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신인프라 재난대응책 재정비해야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을 지향하는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 전파가 지난 1일 국내 이동통신 3사에 의해 세계 최초로 송출됐다. 그 1주일 전인 지난달 24일에는 KT 아현지사의 광섬유가 불에 타 서울 북부지역 등에 유무선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2003년 인터넷 대란 이후 오랜만에 발생한 이 인터넷 사고는 우리 생활이 얼마나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는지, 인터넷이란 인프라의 신뢰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했다.

인터넷망은 생각만큼 신뢰할 수 있는 인프라가 아니다. 미국 전역을 관할하는 MCI 월드콤 기간망과 AT&T 망은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1998년에 한 달 시차를 두고 두절된 적이 있다. MCI 월드콤은 이를 복구하는 데 열흘이 걸렸고 그동안 미국 전역의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했다. 또 전력 불통으로 발생한 2007년 샌프란시스코 데이터센터 불통, 2018년 아마존 클라우드센터 불통 등 크고 작은 인터넷 장애는 인터넷망의 신뢰도가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내에서도 2003년 인터넷 대란, 2009년과 2013년의 디도스(DDoS) 공격으로 인한 인터넷 서버 접속 장애, 올해의 유튜브 접속 장애 등 인터넷 장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1960년대 인터넷의 출발은 더 신뢰성 있는 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컬하다.

전화망은 중앙집중식 구조이기에 중앙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 망이 두절된다. 반면 인터넷은 분산망이어서 한쪽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쪽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01년 미국 9·11 테러 발생 시 뉴욕 주변 지역의 인터넷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인터넷망의 피라미드 계층 구조는 인터넷망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인터넷망의 가장 아래층인 물리계층은 이번에 불에 탄 아현지사의 광섬유 같은 하드웨어와 연관된 층이다. 가장 위층은 서비스와 관련된 층으로, 카카오톡과 같은 앱(응용프로그램)과 연관돼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TCP/IP(컴퓨터의 인터넷 연결 시스템) 같은 네트워크와 연관된 층이 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통신이 두절될 수 있기 때문에 망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위층은 아래층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아래층에서 문제가 발생할수록 그 여파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KT 아현지사 사태는 가장 아래층인 물리계층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네트워크 계층에서 문제가 발생한 2003년의 1·25 인터넷 대란 때보다 여파가 크고 복구도 오래 걸리는 것이다.

AT&T는 1998년 통신두절 사태 1년 뒤 벨연구소를 중심으로 프로젝트팀을 구성, 1년 넘는 기간에 걸쳐 네트워크 복구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필자도 참가했는데 전국적인 망이 두절되는 경우 복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실무자, 공학자 등 관계자들이 연구개발(R&D)과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복구 계획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뉴얼을 완성했다.

우리도 국내 통신인프라의 재난 대응책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A·B·C·D 분류체계’는 각 지사의 중요도 재평가를 통해 합리적인 기준으로 재분류해야 할 것이다. 재분류한 지사별로 다양한 가상 시나리오와 피해 복구 매뉴얼을 재정비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또 정부는 통신망 재난 대비책에 관한 예산 지원 등을 통해 통신망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침 행정안전부는 1조7000억원을 들여 2020년까지 재난안전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 재난안전망은 단순히 각 부처를 연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우리 통신 인프라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는 망이 되도록 해야 한다.

네트워크가 끊어지면 5G가 지향하는 초고속·초연결·초저지연은 사상누각임을 이번 KT 아현지사 사태는 보여준다.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