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올해 롯데에서 대대적인 쇄신 인사가 나올 것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경영에 복귀하자 재계에선 이런 말이 돌았다. 8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며 107권의 책을 읽었다는 신 회장이 새 사업 구상을 실행에 옮기려면 ‘젊은 피’가 필요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신 회장이 2015년부터 경영권 분쟁과 경영비리 수사를 받아 사실상 인사를 제대로 못한 탓도 있었다. 올 연말 그룹 인사는 그가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한 첫 인사로 평가된다. 신 회장은 부회장급인 비즈니스유닛(BU)장의 절반인 두 명을 교체하며 이를 실행에 옮겼다.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사업 수장 교체

이번 인사의 특징은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곳의 수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화학부문이 대표적이다. 롯데는 화학부문에 그룹의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내년 초 미국 루이지애나에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대규모 에틸렌 생산공장을 완공한다. 투자 규모가 3조원을 넘는다. 또 인도네시아에선 4조원을 투입해 복합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기공식을 최근 열었다.

신 회장은 이 같은 대규모 투자 사업을 이끌 인사로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를 택해 화학 BU장으로 승격시켜 진두지휘하게 했다. 또 그룹 내 주요 인수합병(M&A)을 도맡았던 임병연 롯데지주 가치경영실장을 롯데케미칼 대표로 올려보냈다. 임 실장의 발탁은 다소 파격적이란 평가까지 나온다. 롯데케미칼에 입사한 임 실장은 그룹 정책본부 국제실과 미래전략센터장, 비전전략실장 등을 지내며 주로 그룹에서 주요 경영 안건을 챙겼다. 그는 이번에 처음 계열사 대표가 됐다. 롯데케미칼은 연매출 16조원에 이르는 그룹 내 최대 계열사다.

식품부문도 롯데가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하고 있는 분야다. 롯데는 중국 내 식품 공장을 구조조정하는 대신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신흥국인 동남아의 식품부문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격적인 M&A에 나서고 있다. 올 10월 미얀마 제빵업체 메이슨을 인수했고, 작년에는 인도 아이스크림업체 하브모어도 사들였다. 롯데푸드는 국내에서 가전간편식(HMR) 공장 증설에 1000억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했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를 주도한 인물이 이영호 롯데푸드 대표다. 이 대표는 신임 식품 BU장을 맡아 앞으로 더욱 공격적인 식품부문 투자를 이끌 전망이다.

롯데월드타워 설립을 위해 마련된 롯데물산 대표직은 이광영 롯데자산개발 대표가 겸임한다. 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 관리와 마케팅, 홍보 업무 등만 하고 있다. 롯데자산개발과 롯데물산은 합병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자산개발은 롯데의 쇼핑몰 사업을 맡고 있는 개발회사다.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신도시 개발 사업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단독] 롯데 계열사 대표 대거 교체…케미칼 임병연·마트 문영표·면세점 이갑
유통부문도 수장 교체

경영 실적이 악화된 유통부문의 대표도 상당수 변화가 있었다. 롯데면세점이 그렇다. 장선욱 대표를 대신해 이갑 대홍기획 대표가 새 수장이 됐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25억원으로 급감했다. 연 3000억원 안팎의 이익을 냈던 면세점이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큰 타격을 입은 탓이다. 올 들어 중국 보따리상(따이궁) 덕분에 실적이 회복되고 있지만 예년만큼의 이익은 못 내고 있다. 신 회장이 “서비스부문에서 한국의 삼성전자로 키우겠다”고까지 한 면세점의 실적 악화는 롯데에 뼈아팠다.

호텔롯데를 상장시켜 지배구조 재편을 마무리 지으려 했던 당초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은 호텔롯데의 주력 사업이다. 호텔롯데는 롯데물산 롯데건설 등 계열사 지분을 다수 갖고 있으나 일본 주주들이 지분 99%를 보유해 신 회장이 아직 온전히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사드 보복이란 특수한 상황이 있긴 했지만, 호텔롯데 상장이 연기된 것에 대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도 이번 인사에서 롯데자이언츠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문영표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가 롯데마트 대표로 이동했다.

롯데마트는 작년 중국 사드 보복의 대표적 피해기업이다. 100여 개에 달하던 중국 내 롯데마트 점포 문을 중국 정부가 소방점검 등의 명분으로 대부분 닫게 했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롯데마트는 ‘헐값’에 중국 롯데마트 매장을 전부 내놨다. 수천억원의 평가 손실이 발생했다. 마트 사업부가 속한 롯데쇼핑 전체 실적을 끌어내렸다. 김 대표는 최근까지도 올 들어 매장을 대대적으로 바꾸고, 3시간 배송을 시작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안재광/류시훈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