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장 신년사 규제 개혁 이구동성
“중국에서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한국에서도 가능하게 하겠다는 자세로 규제 개혁을 해야 한다.” 지난해 말 박병원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내놓은 신년사는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신년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규제는 늘었다. 20대 국회 들어 기업 관련 법안은 1500개 이상 발의됐고, 이 중 833개가 규제법안이었다.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 수장들이 27일 발표한 내년도 신년사에서도 한목소리로 ‘규제 개혁’을 외치게 된 배경이다.

“규제가 외국 기업과의 경쟁 막고 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이날 “규제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최소한 외국에 있는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기업도 할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한다”며 “규제가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 부담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신산업 분야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과 한국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차량공유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우버, 중국의 디디추싱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카풀 등 차량공유 서비스가 각종 규제와 택시업계의 반발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에서는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모두 불법이다. 허 회장이 “세계 경제는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젊은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으나 우리의 주력 산업은 대부분 마흔 살을 넘었다”고 우려한 배경이다.

“대립적인 노사 관계로 경쟁력 저하”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이분법적인 선택의 담론에서 이제는 벗어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성장과 분배는 서로 대립하는 이슈가 아니라 둘 다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라는 것이다. 규제 개혁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낡은 규제 시스템이 혁신 기회를 막고, 이는 신산업 출현을 방해하며, 일자리 창출 기회부터 날려버린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제도 시행, 경직된 노사관계 등도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생산과 투자가 부진하고, 취업자 수 증가 폭이 줄어드는 ‘트리플 부진’이 가시화하고 있다”며 “대립적인 노사관계로 인한 고비용·저생산 구조는 산업 경쟁력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 유연성 확보·사회 안전망 강화 절실”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는 더 절박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급격한 노동 환경 변화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며 “최저임금을 업종별·규모별로 차등화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요건을 완화하는 등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노동유연성 확보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기업이 재도약할 때 일자리 늘어난다”

대외 악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세계 경제는 우리에게 더 많은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며 “추격에서 선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저소비가 ‘뉴노멀’로 자리 잡는 가운데 선진국의 통화 긴축과 신흥국의 금융 불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교역도 위축되고 있다. 그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미·중 무역갈등, 관세와 비관세장벽 등 산재한 통상 현안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업계를 위한 민간 차원의 신(新)통상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손 회장은 대내외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새해 꼭 필요한 일은 결국 ‘기업인 기(氣) 살리기’라고 했다. 그는 “최일선에서 국가 경제 발전을 이끌어온 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재도약할 때 일자리가 늘어나고, 더 많은 부가 경제에 원활하게 흐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