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구간 시속 40㎞ 저속운행 > 10일 운행을 재개한 강릉선 KTX 열차가 지난 8일 탈선사고가 난 강원 강릉시 운산동 현장을 평소의 절반 수준인 시속 40㎞로 지나가고 있다. 열차 주변엔 응급복구 작업에 사용한 콘크리트 침목이 흩어져 있다.  /연합뉴스
< 사고 구간 시속 40㎞ 저속운행 > 10일 운행을 재개한 강릉선 KTX 열차가 지난 8일 탈선사고가 난 강원 강릉시 운산동 현장을 평소의 절반 수준인 시속 40㎞로 지나가고 있다. 열차 주변엔 응급복구 작업에 사용한 콘크리트 침목이 흩어져 있다. /연합뉴스
잇단 철도사고에 대해 코레일 내부에서는 정비 인력·예산 축소, 철로 건설과 유지·보수의 분리 등이 원인이란 진단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승객의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닌지 살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 철도 전문가들은 계속되는 낙하산 인사, 이를 악용한 노조의 기득권 관철 등으로 조직 기강이 해이해지고 경영 비효율이 극대화되면서 인재(人災)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레일 신규 임원 3분의 1이 '캠코더'…"국토부가 눈치볼 지경"
정권마다 내려온 ‘낙하산’

낙하산 사장의 임명은 관리·감독 체계 약화를 불렀다고 철도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오영식 사장은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제17·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다. 오 사장은 사석에서 주무부처 국토부 수장인 김현미 장관을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함을 과시해왔다. 오 사장과 김 장관은 함께 학생운동을 했고, 야당 생활을 같이한 동지 사이로 잘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관계자는 “오 사장이 현안과 관련해 장관과 직접 전화로 대화하는 상황에서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국토부 철도국이 코레일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섣불리 올리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국토부 철도국의 한 직원은 “코레일이 이전보다 힘이 세져 각종 자료를 요청해도 차일피일 미루거나 주지 않는 일이 잦다”고 전했다.

국가 철도 운영을 총괄하는 코레일 사장은 역대 정권마다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는 대표적인 자리다. 2대 이철 사장은 국회의원 출신이고, 4대 허준영 사장은 경찰청장 출신이다. 5대 정창영 사장은 감사원 사무총장을 지낸 공무원 출신이다.

코레일 계열사에 ‘캠코더’ 낙하산

사고 구간 시속 40㎞ 저속운행 ♣♣10일 운행을 재개한 강릉선 KTX 열차가 지난 8일 탈선사고가 난 강원 강릉시 운산동 현장을 평소의 절반 수준인 시속 40㎞로 지나가고 있다. 열차 주변엔 응급복구 작업에 사용한 콘크리트 침목이 흩어져 있다.   ♣♣연합뉴스
사고 구간 시속 40㎞ 저속운행 ♣♣10일 운행을 재개한 강릉선 KTX 열차가 지난 8일 탈선사고가 난 강원 강릉시 운산동 현장을 평소의 절반 수준인 시속 40㎞로 지나가고 있다. 열차 주변엔 응급복구 작업에 사용한 콘크리트 침목이 흩어져 있다. ♣♣연합뉴스
낙하산 사장은 전문성 없는 인사를 주요 보직에 앉히며 문제를 키웠다. 바른미래당이 지난 9월 국정감사 때 발표한 ‘문재인 정부 산하기관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에 따르면 코레일 본사 및 계열사 6곳에서 현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임원 37명 중 13명이 캠코더 인사로 분류됐다. 또 철도 분야와 관련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비(非)전문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 본사의 김정근 비상임이사는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노동특보를 지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국장 출신으로 친노동계 성향 인사다. 이충남 비상임이사는 대선캠프에서 부동산정책특별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철도관리 및 시설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산하 공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코레일유통에서는 이덕형·박윤희 비상임이사가 철도·유통 분야와 무관한 인물이다. 강귀섭 코레일네트웍스 대표는 정세균 의원실 보좌관과 경기 부평구청장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철도설비 유지관리업체 코레일테크의 백기태 사외이사는 도료업체 PPG-SSC의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2017년 대선 당시 민주당 울산시당 선거대책본부 노동본부장을 지냈다.

“철도산업 제2의 개혁 나서야”

철도노조는 친노조 성향인 오 사장을 활용했다. 노조는 오 사장 취임 전부터 철도 민영화를 주도한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했다. 오 사장이 취임한 2월6일 코레일은 경영기획본부장 기획조정실장 인재경영실장 비서실장을 보직해임하고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취임 이틀 뒤에는 노조와 파업으로 인한 해고자 복직에 전격 합의했고, 4월 해고자가 일부 복귀했다. 이후 코레일 안팎에선 “오 사장을 업고 코레일이 노조 왕국으로 변신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노조 힘이 강해지면서 회사 전반에서 변화에 대한 대응과 적응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년 동안 KTX 도입 등 철도산업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노조는 기득권 유지에 안주했다는 지적이다. 한 원로 철도전문가는 “코레일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반면 경쟁자로 등장한 수서고속철도(SRT)는 무사고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며 “이번 KTX 탈선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철도산업 제2의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기열/박종필/양길성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