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 인사를 통해 변화를 줄 생각입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48)이 지난달 말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건넨 말이다. “그룹 체질을 바꿔 나가겠다”고도 했다. 그의 말은 보름여 만에 ‘현실’이 됐다. 현대차그룹이 12일 단행한 부회장 및 사장단에 대한 파격적 ‘쇄신 인사’를 통해서다. 정 수석부회장 중심의 ‘친정체제’가 구축됐다는 평가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그룹 의사결정 구조를 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60대 중심의 기존 사장단을 50대 후반의 젊은 경영진으로 바꾸면서 그룹 차원의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50代 경영진 대거 전진배치…정의선의 '뉴 현대차' 가속페달
그룹 부회장 7명→6명

이날 인사에서 가장 큰 파격은 부회장단 인사로 꼽힌다. 정 수석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58)을 제외한 그룹 내 전문경영인 부회장 5명 중 4명이 인사 대상에 올랐다. 연구개발(R&D)부문 사령탑을 맡았던 양웅철(연구개발총괄·64), 권문식(연구개발본부장·64) 부회장은 각각 고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용환(그룹 기획조정·62), 우유철(현대제철·61) 부회장은 현대제철과 현대로템으로 이동했다. 윤여철 부회장(노무·국내생산·66)만 그대로 남았다. 노무 업무의 특수성과 전문성 등을 감안했다는 후문이다.

‘하이라이트’는 정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용환 부회장이 그룹 기획조정 업무에서 손을 떼고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는 2010년 부회장으로 승진해 구매 및 비서실, 감사실, 법무실 등 그룹 전반의 살림을 도맡아왔다. 정 회장이 외부 행사에 갈 때마다 “김용환 부회장 어디 있냐”고 찾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현대차그룹은 김 부회장이 담당했던 그룹 기획조정담당 부회장직을 당분간 두지 않기로 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굵직한 그룹 살림을 직접 챙기고, 김걸 기획조정1실장(사장·53) 등 사장단에 실무를 맡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룹 고위관계자는 “이번 인사로 정 수석부회장 중심의 의사결정 체제를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대외업무를 책임지며 그룹의 ‘얼굴’ 역할을 해온 정진행 사장(63)은 부회장으로 승진, 현대건설로 옮겼다. 그는 2011년부터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을 맡아 각종 대외 현안을 무난하게 챙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그룹 내 부회장단은 정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7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사장단 5명 경영일선 퇴진

현대차그룹은 여수동 현대차 기획조정2실장(부사장·57) 등 5명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여 사장은 현대다이모스·현대파워텍 합병법인의 대표를 맡는다. 기획조정2실장은 전상태 경영기획1팀장(전무)이 물려받았다.

황유노 현대캐피탈 코퍼레이트센터 부문장(60)과 지영조 현대차 전략기술본부장(59), 서보신 현대차 생산품질담당(61) 등도 각각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공영운 그룹 홍보실장(부사장·54)도 사장에 올라 전략기획담당 업무를 함께 맡는다. 박정국 현대케피코 사장(61)은 그룹 내 최대 자동차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사장이 됐다. 문대흥 현대파워텍 사장(58)은 현대오트론 사장으로,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차량성능담당 사장(61)은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이동했다.

여승동 현대차 생산품질담당 사장(63)과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63), 조원장 현대다이모스 사장(64), 강학서 현대제철 사장(63), 김승탁 현대로템 사장(61) 등 5명은 각각 고문으로 위촉됐다.

이번 인사를 통해 그룹 및 주요 계열사 사장단이 한층 젊어졌다는 분석이다. 60대 경영진이 상당수 물러나고, 50대 중후반 사장들이 승진·이동하면서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주로 금요일을 골라 경영진에 대한 수시 인사를 하던 현대차그룹의 오랜 ‘관행’이 깨진 점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의 부회장 및 사장단 인사는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1~2명씩 소규모로 인사를 했다. 부사장급 이하 임원 승진 인사만 매년 말에 정기적으로 해왔다.

장창민/박종관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