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계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26일(현지시간) 이라크 미군 기지를 찾아 시리아 철군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호구(suckers)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에 방위비 증액을 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라크 알아사드의 미 공군기지에서 “미국이 모든 짐을 져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다”며 세계의 경찰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을 이용하는 국가들에 더 이상 이용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이제 비용을 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시리아에서의 철군 등과 관련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시리아 철군(2600명)을 확정한 데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전쟁 중인 1만4000명의 병력 중 절반을 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에 반발해 사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1년 미군이 이라크를 떠난 이후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AFP는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혼란, 특검 수사 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부터 세계의 경찰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토론회에서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없고 전 세계 나라를 보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핵심은 돈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미국은 부자 나라들의 군대에 실질적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지만, 이들은 무역에서 우리를 완전히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25일엔 “불이익을 당하면서 부자 나라에 보조금을 주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제 분야의 보호무역주의와 마찬가지로 안보·국방 분야에서도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당장의 손익을 따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는 “시리아 철군은 향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는 물론 한국이나 유럽 동맹국에 대한 막대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 중인 한국에 지금보다 50% 인상한 12억달러(약 1조3500억원)를 요구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주한미군 등 한반도에서의 미국 역할과 연계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호구가 아니다”며 비용 문제를 거듭 강조한 건 다른 지역에서도 추가 철수 카드를 꺼낼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란 분석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