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정수석 때 만든 특감반…문재인 정부 도덕성 상처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 민정수석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첫 민정수석을 맡은 지 1년 뒤 시민사회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10개월도 안 돼 민정수석으로 돌아왔다. 한 정권에서 ‘사정의 칼’을 두 번이나 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누구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잘 알고 있을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실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적폐 청산을 외치던 이번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상처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일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는 김태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감반원은 2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그은 청와대를 향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상부 지시나 묵시적 승인이 있었기 때문에 (첩보 보고서가) 작성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19일 자유한국당이 공개한 특정 언론·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한 첩보 보고서가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상사의 ‘오케이’ 사인을 받고 작성된 문건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청와대도 즉각 대응했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김태우 직원이 지라시 수준의 첩보를 텔레그램을 통해 특감반장에게 보고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를 받아 본 특감반장이 이런 것들을 보고하지 말라고 했지만 김태우 직원이 ‘재미있지 않냐’며 넘겼다”고 했다.

6급 수사관의 일방적인 폭로에 맞선 민정수석실과 국민소통수석실의 집단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 전 수사관의 일탈을 의도적으로 묵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박 비서관의 해명 역시 자칫 민간인 사찰로 비칠 수 있는 첩보들을 방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전 수사관이 ‘묵시적 승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청와대는 각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내심 난처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부처를 찾아가 내년 업무계획을 보고받는 것은 문재인 정부 3년 차를 앞두고 처음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김 전 수사관의 진실 공방이 연일 정치권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가고 있다. 민정수석실과 특감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조국 민정수석을 해임하라’ 등의 청원까지 등장한 상태다.

논란의 중심이 된 ‘특감반’을 만든 장본인이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이다 보니 그 여파가 더욱 크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당시 노 대통령은 취임 후 고위공직자 비위 첩보 수집을 위한 조직 신설을 주문했고 ‘문재인 수석’이 특감반을 만들었다. 그 후 15년이 흘러 특감반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때다.

문 대통령은 2005년 두 번째 민정수석을 맡으며 민정수석실 명칭을 바꾸고 기능과 역할을 축소하는 ‘작은 민정’을 강조했다. 탈(脫)권위주의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당시 ‘문재인 수석’은 “인터넷으로 네티즌 여론이 실시간으로 파악되고, 오프라인상의 여론도 전문적인 여론조사 방식에 의해 필요할 때마다 조사돼,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부터 ‘말씀’에 대한 여론 반응에 이르기까지 가감 없이 보고되므로 ‘여론 수렴과 민심동향 파악’을 위한 민정수석실 역할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불필요한 민정수석실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미 13년 전에 밝힌 셈이다.

하지만 10여 년 후 ‘문재인 수석’의 뜻은 이번 정부에서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김 전 수사관이 작성한 개헌 등에 관한 첩보에 대해 “국정 관련 여론 수렴이나 민심 동향 파악이 민정수석실 전체의 업무 영역”이라고 해명한 것만 봐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숙제는 “이상과 현실 간 괴리를 좁히는 일”이라던 한 원로학자의 말이 떠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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