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대중이 믿는 진실은 선전에 정복당한 지식"
20세기 초만 해도 선전(宣傳·propaganda)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전문 분야로 대접받지 못했다.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사람들에게 사라고 권유하는 게 선전의 대부분이었다. 특별한 경력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선전이라는 용어가 풍기는 이미지도 ‘거짓’ ‘선동’과 같은 부정적인 것 일색이었다.

‘홍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1891~1995)는 선전이 잡부(雜夫)의 업무로 치부되던 1919년 세계 최초의 ‘홍보(PR·public relation)’ 사무실을 미국 뉴욕에 냈다. 그는 삼촌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사회학의 집단심리학을 선전에 접목했다. 그가 1928년 출간한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모사꾼과 장사꾼의 ‘협잡(挾雜)’으로 취급받던 선전을 ‘대중을 설득하는 과학’으로 인식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대중의 자발적 복종 유도

[다시 읽는 명저] "대중이 믿는 진실은 선전에 정복당한 지식"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선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는 게 급선무였다. 버네이스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대신 ‘홍보(PR)’나 ‘공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프로파간다는 로마 교황청이 신대륙에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1622년에 세운 포교성(布敎省·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의 약칭에서 나왔다. 원래 의미는 ‘진실’을 알려 신의 은총으로 인도하는 ‘순수한 작업’을 뜻한다. 홍보 전략이 장기간 지속 가능하려면 대중이 믿는 진실과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제품과 서비스의 질보다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게 더 중요한 이유다.”

버네이스는 정치에서 선전은 대중민주주의를 제어하는 지배계층의 불가피한 ‘설득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들을 표심에 흔들리게 하는 ‘다수의 지배’를 방치할 경우 민주주의가 중우정치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대중의 생각을 의식과 지성을 발휘해 조작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권력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를 형성한다. ‘보이지 않는 정부’의 통치자들은 세상을 인도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우리 사회가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도록 해준다. 진정한 정치 지도자라면 국민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선전기술을 노련하게 구사해 국민을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버네이스는 ‘정치 선전’의 효과는 대중의 자발적 복종 여부에 달려 있다고 봤다. 대중의 생각과 습관을 크게 뒤흔들지 않고 정치 엘리트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어떻게 유도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버네이스 이론을 추종한 것도 이 대목 때문이다.

“대중이 권력을 행사하는 소수의 사람에게 지배받으면서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이 공감하는 다양한 요소를 찾아 하나의 이미지를 연결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작업은 시급하지만 어렵지 않다. 대중이 진실로 믿고 있는 것도 이미 선전에 ‘정복당한 지식(conquered knowledge)’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버네이스는 “경제에서 선전은 욕망의 원천을 창조하는 적극적인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선전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마케팅 기법이 아니라 물건이 팔리는 환경, 즉 ‘집단 습관(group custom)’을 이끌어내는 잘 짜여진 과학이다. 도서를 보급하려면 책 선전에 집중하지 말고 가정에서 책장 갖기 붐을 조성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대중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무정형의 덩어리가 아니다. 대중을 이해하려면 대중의 숨은 동기를 파악해야 하며, 대중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조종받는 대중이 이를 의식하지 못하게 스스로가 새로운 조류에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을 주입해야 한다.”

"선전은 욕망을 창조하는 기술"

《프로파간다》가 소개하는 ‘집단 습관’ 형성을 통한 마케팅도 버네이스의 실제 사례다. 지금은 이런 마케팅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학계가 연구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는 학생을 대상으로 비누 조각대회를 열어 아이보리 비누를 히트시켰다. 여성의 공공장소 흡연을 여성권익 신장의 상징으로 조작하기 위해 ‘자유의 횃불(torches of freedom) 퍼레이드’를 열었다. 홍보 의뢰사 아메리칸토바코의 담배 ‘럭키 스트라이크’를 위한 것이었다. 상당수 미국인의 아침식사를 토스트에서 베이컨과 달걀로 바꿔 놓은 것도 의사들을 동원한 그의 베이컨 과대 선전의 영향이었다.

대중 심리가 선전을 통해 어떻게 조작되는지를 정치와 기업 활동 관점에서 분석하고 예시한 이 책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깨어 있는 소비자와 유권자는 선전의 메커니즘과 허실을 파악함으로써 이에 대처할 능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