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조항 신설 후 첫 적용…법원 "관행 치부하는 왜곡된 인식 때문"
청와대의 부당한 언론간섭에 제동…방송법 31년 만에 첫 유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현(60·무소속) 의원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면서 제정된 지 31년이 되도록 처벌 전례가 없던 방송법을 처음 적용했다.

특히 법원은 이 판결을 내리면서 오랜 기간 정치 권력이 방송 보도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던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선언적 의미를 부여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오연수 판사는 14일 방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의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의원에게 적용된 법률조항은 1987년에 마련된 방송법 4조 2항이다.

이에 따르면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법원은 이 의원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이 조항을 제정한 취지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이며, 언론 중에서도 방송은 국민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했다.

이어 "특정 권력이 방송 편성과 내용에 개입해 자신들의 주장과 경향성을 대중에 전달하고 여론화하는 일이 빈번하다면 국민 의사가 왜곡되고 사회 불신과 갈등이 증폭돼 민주주의 존립과 발전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외부세력 특히 국가권력의 간섭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그동안 이 조항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없었던 원인을 암암리에 자리 잡은 권력의 관행에서 찾았다.

재판부는 "아무도 이를 위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가권력이 언제든지 쉽게 방송관계자를 접촉해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편성에 영향을 미쳐왔음에도, 이를 관행 정도로 치부하거나 나아가 본연의 업무수행으로 여기는 왜곡된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아직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처벌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관행이란 이름으로 경각심 없이 행사된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언론의 간섭이 더는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다만 이 의원이 첫 적용 사례란 점이 그에게 실형을 선고하기 어려운 이유라고도 밝혔다.

재판부는 "이제껏 관행적으로 이런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방송법을 사문화해선 안 되고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근거가 됨과 동시에 모순적으로 첫 적용 대상인 피고인에게 실형을 부과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행으로 착각한 것이기는 하나, 관행적 행위가 존재해 피고인이 막연히 정상적인 공보 활동 범주 내라고 생각하거나 가벌성에 대해 뚜렷한 인식을 못 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