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예금자 돈으로 생색내겠다는 예보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3일 ‘사회공헌한 금융사에 보험료 깎아주겠다는 예보’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도하자 예금보험공사는 즉각 해명자료를 냈다. ‘현재로서는 금융회사에 부과되는 차등보험료에 사회적 가치 요소를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는 내용이었다.

본지는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위성백 예보 사장이 밝힌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썼다. 위 사장은 “금융회사들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수익성을 희생하면 보험료율을 깎아주는 등 차등평가에 사회공헌 활동 등의 항목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예보의 해명은 위 사장 발언을 불과 몇 시간 만에 부인한 것이다.

예보가 해명자료를 낸 이유는 뭘까. 예보 관계자는 “차등평가에 사회적 가치 항목 반영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모호한 설명을 덧붙였다. 예보는 이에 앞서 금융소비자들이 착각해 잘못 송금한 돈의 80%를 책임지겠다고 발표했다. 또 17일엔 협동조합을 지원하겠다는 자료도 냈다.

하지만 예보가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가 한국 사회가 예보에 부여한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예금자보호법 1조엔 예보의 기능을 ‘예금보험제도 등을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예금자를 보호하고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예보는 은행 보험사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매년 예금 잔액 대비 0.08~0.4%를 보험료로 받고 있다. 금융회사가 파산하거나 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예금자가 맡긴 돈(원리금)을 5000만원까지 지급해 주기 위해서다. 또 검사를 통해 금융회사 건전성을 따진다. 예금자에게 대신 지급한 돈을 금융회사로부터 찾아내기 위해 소송도 벌인다. 예금자 보호를 위한 예보의 본업이다. 지난 20년간 예보는 이런 일들을 잘 수행해왔다.

예보가 느닷없이 생각해 낸 각종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사업의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까. 정부가 별도로 예산을 편성해 주지 않는 이상 예금자 돈일 수밖에 없다. 금융계는 예보의 구상을 예금자 돈으로 생색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