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고시원 화재로 7명 사망·11명 부상…피해자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
생존자들 다시 다른 고시원으로…주인은 손해배상하고 건물 비워줄 처지
소방 관련 법·제도 미비가 피해 키워…"인간적인 주거환경 마련이 급선무"
[2018사건 그 후] ⑦종로 고시원 참사…허망하게 스러진 고된 삶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눈을 감아도 자꾸 떠오르고 무슨 소리만 나도 무서워 밤에 뛰쳐나갈 준비를 해요.

"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생존자인 주인 구모(68)씨는 18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 약 40일이 지났지만 마치 방금 일어난 것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고 지인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는 구씨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최근 건물주가 화재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고 건물을 비워달라는 통지서를 보냈기 때문이다.

구씨는 "벌어놓은 돈도 없고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앞이 막막하고 뭐부터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며 흐느꼈다.

지난달 9일 오전 5시께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 국일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고시원 거주자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

거주자는 대부분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였다.

희생자 가운데 조모(35)씨는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8년 전 서울로 올라온 조씨는 '막노동'을 하다 우체국 비정규직이 됐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생활비를 아끼려 고시원에서 생활하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고도 전형적인 인재였다.

허술한 법과 제도가 피해를 키웠다.

불이 난 고시원 건물은 1982년 12월 건축허가를, 1983년 8월 사용승인을 각각 받았으나 건축 대장에는 고시원이 아닌 '기타 사무소'로 등록됐다.

이 때문에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서 빠졌다.

또 소방시설법 시행령이나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규정하는 스프링클러 설치대상에서도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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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시가 지원하는 스프링클러 무료 설치대상으로 선정됐지만, 건물주가 설치에 동의하지 않아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규정상 시의 지원을 받게 될 경우 고시원은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울시는 내년 70여개 노후고시원에 스프링클러 무료 설치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시는 무상 지원에 따른 임대료 동결 기간을 3년 등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일고시원 참사가 일어난 뒤 이처럼 반복되는 재난을 막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시설 확충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은 재난이 닥칠 경우 빈곤층이 겪는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재앙이 닥칠 수밖에 없는지 근본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도 "화재 예방을 위한 소방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주거환경을 갖추는 것이 더 근본적으로 거주자의 안전을 담보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담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공간에 살아야 한다'는 최소 주거 기준을 세우고 법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며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늘릴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국일고시원 화재는 여전히 조사가 진행 중이다.

고시원 화재가 시작된 301호 거주자 A씨(72)에 대해 경찰이 중실화 및 중과실치사상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아직 신병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A씨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서다.

영장 집행을 미룬 경찰은 병원을 방문해 그를 상대로 불이 난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앞서 조사에서 사고 당일 새벽 전기난로를 켜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방에 불이 나 있었다며 이불로 덮어 끄려다가 오히려 더 크게 번져 탈출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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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