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화력발전소 하청 근로자의 희생을 계기로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의 국회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키로 합의한 여야는 일부 쟁점을 제외하고 큰 틀에서는 의견 접근을 이뤘다. 하지만 법 통과 시 산업계에 불어닥칠 파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하지도 않은 채 여론에 떠밀려 졸속 처리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개정안의 핵심은 유해·위험한 작업의 도급(하청)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 정당성도 실효성도 부족하다. 원청업체가 그 일을 맡는다고 위험이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하청작업이 원청작업으로 이전될 뿐이다. 오히려 위험한 업무는 원청업체보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쌓은 업체가 더 능숙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도급 자체를 백안시할 게 아니라 전문화와 분업화를 통해 산업계의 ‘밸류 체인’을 육성해 나가는 것이 옳은 방향일 텐데, 정부와 국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한 중견기업인이 “고층빌딩 외벽 청소를 훈련받은 전문인력이 아니라 빌딩 소유주가 직접 고용한 인력이 하면 더 안전할까요?”라고 한탄한 것은 그런 점에서 새겨들을 만하다(한경 12월26일자 A5면). 현장에서 안전 관리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게 중요하지, 도급을 금지한다고 해서 위험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원청 기업과 사업주에게 무한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문제다. 개정안대로라면 사업주가 산안법 및 관련 규정에 있는 583개 의무를 모두 지키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기업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부담을 지우는 과잉 입법이 아닐 수 없다. 도급사업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범위를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근로자의 희생은 안타깝지만, 무엇이 실효적인 대책인지 꼼꼼히 따져보는 게 순서다. 산업 현장에 파급력이 큰 법을 ‘외주화’만 탓하며 날림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 ‘산업안전’의 본질을 호도하며 기업을 억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사고만 나면 금지, 처벌을 남발하는 규제 만능주의가 기업을 피멍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