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직무' 아닌 '직위'만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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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논란 속 기관장 맡았다가
문제 터지면 도망치는 '파렴치' 속출
업무에 책임지는 '직무' 역량 없이
누리고 즐기는 '직위'로 봐선 안 돼
'논공행상' 앞서 '적임' 여부를
공직임명 기준으로 삼아야"
이학영 논설실장
문제 터지면 도망치는 '파렴치' 속출
업무에 책임지는 '직무' 역량 없이
누리고 즐기는 '직위'로 봐선 안 돼
'논공행상' 앞서 '적임' 여부를
공직임명 기준으로 삼아야"
이학영 논설실장
정권 수립에 공헌한 사람을 주요 공직에 임명하는 관행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1800년대 중반에 ‘엽관(獵官·관직 사냥, spoils)’이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다. 이 시기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윌리엄 트위드(뉴욕주)가 대놓고 말한 “전리품은 승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에서 ‘엽관제도’라는 용어가 유래했다.
당시 미국 정치권이 ‘공직 사냥’을 당당하게 제도화한 것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공직 임명에 특정한 실적이나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음으로써 ‘공직의 특권화’를 배제하고, 충성도 높은 사람들을 기용함에 따라 정권이 추구하는 정책에 추진력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다음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으면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되면서 적지 않은 문제가 불거졌다. 전문성 부족 논란이 제기됐고, 정치적 거래 덕분에 자리를 꿰찬 이들의 ‘본전 회수’ 부정부패도 끊이지 않았다. 미국 정계에서 회전문(swing door)과 낙하산(parachute), 일본에선 아마쿠다리(天降り: 위에서 내리꽂는 인사) 등 엽관 인사를 비판하는 표현이 탄생한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정권마다 ‘부적격 인사 낙하산’ 논란이 빚어져 왔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일부 인사의 행실은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11일 KTX 강릉선 탈선 사고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한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의 처신이 특히 그랬다. 그는 강릉사고 외에도 최근 열차사고가 빈발한 데 대해 “(안전을 지키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사죄의 뜻과 함께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그러고서 한 것이 사퇴 선언에 이은 잠적이었다. 그날 국회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잇단 철도사고에 대한 현안 질의를 위한 회의를 소집했는데 오씨는 사표를 냈다는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다. 제대로 책임을 지려면 사표를 냈더라도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거나, 최소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나가 사고 전말을 상세하게 밝히고 용서를 빌어야 마땅했다.
누가 봐도 책임회피요, 도피라고 할 행동을 하면서 ‘책임 통감’을 운운한 것은 대한민국을 그만큼 만만하게 봐서였을까. ‘모든 책임을 지고…’라는 말이나 하지 말았어야지, 무책임을 넘어 비겁하게 처신했다는 꾸지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식으로 처신한 사람은 오 전 사장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말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장도 닮은꼴 행태를 보였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결격사유로 제기된 ‘연구비 의혹’을 해명해야 할 상황이 닥치자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국감을 피했다. 누릴 것을 다 누리다가 책임지고 해명해야 할 일 앞에서 도망쳐버리는 행동은 그 자체로 배임이요 직무유기다.
공공기관의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직무 수행’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직위 장악’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 ‘직무’에는 책임(직책)이, ‘직위’에는 권한(끗발)이 먼저 연상된다. 공직자들이 ‘직무’라는 본질보다 ‘직위’라는 외양에 더 빠져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코레일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단적으로 보여줬다. 기관장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조직 내 부정과 비리, 회계 왜곡을 감시하고 적발해야 할 상임감사 자리에 ‘논공행상(論功行賞)’ 인사를 앉힘에 따라 일어나는 감사 부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직원들이 10년 넘게 시간외 근무표를 조작해 1000억원 넘는 특별수당을 챙겼는데도 내부감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한전KPS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4개월여 만에 박근혜 정부 2년보다 더 많은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적폐 청산’을 강조하는 정부이기에 이런 비판에 귀를 막아선 더욱 곤란하다. 국가사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 책임자를 ‘적임(適任)’이 아니라 ‘행상(行賞)’의 관점에서 임명하는 것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임기가 남아 있고, 멀쩡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전(前)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만으로 퇴진시키는 일도 멈춰야 한다. 공직을 ‘직위’가 아니라 ‘직무’로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haky@hankyung.com
당시 미국 정치권이 ‘공직 사냥’을 당당하게 제도화한 것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공직 임명에 특정한 실적이나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음으로써 ‘공직의 특권화’를 배제하고, 충성도 높은 사람들을 기용함에 따라 정권이 추구하는 정책에 추진력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다음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으면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되면서 적지 않은 문제가 불거졌다. 전문성 부족 논란이 제기됐고, 정치적 거래 덕분에 자리를 꿰찬 이들의 ‘본전 회수’ 부정부패도 끊이지 않았다. 미국 정계에서 회전문(swing door)과 낙하산(parachute), 일본에선 아마쿠다리(天降り: 위에서 내리꽂는 인사) 등 엽관 인사를 비판하는 표현이 탄생한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정권마다 ‘부적격 인사 낙하산’ 논란이 빚어져 왔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일부 인사의 행실은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11일 KTX 강릉선 탈선 사고에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한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의 처신이 특히 그랬다. 그는 강릉사고 외에도 최근 열차사고가 빈발한 데 대해 “(안전을 지키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사죄의 뜻과 함께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그러고서 한 것이 사퇴 선언에 이은 잠적이었다. 그날 국회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잇단 철도사고에 대한 현안 질의를 위한 회의를 소집했는데 오씨는 사표를 냈다는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다. 제대로 책임을 지려면 사표를 냈더라도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거나, 최소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나가 사고 전말을 상세하게 밝히고 용서를 빌어야 마땅했다.
누가 봐도 책임회피요, 도피라고 할 행동을 하면서 ‘책임 통감’을 운운한 것은 대한민국을 그만큼 만만하게 봐서였을까. ‘모든 책임을 지고…’라는 말이나 하지 말았어야지, 무책임을 넘어 비겁하게 처신했다는 꾸지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식으로 처신한 사람은 오 전 사장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말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장도 닮은꼴 행태를 보였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결격사유로 제기된 ‘연구비 의혹’을 해명해야 할 상황이 닥치자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국감을 피했다. 누릴 것을 다 누리다가 책임지고 해명해야 할 일 앞에서 도망쳐버리는 행동은 그 자체로 배임이요 직무유기다.
공공기관의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직무 수행’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직위 장악’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 ‘직무’에는 책임(직책)이, ‘직위’에는 권한(끗발)이 먼저 연상된다. 공직자들이 ‘직무’라는 본질보다 ‘직위’라는 외양에 더 빠져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코레일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단적으로 보여줬다. 기관장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조직 내 부정과 비리, 회계 왜곡을 감시하고 적발해야 할 상임감사 자리에 ‘논공행상(論功行賞)’ 인사를 앉힘에 따라 일어나는 감사 부실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직원들이 10년 넘게 시간외 근무표를 조작해 1000억원 넘는 특별수당을 챙겼는데도 내부감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한전KPS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4개월여 만에 박근혜 정부 2년보다 더 많은 낙하산 인사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적폐 청산’을 강조하는 정부이기에 이런 비판에 귀를 막아선 더욱 곤란하다. 국가사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 책임자를 ‘적임(適任)’이 아니라 ‘행상(行賞)’의 관점에서 임명하는 것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다. 임기가 남아 있고, 멀쩡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전(前)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만으로 퇴진시키는 일도 멈춰야 한다. 공직을 ‘직위’가 아니라 ‘직무’로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