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4위 경제대국인 일본과 독일이 외국인 이민과 체류, 취업 규정을 대폭 완화하고 있다. 두 나라는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 일손 부족이 심화하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일손 부족이 경제 성장의 장애물로 작용하자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에게 취업과 이민 문호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하지만 늘어난 외국인 근로자는 사회 갈등을 키우는 요인도 되고 있다. 이민자 수용 정책을 펴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극우파 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복지 비용이 들지 않는 불법 이민은 저비용 노동력을 공급해 경제에 도움을 주지만, 이를 합법화하면 장기적으로 사회 갈등의 요소가 된다”며 ‘이민의 역설’을 설명한 바 있다.

日, 진통 끝에 '이민국' 물꼬

생산인구 감소·고령화 심화로 2030년 일손부족 644만명 예상
아베, 지지율 하락에도 강행 추진…대책 지시 10개월 만에 일사천리
단순직 대대적 개방…영주권도


지난 8일 새벽 일본 참의원(상원) 법무위원회에선 거센 몸싸움 끝에 출입국관리법개정안이 통과됐다.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 문호를 크게 확대한 게 주된 내용이다. “사실상 이민국가를 선언하는 법안”이라는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자민당 등 여권은 2019년부터 새 법률을 적용하기 위해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1주일가량 뒤에 발표된 일본 주요 언론들의 여론조사에선 무리수를 둔 법안 처리 영향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4~7%포인트가량 떨어졌다. 이처럼 아베 정부가 큰 정치적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출입국관리법을 통과시킨 것은 ‘이민국가’가 되지 않고서는 만연한 일손 부족을 타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적용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특정기능 1호’ ‘특정기능 2호’라는 새로운 비자를 도입해 단순노동직을 중심으로 외국인 근로자 채용을 손쉽게 했다. 내년 4월부터 5년간 14개 업종에서 최대 34만5150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인다는 계획이다.
일손 부족에 '외국인력 수혈' 고육책…'이민 대국'으로 가는 日·獨
일본은 그동안 유학생과 기능실습생 등을 통해 127만 명(지난 10월 기준)의 외국인을 받아들였다. 한국보다 인구가 2.3배 많은데도 한국(134만 명)보다 적은 수의 외국인 노동력을 수용해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새로운 비자 발급 조항을 신설하면서 적어도 단순 노무직에서는 큰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특정기능 1호는 고령자 간병이나 농업, 건설, 빌딩 청소 등 일손 부족이 심각한 업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단순 노동을 하는 특정기능 1호 비자 외국인에게는 최장 5년간 일본 체류를 허용한다. 다만 업무상 필요한 수준의 회화가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일본어 능력시험과 업종별 기능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특정기능 2호 비자는 단순 노동자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숙련된 기술을 갖춘 인력을 대상으로 한다. 건설, 선박, 항공정비, 자동차정비, 숙박 등 5개 업종이 대상이다. 특정기능 2호 비자 취득자는 가족 동반 거주가 가능하고 체류 기간 갱신 횟수에 제한이 없어 10년 거주라는 영주권 취득 요건도 갖출 수 있다. 사실상 이민국가를 선언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기능실습생을 많이 보낸 베트남 필리핀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8개국과 ‘근로자 도입협정’을 맺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일손 부족 문제에 달리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단순 노동 분야 문을 대폭 열기로 결정했다. 올 2월 아베 총리가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일손 부족 해결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10개월 만에 법안이 초고속으로 통과된 배경이다.

일본은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한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어 왔다. 총무성에 따르면 올 12월 현재 일본 전체 인구의 34.2%인 4321만 명이 60세 이상이다. 반면 경제 활동의 중추를 담당하는 20~59세는 6192만 명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20년 뒤에는 4800만 명 수준으로 줄 전망이다.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있지만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 시행 이후 경기가 개선되면서 고용 수요는 늘었다. 여기에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 은퇴로 빈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사람 구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 수 배율)은 1.62배에 달한다.

업무 강도가 세고 수입이 적은 직종이나 지방 중소기업에선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렵다. 일손 부족 현상이 계속 악화돼 2030년에는 일손 부족 규모가 644만 명에 달할 것이란 분석(파솔경제연구소)마저 나오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가에도 이민국가로의 전환에 일본 내부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950년대 독일은 터키 등에서 일정 기간만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상정한 ‘가스트아르바이터(손님 노동자)’를 받아들였지만 결국은 다민족 국가가 됐다”고 보도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獨, 문턱 낮춘 이민법 개정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넘치는 일자리 120만여개 달해
기업들 강력한 요구에 법 개정…직업교육 이수자 등 모두 수용
IT 분야는 학력도 안 보기로


독일 정부는 지난 19일 외국인에 대한 고용 문턱을 낮추고 이주를 쉽게 하는 이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실업률이 1990년 통일 이후 최저로 떨어진 가운데 심각한 구인난에 처한 독일 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특히 120만 개가량 비어 있는 전문직 일자리는 유럽연합(EU) 밖에서도 근로자를 충원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에선 베이비붐 세대(1954~1969년 출생)가 점차 은퇴하면서 이 자리를 채울 젊은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 같은 인구 구조가 향후 경제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과거 독일은 자국민이 취업을 꺼린 일자리 위주로 외국인에게 문호를 열었다. 1960~1970년대 많은 한국인이 독일로 건너가 광부와 간호사로 일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젠 정보기술(IT), 무역, 일반 제조업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외국인 인력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독일 정부는 개정 이민법에서 외국인보다 독일인에게 먼저 근로 기회를 주던 ‘우선권 검토’를 폐지했다. 그동안은 외국인이 일자리를 찾아도 노동부에서 그와 비슷한 자격 조건의 독일인이나 EU 회원국 구직 대기자가 있는지 3개월 동안 검토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또 EU 비회원국 외국인이라도 독일어가 가능하고 생계를 해결할 수 있으면 6개월간 독일에서 구직 활동하며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EU 밖 외국인은 대학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에 한해 독일에서 일자리를 찾으며 머물 수 있었다. 특히 IT 분야처럼 구인난이 심각한 일부 산업군에선 아예 졸업장이나 직업교육 인증서 없이도 실제 업무 경험이 있으면 이주가 가능하도록 했다.

독일이 2004년 제정한 이민법을 다시 손본 이유는 일자리는 넘치는데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독일은 그동안 100개 항이 넘는 복잡한 이민법 규정 때문에 단순 노동직 외에 고급 해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독일 경제계는 숙련된 기술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가 쉽게 독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이민법 완화를 줄곧 주장했다.

독일 실업률(지난 10월 기준)은 3.3%로, 1980년 6월 이후 가장 낮다. 비어 있는 전문 일자리 수도 120만여 개에 달한다. 독일상공회의소가 올해 2만4000개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60%가 “인력 부족이 향후 사업에서 가장 큰 리스크”라고 답했다.

독일경제연구소는 44만 명의 전문 인력이 부족해 연간 300억유로(약 39조원)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노동력 부족이 독일 경제성장을 매년 0.9% 둔화시킨다는 통계도 있다.

독일은 이미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된 초고령 사회다. 독일 통계청은 현재 8280만 명 수준인 총인구가 2060년까지 7650만 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20~65세 미만의 근로 연령 인구는 현재 5000만 명에서 2035년께 4400만 명 수준으로 600만 명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독일은 이민을 받아들여 인구를 늘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지난해 기준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약 9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1.7%다.

하지만 경제적 필요와 별개로 독일인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인식은 확대되고 있다. 라이프치히대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 세 명 중 한 명이 이주민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종 차별적 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은 이 같은 정서를 기반으로 지지세를 키워 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결국 짙어지는 반(反)난민 정서에 리더십이 치명타를 입었다.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과 연정 파트너가 잇따라 부진하자 그는 총리직을 2021년까지만 수행하기로 했다. 독일 정부로선 이주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사회 통합은 과제다.
일손 부족에 '외국인력 수혈' 고육책…'이민 대국'으로 가는 日·獨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