학이라기보다 그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 주체인 국가에 대한 규범적 요건들로 해석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란 결국 국가다운 국가 속에서만 타당하기 때문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을 새로 내놓은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자유주의에 남긴 족적은 대단하다. 특히 하이에크의 예지는 그에 의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프리드리히 민 하이경국’으로 뿌리내렸다고 평가받을 정도다. 이번 책은 그가 개인을 넘어 국가를 정면으로 다룬 자유주의 국가론을 담았다는 의미가 있다.
저자는 이 ‘국가다운 국가’를 세 가지 규범적 국면에서 파악한다. ‘무엇을 위해 지배해야 하는가’ ‘어떻게 지배해야 하는가’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다. 이 답을 고전적 자유주의의 지혜로부터 발굴한다. 왜냐하면 저자가 언급하듯 자유주의자들이 보여준 논구의 엄정함, 심오함, 원대함 그리고 적실성(relevance)은 그 어떤 패러다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담론의 지평을 확대해 ‘자연권론-합리론-진화론-헌정론’의 네 가지 패러다임으로 자유주의를 구분하고, 대표 이론들을 세 개씩 성찰해 국가다운 국가의 핵심 요건을 추출해냈다. 앞의 세 패러다임은 바람직한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자유, 정의, 올바른 법 및 그 법에 의한 지배 등)를 알려주는 것이며 마지막 헌정주의 패러다임은 이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는 제도와 방법을 알려준다.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학자 12명의 이론을 가장 정확히 요약해준 것만으로도 책은 큰 가치를 지닌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런 자유주의의 위대한 지적 산물을 성찰한 뒤 지금 한국이 국가다운 국가가 되기 위한 다음 요건들을 치밀하게 도출한 점이다. 첫째, 개인의 자유 존중이다. 그것은 평등, 정의 등 여타 모든 가치의 조건이다. 둘째, 법의 지배다. 그 법은 실증주의적 법을 배격하는 정의의 법이다. 셋째,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여야 한다. 이때 정의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특정한 정의의 가치를 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의에 어긋난 것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규정돼야 한다. 넷째, 우리에게 본능으로 남아 있는 ‘사회주의 도덕’ 대신 자유 시장, 개인, 계약, 자기 책임을 존중하는 ‘자유의 도덕’을 구현하는 국가여야 한다. 다섯째, 헌정주의다. 이때의 헌법은 특정 계파나 집단 이익의 보증서가 돼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국가를 통해(through), 혹은 국가에 의해(by) 어떤 이익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국가 자체를 억제하는 것이 돼야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국가다운 국가는 국가를 충분히 억제하는 헌법체제를 통해 구현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촛불군중 지배체제’는 ‘이 나라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만 강변해 줄 뿐이다. 더 중요한 문제, 곧 ‘무엇을 위해, 또 어떻게 지배해야 하는가’는 답하지 못한다. 한국이 직면한 것은 ‘바른 정책이 무엇인가’의 문제를 넘어 ‘도대체 이것이 바른 국가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다. 나라다운 나라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학문, 사회 및 정치 논변에서 이제 핵심 주제가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으레 사이비 과학의 외관을 띠고 나타났던 좌파식 국가론들에 정면으로 맞서며 그 주제를 지극히 진지하고도 정교하게 논증한다. 개인의 자유 역시 바른 국가 속에서만 가능하다면 자유를 갈구하는 개인들은 왜곡된 시대 상황에 대한 개인적 자학을 그만두고 국가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자유주의 국가론’이 따름정리(수학용어·정리에서 직접 파생된 명제)로 요약해주는 또 다른 함의다.
김행범 < 부산대·행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