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경매사에 2085억원 유입
서울옥션 1266억, 사상 최대
'김환기 열풍'…낙찰총액의 17%
희귀한 고미술품 거래도 활기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에도 글로벌 미술시장 활황 영향
자산포트폴리오에 그림 편입…내년엔 2500억대 접근 기대
25일 미술계에 따르면 양대 경매회사 서울옥션과 K옥션의 올해 낙찰총액 1985억원(서울옥션 1266억원, K옥션 719억원)에 10개 군소 경매업체의 실적 약 100억원을 더하면 시장에 공개적으로 유입된 자금만 2085억원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서울 청담동 인사동 등 화랑가의 장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유독 경매시장에만 이처럼 자금이 몰리는 것은 미술품이 투자 대상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기존 컬렉터 외에 일반인들까지 투자 대열에 합류해 작품을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 투자자들이 김환기의 1960~1970년대 점묘화 작품뿐 아니라 초기작도 싹쓸이한 게 시장 확대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올해 경매시장은 김환기 열풍 지속, 해외 미술품과 고미술품 관심 증가 등으로 처음 2000억원의 벽을 뚫었다”며 “미국과 유럽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어 일부 투자자들은 그림을 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옥션 낙찰액 1260억원…사상 최대
국내 최대 경매회사 서울옥션에는 올 들어 1260억원대의 자금이 몰려 경매시장의 열기를 이끌었다. 2005년 경매회사 설립 후 처음 낙찰총액 1078억원을 기록한 뒤 3년 만에 다시 1000억원 선을 넘어 1300억원까지 바짝 다가섰다. 특히 홍콩 경매의 매출이 약 663억원을 기록하며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해 해외 시장 매출 비중이 커졌다.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 40%대와 비교하면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여섯 번의 오프라인과 54회 온라인 경매를 한 K옥션에도 700억원대 자금이 몰렸다.
국내외 경매시장에서 김환기의 작품은 가격이 급등하면서 미술품 거래를 사실상 주도했다. 서울옥션과 K옥션은 김환기 작품 60점을 팔아 37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낙찰총액의 17%가 넘는 액수다. 김환기의 빨간색 점화 ‘3-II-72 #220’은 지난 6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3000만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이중섭, 천경자 작품도 신고가를 경신하며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지난 3월 경매에서 이중섭의 ‘소’가 시작가 18억원에서 출발해 치열한 경합 끝에 47억원을 부른 전화 응찰자에게 최종 낙찰됐다. 천경자의 작품 ‘초원 II’도 20억원에 팔려 작가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해외·고미술 약진…온라인 경매 주춤
외국 작가의 작품에도 강한 매수세가 유입됐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여성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작품 ‘콰란타니아(Quarantania)’가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95억원에 팔렸고, 영국 작가 세실리 브라운의 ‘피자마 게임’(56억원),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아타셰 케이스가 있는 정물화’(50억원)도 초고가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고서화, 서예, 공예품, 도자기 등 고미술품 거래 역시 시장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서울옥션의 올해 경매에서는 고미술품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77% 늘어난 184억5000만원어치 팔려나갔다. 5월 K옥션 경매에서는 고미술품 69점 중 61점이 팔려 낙찰률 88%(낙찰총액 17억1670만원)라는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한 점당 1000만원 미만 중저가 미술품 거래는 주춤했다. 서울옥션과 K옥션 온라인 경매에서 거래된 그림 판매액은 작년(250억원)보다 10% 정도 줄어든 223억원에 불과했다.
내년 경매시장 2500억원 전망
시장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유명 화가의 그림에 투자금이 몰릴 것으로 봤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미국과 유럽, 홍콩 미술시장의 호황이 지속되면서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서울 중심의 미술품 수요가 지방 대도시까지 확산되고 있어 내년 시장은 2500억원에 바짝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반면 일부 비관론자들은 “미술 경기와 연관 산업인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그림값이 폭락할 가능성은 작더라도 쉽게 치고 올라갈 분위기는 아니다”며 신중한 투자를 당부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